정부가 어떤 사업을 수행하려 할 때 지출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때때로 조세 감면의 방식을 통해 그 사업을 수행하는 편법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19 백신 개발 촉진을 위해 1천억원의 보조금을 민간 기업에게 지급하는 대신 법인세를 그만큼 감면해 줌으로써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도에서 제공되는 조세 감면을 ‘조세지출’(tax expenditure)이라고 부릅니다.
정부가 조세지출이라는 수단을 자주 이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행정적 편리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민간 기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말이 나오면 즉각 특혜 시비가 불거지기 십상인데, 조세 감면이라는 감추어진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면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조세지출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활용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조세지출의 경우에는 엄밀한 검증절차가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이를 남발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 결과 조세수입에 큰 구멍이 뚫릴 수 있어, 조세제도 개혁을 논의할 때 조세지출 항목의 과감한 정리가 항상 최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마련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건전 재정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데, 불필요한 조세지출만 제대로 솎아내도 조세수입이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늘 지적하고 있는 ‘주택임대사업자등록제’하에서 제공되는 갖가지 조세상 특혜가 바로 조세지출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임대사업자가 받는 재산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소득세에 이르는 갖가지 조세 감면으로 인해 엄청난 규모의 세수 결손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부당한 세제상 특혜를 철폐하면 과연 얼마만큼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을까요?
국토부와 국세청이 가진 자료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바로 그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런 자료는 우리에게 주지 않을 테니 간단한 추산을 해보기로 하지요.

임대사업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의 숫자는 150만 채입니다.
만약 이들이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한다면 얼마를 내야 할까요?
이들의 평균 가격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주 극단적으로 낮은 값인 1억원이 (공시가격의) 평균치라고 가정해 보지요.
그리고 이들이 직면하는 종합부동산세의 세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1%라고 가정하기로 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내야 할 종합부동산세 세액은 1,500,000 x 100,000,000 x 0.01 으로 계산되어 나옵니다.
쉽게 말해 15에 0이 11개 붙은 숫자가 되겠지요?
0이 12개 붙으면 ‘조’(trillion)가 되니 이 금액은 1조 5천억원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임대사업자등록제하에서 제공되는 종합부동산세 감면액이 이 정도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제대로 과세한다면 바로 이만큼의 조세수입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주택가격과 세율을 가정해 얻은 수치입니다.

임대주택의 평균 가격은 당연히 1억원보다 더 높을 겁니다.
시가 15억원이 넘는 강남의 E 아파트도 임대주택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공시가격의 평균치는 5억원까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임대주택사업자들 대부분이 다주택 소유자일 것이기 때문에 세율은 3%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로부터 추가로 거둬들일 수 있는 종합부동산세는 최대 10조원이 넘는 수준까지도 될 수 있습니다.

재산세, 양도소득세, 소득세까지 제대로 거두기 시작하면 조세수입은 더욱 커질 것이구요.
문제는 왜 임대사업자들에게 이런 엄청난 규모의 조세지출 혜택을 주느냐에 있습니다.
내가 지난 번에 쓴 글에서도 분명하게 밝혔지만 임대사업자등록제의 긍정적 효과는 거의 0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정부는 아무 실익도 없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조원의 조세수입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분 삼성전자에서 R&D 투자로 지출한 경비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게 마땅합니까 아니면 주택 사재기 해놓고 집값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게 마땅합니까?
답은 뻔히 주어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에는 입만 열면 재정건전성을 부르짖는 우국지사(?)들이 많습니다.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조세상 특혜만 철폐해도 국가채무를 크게 줄일 수 있는데 왜 그들은 이 점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임대사업자에게 제대로 과세를 하는 것은 조세정의를 다시 바로잡는 일일 뿐 아니라 나날이 악화해가는 재정건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혁'은 바로 이와 같은 일을 과감히 수행하는 것 아닐까요?

Ps. 앞으로 출산률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재정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증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음 중 누가 우선적으로 추가적 조세부담을 하게 만드는 게 바람직할까요?
(1) 봉급생활자 (소득세 인상)
(2) 소비자 (부가가치세 인상)
(3) 기업 (법인세 인상)
(4) 주택임대사업자 (특혜 폐지)


양종훈

2020/07/03

저는 4번이요.

로이터

2020/07/05

당연히 4번입니다

이준구

2020/07/05

기본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든 4번을 고를 수밖에 없지요.

김서원

2020/07/07

이런 명백한 주장이 먹히지 않는건 정부 관료층에서 반대하기 때문이겠죠. 그들이 과연 어떤 논리를 사용해서 반대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잠탱이

2020/07/07

어제 강병원 의원실 임대주택사업자 세제혜택 폐지법안 보구서 교수님 글이 생각 나 들어와 봤어요. 해당 의원실에서 교수님 글을^^
지금 나온 법안은 소급적용 이슈가 있어 여기저기서 물어보던데 경과규정 두어 잘 다듬어지면 좋겠어요.

푸른하늘

2020/07/17

교수님 참 쉬운 설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