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런 나라가 있는데 우리나라가 바로 그 나라입니다.
얼마 전 Economist에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들에 근시안을 가진 청소년들이 유독 많은데, 그 중에서도 한국이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에 이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세계 1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conomist에서 인용한 위의 그림표에서 보듯, 동아시아 국가 청소년들의 근시 비율은 대체로 80% 수준을 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시의 비율은 근래에 들어오면서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추세를 보입니다.
(예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근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는데 최근 급상승해 이제 단연 1위가 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에 비해 유럽 국가 청소년들의 근시 비율은 20%에서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동아시아 국가 청소년의 근시 비율이 이처럼 높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Economist의 지적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조명이 그리 밝지 않은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근시가 되어 버린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예전에는 근시가 주로 유전적 요인에 의해 생긴다는 것이 안과학계의 정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안구가 앞뒤로 긴 모양을 가졌고 그런 사람이 근시가 된다고 설명했던 것이지요.
나도 안과에 찾아갔을 때 그런 설명을 자주 들은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스개소리로 “난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근시가 되었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요?
미안한 말이지만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근시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일지 모르구요.
근시와 관련해서 이와 같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있었습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에 의해 근시인지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이론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성장기에 안구가 커질 때 주변 환경에 따라 정상수준 이상으로 앞뒤로 긴 모양을 갖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런 사람이 근시가 된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았나 봅니다.
안구가 그런 모양으로 자라기 때문에 물체의 상이 망막에 정확하게 맺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구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은 밝은 장소에서 보내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즉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안구가 정상적인 모양으로 자라는 반면, 조명이 상대적으로 어두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앞뒤로 긴 안구를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둡고 밝은 장소를 가르는 기준은 1만 룩스의 밝기인데, 이것은 맑은 날 그늘에서 측정한 조도의 수준이랍니다.

이에 비해 실내 조명은 대체로 1천 룩스 수준이라 안구의 정상적 발달에 크게 모자라는 수준이지요.
실내조명을 1만 룩스 수준으로 올리는 데는 많은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실현가능한 옵션은 아니라네요.
그러니 성장기의 어린 아동들이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해주기 전에는 근시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 서울지역 고등학생의 97%가 졸업할 때 근시안을 갖는다는 끔찍한 통계에 놀랄 필요는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그들의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시면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으니까요.
체육시간 빼면 학교나 학원 왔다갔다 하는 시간 말고는 밖에 나갈 일이 없는 생활의 연속 아닙니까?
우리 기성세대가 크게 뉘우치고 자식 기르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우리나라 사람으로 처음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메달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국영수만 맹목적으로 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수학정석을 푸는 ‘미친 짓’도 하지 않은 것 같구요.
내가 늘 주장하지만 국영수 잘한다고 인생에 크게 도움되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국영수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것도 결코 아니구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우리 교육의 혁신은 아이들을 공부의 부담에서 해방시켜 주는 데 그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국영수 공부할 시간의 절반을 떼어내 운동장에서 보내게 하면 훨씬 더 행복한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게 될 하등의 이유도 없구요.

지금 내가 인용하고 있는 Economist의 기사는 그와 같은 교육개혁이 시급함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근시율 97%라는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세계 1위의 기록이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유럽은 고사하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훨씬 더 극심한 공부지옥으로 자식들을 몰아넣고 있는 끔찍한 현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누스

2022/08/16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준이 박사가 필즈상을 탔기 때문에 No problem이라고 바득바득 우길거라는데 500원을 걸겠습니다. ㅎㅎㅎ

고니

2022/08/17

허준이 교수를 근거로 국영수 학습량을 줄이고 공부의 부담에서 해방시켜주자는 것은 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한국 교육현실의 구체적 맥락을 짚어봤을 때 더 그렇습니다.

허준이 교수가 고교 자퇴 때 서울대 박사과정생의 1-1 과외를 받을 수 있었다거나, 통계학과 교수의 아들이었다거나, 때마침 서울대가 큰 돈을 들여 외국학자를 초청한 프로그램의 추천서 수혜자였다거나, 시민권자로서 군대 2년 안가고 필즈상 만40세 전에 아슬아슬하게 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등등의 그의 성취에 기여한 (일반적 한국학생이 누리기는 매우 어려운) 요인을 뒤로 하더라도,

허준이 교수 인터뷰를 보면, 본인이 가르쳐본 탑대학 레벨의 미국 수학과 학생들은 한국보다 훨씬 넓은 수학적 범위를 고교때 이미 학습하고 들어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수학교육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국영수 부담을 줄여주자>라는 주장이 <학습범위 축소>에 대한 정치적 압력으로 이어지고, 범위를 갈수록 줄이니까 수능에서는 그 범위 내에서 석차를 구분해야 하니 기형적으로 배배꼬아 내는 문제가 나오고 있는 것 입니다.

