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인 미국에서는 세금을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 세 단계에서 징수합니다.
그런데 ‘SALT공제’(state-and-local tax deduction)라는 제도가 있어 주세나 지방세로 납부한 부분에 대해 연방세의 소득공제를 허용해 줍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주세나 지방세로 1만 달러를 납부한 실적이 있다면 연방차원의 소득세를 납부할 때 이 부분을 과세대상 소득에서 빼준다는 것이지요.
만약 어떤 납세자의 연방소득세율이 30%라면 소득세가 3천 달러 줄어드는 혜택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 SALT공제제도의 혜택을 주로 받는 계층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비싼 집을 가져 재산세를 많이 내는 사람 혹은 소득이 많아 주차원의 소득세를 많이 내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납세자들은 이 제도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지요.

그런데 예전에는 이 제도를 이용해서 연방소득세에서 공제를 요구할 수 있는 금액에 한도가 없었습니다.
주세와 지방세로 내는 재산세, 소득세가 얼마나 많든 간에 그 금액을 전부 공제하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공제요구할 수 있는 금액에 1만 달러라는 상한선이 설정되었습니다.
주세와 지방세로 15만 달러를 납부한 사람이라도 연방소득세를 낼 때 공제할 수 있는 금액은 1만 달러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공제한도 상한선의 설정을 과연 누가 도입했을까요?
상한선을 설정함으로써 부자들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될 텐데, 이런 정책을 도입할 것으로 짐작되는 건 민주당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라고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상한선이 설정된 것은 2017년이고, 그때 누가 대통령이었습니까?
당연히 친부자 정책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트럼프(D. Trump)였지요.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정책이 진보적 성향이 강하고 부자들이 몰려 사는 뉴욕주, 뉴저지주, 그리고 캘리포니아주를 겨냥한 정책이라고 불평했습니다.
그와 같은 불평이 아주 근거없는 것도 아니었구요.
여러분이 트럼프의 성향을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의 특별한 평등주의적 성향 때문에 그런 정책이 도입되었을 리 만무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평소 자신들이 주장하듯 진정한 진보적 이념의 소유자라면 트럼프의 속마음이 어땠든 간에 그 정책의 도입을 환영했어야 합니다.
사실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 중에는 SALT공제제도 그 자체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무한정 공제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보다 1만 달러 이내에서만 공제를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명백한 개선인 셈이지요.
그런데도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의원이 그런 공제 한도 설정에 불평을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그와 같은 이중적 태도는 겉으로는 진보니 보수니 하고 떠들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계산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주판알을 굴려 보아 자신에게 유리하면 삼키고 불리하면 뱉는다는 말이지요.
심하게 말하면 진보냐 보수냐의 선택도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 아닌 정치적 계산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미국의 부자들은 주로 뉴욕주, 뉴저지주, 캘리포니아주에 몰려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진보적인 이 주들에서는 민주당 하원의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상원은 한 주에서 2명만 나오지만 하원은 인구비례로 뽑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기 출신구의 부자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그런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겁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부양 지출법안인 Build Back Better Act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드디어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1만 달러의 상한선을 무려 8만 달러로 올리는 데 합의를 한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니 공화당 의원들은 얼씨구나 좋다라고 찬성표를 던졌을 겁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부자들의 편을 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진보적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상원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만약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향후 5년 동안 이 공제한도 상향조정으로 인한 연방정부의 세수 결손은 무려 2,7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Economist지는 이와 같은 세금 감면의 혜택이 하위 60%의 납세자들에게는 거의 한 푼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총 혜택의 70%가 최상위 5%의 납세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구요.
(공제한도를 높인 결과 소득계층별로 발생하는 감세 혜택을 보여주는 그림표를 자세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그 2,750억 달러의 세수 결손이 지출 프로그램에 미칠 영향에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Build Back Better Act를 통해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진보적 성격의 지출 프로그램 중 상당 부분을 접어야 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아동수당인데, 빈곤층에게 큰 도움을 주어 왔던 이 제도의 폐지가 불가피해질지 모릅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위선적 태도가 이런 불행한 결과를 빚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우리나라 민주당 정치인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위선적 태도를 자주 봅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에게 압도적 지지를 몰아줬는데도 여러 방면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겉으로만 진보니 개혁을 떠들어 댈 뿐, 각자 주판알을 튀겨본 결과에 따라 행동하니 그런 결과가 빚어진 게 아닐까요?

정치인이 때로는 유연성을 발휘해 양보를 하기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유연성이란 어디까지나 자신이 갖고 있는 기본입장의 선 안에서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보인 위선성, 그리고 내가 우리나라 민주당 정치인들에게서 때때로 관찰하는 위선성은 분명 그와 같은 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어디에서든 똑같은 게 현실이라 하지만, 그들을 지지해준 국민의 바람을 저버린다면 언젠가는 준엄한 심판에 직면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파써낙스

2021/12/16

위선적이거나 겁을 집어먹었거나 여러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한심해보인다는건 매한가지로군요 ㅎㅎㅎ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네요

양종훈

2021/12/18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선지 요즘 허경영씨 지지율이 제법 많이 나오더군요. 정권교체는 국민들에게 아무 실익이 없으나 허경영이 당선되면 현금 1억은 보장된다는게 이유입니다.

Jeondori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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