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기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큰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책임 소재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입으로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해놓고서는 꼬리 자르기 조사로 일관해 정작 몸통은 책임을 피해가고 송사리들만 처벌을 받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 나쁜 전통은 유달리 “법과 정의”를 부르짖는 이 윤석열 정부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이태원 참사나 오송리 참사의 경우에도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어 “절저한 진상 규명”을 부르짖는 유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북 예천에서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병사가 숨진 사건을 조사했던 해병대 수사단은 예상 밖으로 엄정하게 그 진상을 파헤쳐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단장을 비롯한 지휘부 8명의 군인이 무리한 수색 지시를 내림으로써 채 상병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조사결과를 밝힌 것입니다.
만약 이 조사결과가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이에 기초해 이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다면 그 비극적 사건은 그런대로 일단락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조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의 말에 따르면 이 조사결과는 해병대 사령관 등 여러 사람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국방장관에게 보고되고 결재를 받았다고 합니다.
조사결과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수고가 많았다고 격려까지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조사결과에 대한 언론브리핑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바로 그 다음날 난데없이 브리핑 취소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전화해 경찰서로 보내는 사건인계서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는 어불성설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박 대령의 주장입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사고가 일어난 원인을 조사한 결과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밝혀냈는데, 그것을 비밀로 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뿐만 아니라 그 법무관리관은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를)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박 대령이 "그렇다면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명령한 대대장 이하로 국한하라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박 대령에게는 그 말이 사단장과 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빼라는 암시로 들렸고, 이에 대해 “수사외압과 부당한 지시”라고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박 대령은 그와 같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애당초의 내용대로 조사보고서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답니다.
국방부는 경찰로부터 그 보고서를 즉시 회수하고 박 대령에게 보직해임을 통보했습니다.
그리고는 박 대령에게 “집단항명 수괴”라는 기상천외한 죄명을 걸어 국방부 검찰단에게 조사를 명했습니다.
경찰로의 이첩을 보류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항명죄를 덮어씌운 것이지요.
(해병대 사령부로부터 그런 지시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두 측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앞으로의 수사대상이 되어야 할 겁니다.)

지금 언론, 특히 보수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박 대령의 항명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제일 문제되는 것은 박 대령이 항명을 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외압이 있었느냐의 여부라고 봅니다.
외압으로 인해 해병대 수사단의 정당한 수사가 방해를 받았다면 이것은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당한 법적 절차에 중대한 도전이 발생한 상황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제로 외압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밝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부, 여당의 어느 누구도 외압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밝혀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도 이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잼보리 뒤풀이에 대한 기사로 화려하게 도배된 신문지상에서 이렇게 중대한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기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잘 알지 못해 표면적인 인상만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박 대령은 보기 드물게 강직한 인물 같습니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위에서 그런 지시가 내려오면 적당히 그 지시에 맞춰 보고서를 고쳐 썼을 게 분명합니다.
몇 십 년 동안 쌓아온 군인으로서의 커리어에 일대 위기가 닥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버텼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는 되는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지금 국방부는 자기네 말을 듣지 않은 박 대령을 처벌하는 데 목을 매고 있습니다.
장관의 결재까지 끝났는데 자기네 입맛대로 고쳐 쓰라고 압력을 가하고 말을 안 들으니 이첩을 보류하라고 명령한 자신들의 행동에 잘못은 없는지에 대한 엄중한 반성은 손톱만큼도 없구요.
이런 행동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당한 외압이라는 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예전 문재인 정부 때 국힘당이 내부고발을 한 공무원들을 공익신고자라 하여 감싸주느라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까?
외압의 존재를 폭로한 박 대령도 바로 이런 공익신고자의 역할을 한 게 아닐까요?
박 대령이 이토록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그들에게 “내로남불”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나로서는 국방부의 외압이 법무관리관 개인의 행동인지 아니면 그 배후에 윗선이 개입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또한 그와 같은 외압이 어떤 동기에서 가해졌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의 하나 윗선에서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핵폭탄급의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지금 정부, 여당이 이 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건이 국방부의 시나리오대로 마무리되어 박 대령이 항명죄로 처벌되는 것만으로 종결된다면 이것은 매우 불행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박 대령은 부당한 외압에 저항하려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상부의 지시를 어길 수밖에 없었을 뿐이고, 따라서 그는 무죄입니다.
만약 그 부당한 외압에 굴복했다면 박 대령도 정당한 법적 절차를 훼손하려 한 범죄적 행위의 공범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허공에의질주

2023/08/14

김태효 국가안보실 차장과 임성근 해병 제1사단장이 같이 근무했던 이력이 있다고 하죠. 이 무능과 무책임의 시절에 이 사건은 어떤 결말로 갈지.

넋두리

2023/08/14

이 자들은 지들 권력이 영원할 줄 아는가봐요,,,,,,,,,,,,,

양종훈

2023/08/15

이것도 전정부 때문이라 하지 않은게 신기할 따름이죠

이준구

2023/08/15

'집단항명 수괴죄'를 '항명죄'로 바꿨다고 하네요
국방부 자체도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요

애그

2023/08/15

젊은 해병이 목숨을 잃은 것도 너무 황망하고 가슴아픈 일인데... 누굴 봐주려고 그걸 또 일을 이렇게 몰아가네요 ㅠㅠ

정말 답답합니다...

Jeondori

2023/08/15

군검찰은 ....... 군내부에서 정의를 사수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군내부에서 정의가 존재하는지도 사실 의문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 군검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하려면 윗선에서 압력이 오거든요. 당연히 스타급등 계급도 높은 윗선에서 압력이 오면...... 더 이상의 수사는 군사기밀이 외부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군조직의 특성상의 이유 등으로........ 유야무야 덮어지는 것이 현실이구요

결국 저는 이 같은 사건들이 남북한 대치상황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일어나는 일이라,일반평민들은
" 운명 " 이라는 단어를 빌어 굴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 같습니다.

kind000

2023/08/16

조직생활이란것이 이래서 힘든거 같기도 하네요.

이석기

2023/08/19

외압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사실확인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해보면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몰래 녹취를 많이 하기도 합니다. 박대령도 성품이 강직한 분 같습니다.
대부분 시키는 대로 처리를 하는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최성수

2023/08/24

옳바른 해병
귀신잡는 해병정신 장하다

이준구

2023/08/31

박대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적반하장이군요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자기들이 큰 피해를 입을지 모릅니다

이준구

2023/08/31

어떤 법적 판단이 나오든간에 나는 박 대령이 무죄임을 100% 확신합니다
오히려 부당하게 수사권을 침해한 자들에게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