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명문대학의 졸업장이 경제적, 사회적 성공의 티켓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빈번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명문대학의 졸업장을 손에 쥔 사람은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많은 소득을 올릴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직업에 종사할 가능성이 큰 것이 보편적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보면 고소득층의 자제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것 또한 보편적인 현상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SKY 대학에 고소득층 자제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곧 보게 되겠지만, 미국 역시 그 정도가 더욱 심하면 심했지 결코 약하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구요.

이와 같이 명문대학의 졸업장이 경제적, 사회적 성공의 티켓으로 작용하는데 고소득층의 자제들이 명문대학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학이 계층상승의 사다리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간 이동을 막는 장애물 역할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명문대학이 채택하고 있는 전형방식의 특성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면 정책의 측면에서 시급한 대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하버드대학의 체티(Raj Chetty) 교수 등이 바로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쓴 논문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례에 기초한 논문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이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 관점에서 볼 때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미국의) 최상위권 대학에 누가 주로 들어가며 그들이 졸업 후 어떤 경제, 사회적 지위를 갖는지에 관심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최상위권 대학은 소위 아이비리그(Ivy League)라고 부르는 8개 대학에 스탠포드, 시카고, 듀크와 MIT를 포함시킨 12개 대학입니다.
이 12개 대학들을 통틀어 ‘Ivy-plus’ 대학군으로 불렀는데, 여기에 다니는 학생은 미국 전체 대학생의 0.5%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소득이 최상위 1%에 속하는 가정의 자제는 비슷한 학습능력을 가진 중산층 자제에 비해 이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확률이 두 배나 더 높다고 합니다.
최상위 0.1%에 속하는 가정의 자제가 입학할 확률은 무려 세 배나 더 높다는군요.
이 논문의 저자들이 말하는 대학 지원자의 학습능력은 SAT나 ACT 같은 표준화된 시험의 성적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성적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점수가 학습능력의 정확한 척도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현재 이 대학들에 재학하는 최상위 1% 가정의 자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16%인데, 만약 입학허가가 순전히 학습능력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이들의 비율이 7%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통계수치를 보면 이 최상위권 대학의 입학생 선발방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대학들이 부유층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놓고 지원자들을 받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런데 전체 대학생의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최상위권 대학 졸업생의 사회적 진출을 보면 가히 눈부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대학 졸업생은 Fortune 500에 속하는 대기업 CEO의 10% 이상을 차지할 뿐 아니라, 미국 상원의원의 1/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더 놀라운 통계는 최근 임명된 대법원판사의 3/4 이상이 이 대학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12개 명문대학의 졸업생이 미국의 정, 재계를 휘젓고 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요약해 보면, 부유층의 자제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최상위권 대학 졸업생들이 미국사회 정, 재계의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고소득층 자제가 명문대학에 입학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의 2/3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전형방식의 결과라고 봅니다.
나머지 1/3은 고소득층 자제들이 이런 대학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지원하고 더 많이 졸업한 것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구요.

그렇다면 고소득층의 자제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최상위권 대학들의 전형방식이 갖는 특성은 무엇일까요?
이 논문에서 지적되고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소위 ‘legacy’라고 부르는 동창 자제들에 대한 우대조치입니다.
이 논문을 쓴 사람들은 최상위 1% 가정의 자제가 갖는 상대적 우위의 46%가 바로 이 제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최상위 1% 가정의 자제가 이 제도를 통해 입학허가를 받을 확률은 비슷한 학습능력의 다른 학생들에 비해 5배나 더 높습니다.)

두 번째는 고소득층 자제들이 다니는 값비싼 등록금의 사립고등학생이 주로 즐기는 스포츠, 예를 들어 테니스, 조정(rowing)이나 라크로스(lacrosse) 같은 운동의 특기생 전형입니다.
주립대학은 주로 미식축구나 야구, 농구 같은 대중 스포츠 분야에서 특기생을 선발하는 것과 아주 대조적인 상황이지요.
이 논문을 쓴 사람들에 따르면, 최상위 1% 가정의 자제가 갖는 상대적 우위의 24%가 바로 이 운동 특기생 선발의 결과라고 합니다.

