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제가 이 게시판에 별로 글을 올리지 않은 것을 눈치챈 분이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저런 폐정(弊政)이 하늘을 찌르는데, 평소 같으면 수많은 글을 써서 비판을 했을 사람이 입을 닫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하겠지요.
그러나 솔직하게 말씀 드려 역설적이게도 쓸 게 너무나도 많아서 쓰지 못한 점도 있었습니다.
이 정부의 잘못을 세세하게 지적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판이니까요.

또한 윤석열 정부의 잘못은 제가 구태여 지적하지 않더라도 기본적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뻔한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 정부가 쌓아놓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적폐는 우리 국민 모두가 피부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바 아닌가요?
이렇게 뻔한 것들을 새삼스럽게 일일이 지적하는 것이 오히려 진부하게 생각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여러 대학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는 신문 보도를 볼 때마다 우리 서울대학교는 왜 잠잠한지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시국선언이 쏟아져 나올 때 서울대학교가 선두에 선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S게까지 뒷자리를 차지한 적은 없었습니다.
홀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차에 아끼는 후배 교수가 시국선언을 준비 중에 있음을 알리고 발기인이 되어 줄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 오길래 두말않고 승락했습니다.

어제 시국선언이 발표된 후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너무 늦어서 그런지 부정적인 반응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워낙 발표 시점이 늦었는 데다가 평소에 서울대학교에게 갖고 있던 반감이 얹혀져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부정적 반응을 우리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현역 교수이기 때문에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저로서는 왜 이리 발표가 늦었는지 그 이유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요.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리 대학교 젊은 교수들의 진정성만은 의심하지 말아 달라는 점입니다.

미안한 말입니다만, 서울대학교를 위시한 전국 대학교의 열화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동안 저지른 수많은 잘못에 대해 국민을 향해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정부가 아닙니까?
공정과 상식을 부르짖으며 정권을 잡았지만 불공정과 몰상식으로 온 사회를 어지럽게 만든 불통과 무도의 정부가 하루 아침에 달라질 리 만무하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이 정부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은 명확해졌다고 봅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 연구자의 숫자는 제한적일지 몰라도, 이들의 주장은 대학 사회 그리고 사회 일반에서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 바뀌지 않는다면 건국 이래 최악 중 최악의 정부라는 오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 너무나도 뻔합니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만으로도 역사상 최악의 정부 중 최악이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이미 99% 이상 확보된 상황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