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내용들보다도, 의료대란을 보는 인식이 태평하다 못해 남의 일처럼 말하는 것이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요즘들어 길거리 위에서 환자가 죽어간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산모가 병원에 가질 못해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중학생은 수술할 의사가 없어 12시간동안 진통제만 맞으며 버텼다 합니다.

오죽하면 현역 국회의원마저 부친을 받아 줄 응급실이 없어서 결국 상을 당했답니다. 김종인씨도 새벽에 응급실을 찾다 22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하니 사태가 보통 심각한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모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국가유공자분께서 응급실을 못 찾아 고인이 되셨다 하니 더욱 불안합니다.

사회의 유력인사들마저 저런데 힘 없는 국민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은 응급체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상기한 뉴스들은 죄다 허위선동이나 침소봉대라는 뜻입니다.

현장을 가 보면 원활하다는 주장을 듣고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이 났습니다. 현장직에 종사하는 몸으로서, 높으신 분이 현장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일일이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 대란은 엄연히 현실이고, 지금 현재진행형인 문제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좋아지리란 기대도 할 수 없습니다. 의사들은 병원을 떠나고 있으며 아예 외국으로 나갈 계획까지 세우는 중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문제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와중에 온갖 의료수가를 높이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국민 세금일진대, 국민적인 동의는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도 뉴스 정도는 볼텐데 왜 눈가리며 아웅하는 짓을 계속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의 하나 그렇다고 한다면 주변에서 현실이 어떠하다 한두마디쯤 일러 주기라도 할텐데 그런 참모조차도 없을수가 있나요.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전두환씨처럼 요직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등용하는 정치를 하겠다 했습니다. 전두환씨가 그런 정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참모들 중 제대로 된 전문가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있다 해도 그 말을 듣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럼 이 정부에서 전문가들이 각자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결단코 아니라 봅니다.

작년에 대통령이 사교육 카르텔 운운할때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제가 대통령한테 많이 배운다" 면서 대통령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박민수 차관은 의료대란으로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게 되면 어찌할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세기를 내서라도 그런 일 없게 하겠다고 했지요.

그런 모습들을 보고 지당장관(至當長官)의 환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지당하십니다" 밖에 없다고 불리던 이승만 정부의 내무장관이요.

이승만 정부에는 지당장관에 더해 낙루장관(落淚長官) 도 있었습니다. 국방장관이었던 그는 대통령이 말할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하는 말에 장관 이하 관료들이 감동받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과연 지당하시옵니다, 가르침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하는 것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이상적 내각이 아닌가 깊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확신합니다.

그런 식으로 국정을 폈던 사람이 이승만이고, 때문에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와 우상화가 현 정부에서 추진되고 있다 생각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여집니다.

야당에서는 이번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응급실 뺑뺑이 사태에 문제가 없다 보고한 자들이 천벌을 받을것이라 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허나 그런 보고밖에 못 하는 지당, 낙루장관들로 정부를 꾸린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