나머지 30%를 차지하는 것은 과외활동이나 지도력 같은 비교과 스펙(non-academic credentials)에 부여되는 프리미엄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시전형에서 비교과 활동에 주어지는 프리미엄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비교과 스펙 역시 고소득층 자제들이 주로 다니는 사립고등학교에서 훨씬 더 쉽게 쌓을 수 있다는 건 자명한 일이지요.
우리나라의 부자 학교인 자사고나 특목고에서 이런 점수 올리기 더 쉬운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렇다면 명문대학의 졸업장 그 자체가 그것을 손에 쥔 사람의 경제적, 사회적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예컨대 학습능력이 떨어지는데 고소득층에 유리한 전형방식 덕분에 명문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사람은 비슷한 학습능력을 가진 타 대학 졸업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경제적, 사회적 성공의 확률을 갖고 있을까요?
바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이 논문의 주안점이 있습니다.

이 논문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그 답은 “그렇다.”(Yes)라는 것입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최상위권 대학에 지원했는데 “대기자명단”(waiting list)에 오른 학생들 중 궁극적으로 입학허가를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해 다른 대학으로 간 사람의 사회적 진출 양상을 비교해 보고 그와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대기자명단에 오른 지원자들은 모두 비슷한 학습능력을 갖고 있는데, 학습능력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기준에 의해 합격 여부가 결정되었다는 가정하에서 그와 같은 결론을 낸 것이지요.

이 논문의 분석결과를 보면 대기자명단에 있다가 결국 입학허가를 받아 졸업장을 손에 쥔 사람은 (비슷한 학습능력과 비슷한 소득수준의) 입학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좋은 경제, 사회적 지위에 도달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33살이 되었을 때 최상위 소득계층 1%에 속할 가능성이 60% 더 높을 뿐 아니라, 보수는 크게 높지 않아도 존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을 갖게 될 가능성이 3배나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고소득층의 자제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이 세 가지 조처가 모두 졸업 후의 성과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을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동창의 자제라 해서, 특정한 운동을 한다 해서, 비교과 스펙이 좋다 해서 경제,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학습능력은 졸업 후의 사회적 성과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최상위권 대학들이 부유층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현재의 전형방식을 바꿈으로써 좀 더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지도층의 구성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드는 부수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의 분석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 특히 수시전형방식에도 다시 고려해볼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교과 스펙에 프리미엄을 주는 우리의 수시전형 역시 돈과 빽으로 쉽게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홍기호

2023/09/13

아버지가 예일 출신이면 바보가 아닌 한 붙여주고, 할아버지가 예일이면 바보라도 붙여준다던 농담이 생각납니다.

이준구

2023/09/13

닥터 홍 오랜만이네
잘 지내고 있지?

이준구

2023/09/13

아들 부시 대통령은 머리가 나쁜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 legacy 덕분에 Yale 졸업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

양종훈

2023/09/13

좋은 학교 나왔다고 좋은 사람이나 대단한 사람이 되진 못하는건 분명해 보입니다.

허공에의질주

2023/09/13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시가 부유층에게 더 유리합니다. 예전 수시는 비교과 영역 때문에 문제가 많았지만 요즘 수시는 비교과 영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 축소되어서 내신 중요성이 전보다 커진 상태입니다. 내신 중요성이 클수록 강남은 불리하죠.

홍기호

2023/09/13

예 선생님. 시절이 하 수상합니다만 저희 부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함께 대전현충원에 참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개강을 하고 나니, 방학이란 학생보다 교수에게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병원은 쉬지 않지만 대학일정이 없는 것만으로도..

이준구

2023/09/13

닥터 홍 부부 모두 잘 지낸다니 좋은 소식이네

김서원

2023/09/13

근데 교육제도와 대학입학시험의 문제를 논할 때 능력과 공정이라는 기준에 너무 중심을 두면 헤어나지 못하는 논쟁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논리와 주장을 해도 그에 대한 반박 주장이 계속 등장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쟁만 반복되는 느낌이랄까요.