한국적 맥락에서 <국영수 부담을 줄여주자>는 주장은 깊은고민 없이 되풀이 되어왔고, 현실에서는 영어절대평가, 수학범위축소로 이어졌고 이는 그 어떤 교육적 목적도 달성못한채 오히려 학생들을 더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영수 부담을 줄이자는 슬로건은 고등학생들이 푸는 언어지문에 <오버슈팅>지문이 나오고, 사회/과학탐구에서는 그 전공 전공자들도 시간안에 20문제를 풀기 어려울 정도로 배배꼬은 문항들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준구

2022/08/17

미국 대학생의 수학 수준이 이미 높아진 것은 그들이 고등학생 시절 별도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예컨대 수학에 취미가 있는 고등학생이 인근의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 식으로요
우리나라처럼 모든 고등학생이 맹목적으로 수학문제 풀이에 매달리는 건 아무 쓸모가 없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이준구

2022/08/17

그런 맹목적 방식의 공부는 수학에 특히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학교 나와서 수학과 아무 관련없는 일을 하게 될 수많은 학생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부일 겁니다

이준구

2022/08/17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국영수에 쏟아부은 노력이 낭비였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고니

2022/08/17

한국은 <교육개혁>을 한다고 하면 전국민의 학습범위를 통제하고 수월성 교육마저도 정치논리로 교육부가 개입해 시험유형과 전형마저 정해주는 나라인걸요. 부담경감의 정책은 당장 그런 수많은 학생들에 대한 고려보다 서울대 입시에 어디까지 시험이 출제될 수 있는지에 더 집중될 것이고, 실제로 미국처럼 인근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 것 등은 입시스펙으로 아예 못쓰게 만들고도 있죠. 실제 경시대회 스펙은 아이비리그 입학 스펙으로는 쓸수 있지만 서울대 입시에는 못쓰게 교육부가 막아놓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정규커리큘럼과 구별되는 별도의 교육 등을 통해 선행하는 것에 부정적인 분 아니셨는지요? 허 교수도 과외와 강남대성학원의 교육을 받고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교수님께서 다른 글에서 비판적으로 말씀하셨던 <돈으로 한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글에서 부정적으로 바라 보셨던 특목고 학생들이 다닌 학원비보다 저렴하지도 않았을 것 같구요.

전국적으로 교육부가 대학입시의 목줄을 죄고 있고 시험 방식까지 다 관여하는 나라에서, 국영수 범위를 계속 줄여가는 정책은 학습부담 경감이란 명분 하에 수많은 학생들의 가능성을 자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공계의 경우 요즘 모든 분야에서 기본으로 자리잡아가는 데이터사이언스를 하는데 있어 필요한 벡터조차 고교에서 이제 필수가 아니죠.
이미 2022년 현재 국영수 범위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넓지 않습니다. 대학진학율이 80%나 되어서 수많은 사람을 석차를 내야하고, 고교범위 이상에는 시험을 못내게 통제를 하고 있으니 좁디좁은 범위에서 시험문제가 배배꼬아져서 기존 기출기반의 문제풀이학습을 하는 맹목적인 공부가 되는 것이지, 사회가 학생에게 교육범위를 과다하게 부과해서 맹목적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필즈상 받은 분은 정규교육에서 이탈했어도 학원보다도 더 좋은 과외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지만, 아마 부모도 저학력인 학생이 지금처럼 부담경감이 최고인 것처럼 범위를 축소해가는 시대에 학교에서 수업만 들어서 미래에 수학을 진지하게 쓰는 직업인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겁니다.

물론 아무런 백그라운드와 지원 없이도 성과를 내는 사람도 간혹 존재합니다. 군대를 현역복무하고해외나가서 분데스리가를 폭격했던 차범근같이, 헝그리정신과 시대가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가 있는것처럼요. 하지만 그런 시대적 천재 정도 외에는 다 교육과정과 주위환경의 압도적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대부분 잘 나가는 일자리들이 외국과의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오늘날, 예전보다도 더더욱 어느직종에서나 영어를 잘하면 잘할수록 유리합니다. 소위 가방끈이 긴 직업뿐만 아니라 요즘 대중상대 유투버를 하려고 해도 영어를 잘하면 전세계가 시장인 세상입니다.
교육부가 학습부담경감이라는 정치적 목적에서 영어를 절대평가로 한다고 해서, 세상의 쓸모가 변하는 것은 아니죠. 현행 교육체제에서 절대평가 때문에 영어공부를 안했던 학생중 상당수는 나중에 커서 [영어공부는 어릴때부터 하면 좋다는데 왜 그 떄 나한테 영어공부하라고 아무도 이야기안하고, 국가는 절대평가를 도입하며 그걸 묵인했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고학력자고 안목이 있다면 국가가 절대평가를 하든말든, 어떤 형태의 교육개혁이 일어나든말든 영어는 필요하고 어릴 떄 하는게 학습효율도 좋으니 어떻게든 공부하겠지만요.

으랏차차

2022/08/18

고니님 말씀에 많은 부분 공감이 됩니다.
이준구 교수님 지적처럼 크게 잘못된 교육제도임이 분명한데, 마냥 수월하게 쉽게만 문제를 내는게 결코 해결책은 아닌 셈이네요.
90년대 중반 본고사처럼 문제를 터무니없이(?) 어렵게 내는 본고사를 도입한다면 과외가 더 성행할까요? 차라리 그렇게 가는건 어떨까 생각도 듭니다.

이석기

2022/08/18

우리 학생들에게 공부의 부담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
합니다. 유치원 때부터 학원을 5곳-6곳을 다니며 밤늦게 학원차들이 도로에 즐비한 국가는
우리나라 뿐인것 같습니다. 윤리와 인성교육은 전혀 되지않고 지식한 가득찬 AI 인재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학식이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한 말이 문제가 되는 경우를 볼 때 아연실색
할 때가 많습니다. 사과를 한다고 수습이 되지 않습니다. 평소의 가치관이나 의식이 언어로 표현
되는것이 그사람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