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정부

  • 저자 이준구
  • 출판사 다산출판사
  • 출판일 2004년 2월
시장과 정부는 경제라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따라서 시장과 정부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경제가 순조롭게 움직여 갈 수 있다. 시장과 정부는 경쟁을 하면서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쪽이 다른 쪽을 몰아내고 홀로 경제를 독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경제에서는 이 둘 사이의 건전한 균형을 이루어내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부터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 온 경우에는 시장과 정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일이 더욱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경제가 발전해 나감에 따라 시장이 좀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조정해 나가야 하지만 관성 때문에 자칫하면 적절한 조정의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속성상 스스로 역할을 축소해 나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온갖 이유를 들어 규제 철폐에 게으름을 피우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국방과 치안 이외의 일에서는 모두 손을 떼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정부가 해야 할 일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더 넓다. 시장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시장은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 모든 일을 내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시장의 능력을 과신하는 ‘시장근본주의’도 시장을 무시하는 통제만능주의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시장과 정부』의 전반부는 이와 같은 시장과 정부 사이의 균형의 문제를 이론적인 측면에서 논의하고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해 시장이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논의한다. 그 다음에는 이 한계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는데, 정부의 개입은 무척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인데, 정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면 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현실 경제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전문가들의 경제평론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주옥같은 글도 있지만, 식상함을 느끼게 만드는 글들이 너무 많다. 이런 글들을 보면 누가 썼는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시장의 기능을 중시해야 한다, 기업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정부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등의 몇 가지 뻔한 주장만이 한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옳긴 하지만 그렇게 똑같은 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정부가 듣지 않기 때문에 반복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대꾸할지 모르지만, 어딘가 궁색한 변병처럼 들린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상력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경제학자로서 다양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문제들을 엄격한 경제논리로 재조명해 문제의 핵심을 밝혀내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임무가 아닐까?

내 경제평론의 첫 번째 대상이 마약 문제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의도가 마약 사용을 정당화하자는 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마약이 백해무익하다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다. 내가 제기하는 의문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술, 담배, 마약이 그토록 엄청나게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해 논리적인 대답을 제시해 보라는 것이 나의 도전이다. 내 경제평론의 근저에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엄격한 경제논리에 의해 우리 사회,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