어떻게 공정한 경쟁 제도를 만들까보다는 어떻게 하면 경쟁 자체를 줄일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교육을 경쟁중심으로 두는 것만큼 교육을 망치는게 없다는게 교육계에서는 합의된 사항이기도 하고요. 경쟁이 없으면 공부를 안할거라는 조야한 시장주의적 관점으로부터 교육을 보호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이준구

2023/09/13

김서원 님의 말에 공감해요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이준구

2023/09/13

허공에의 질주 님, 정시가 부유층에게 더 유리하다는건 나도 잘 압니다
그렇지만 과외를 받든 뭘 하든 수능점수는 사기를 쳐서 받을 수 없잖아요?
그러나 비교과 스펙은 사기에 가까운 수법으로 점수를 높일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비교과 영역의 경우 자사고나 특목고 출신이 본질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그 반영비율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그런 본질적인 우위를 갖는다는 건 불공정하지요

킁킁탐정

2023/09/14

저 개인적 경험으로는 학교 내신. 수능 비중 50대 50으로 하는게 나을듯 합니다. 시골 촌구석에 1등급이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얻었다면 가치를 인정해줘야 된다고 봅니다. 저기에다가 수능 100프로. 내신 100프로 특차를 약간 섞으면 괜찮을듯요. 총 입학정원의 60프로는 내신.수능 50대50......20프로는 수능 특차. 20프로는 내신 특차....이러면 지방학생들도 굳이 서울로 오지는 않을것 같은데요.

넋두리

2023/09/15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것에 공감하지만,,,,이젠 그 계층 이동 사다리에 대한 열망, 희망조차 꿈꾸지 않는, 정확히는 꿈꾸지 못하게 만든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더 슬프네요

파이팅.

2023/09/15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
“의대 정원 늘리면 사교육비 해결”
“현재 가장 큰 교육 수요는 의대 진학”이라며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2배 내지 5배까지 늘리면 된다. 그러면 사교육비 문제도 해결될 것”

요즘 입시는 한 마디로 의대 몰빵입니다.
의대 약대 치대 수의대 등
의학계열 입학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면
사교육비 해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파이팅.

2023/09/16

수시에 점점 내신비중이 너무 높아지면서 문제가 생겨나고 있죠.
한마디로 수시로는 패자부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내신 시험을 망치면 명문대는 물건너 간다는 것이죠.
결국 그렇다면 수능위주의 정시에 올인해야 하는데
수능에만 올인하기 위해서 최근에 강남을 중심으로 자퇴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퇴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학원비가 월 수백만원


Jeondori

2023/09/17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일관성이 없고 너무 변화무쌍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예를 들어 영국의 왕립과학기술원처럼 유능한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지 않고 왕정체제가 계승되어 이어졌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애그

2023/09/23

수시전형에서 시덥잖은 논문을 시덥잖은 저널에 퍼플리쉬를 했다고 그게 스펙으로 인정받는다는게 저는 놀라웠습니다. 그정도는 조금만 노력하면 걸러낼 수 있을텐데요... 우리가 청문회같은데서 목격했던 논문대필이나 그런 문제들도 사실 많이 줄어들꺼 같구요. 그런 스펙은 제가 심사위원이라면 마이너스로 처리할 것 같습니다.

만약 수준이 되는 저널에 수준급 논문을 퍼블리쉬 하였다면 그 학생과 30분 정도만 이야기 해봐도 그 학생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얼마나 이해를 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꺼 같구요.

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물롬 가장 궁극적이고 좋겠으나 그게 단기적으로 안된다면 심사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 보는지에 따라 부족한 부분을 어느정도 매울 수도 있다고 봅니다.

논문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지만 각종 공모전 수상이나, 봉사활동 이력 등... 행정적 비용이 들더라도 그만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학원가에서 어떻게 코칭하는지도 파악하고...

독일잠수함

2023/10/07

애그/

지금은 그 제도 자체가 없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왜 이후 이 이야기가 언론 통해 주목도가 올라갔는지 자체가 저는 의심 스럽더군요

과거 한창 사람들( 한국서 힘 돈 좀 있는 ) 애용해 먹을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그들이 이용 못하게 되니 말이 나오기 시작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론 통해 부풀려진 그리고 그걸 통해 세상 조종하려는 사람들 너무 믿지 마세요

낚이는 겁니다...

어마르

2023/10/24

현재 쿠팡플레이 CEO가 바로 미국에서 라크로스 한 유학파 출신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