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럽지만 오늘 같은 날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교수님의 제자도, 서울대 학부생도 아니지만, 저에게 있어 이 게시판은 교수님의 통찰력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임에 감사합니다.
또한 편향적인 사고에 치우치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 덕분에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스승의날을 맞이하여 저의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보니 교수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이석기

2022/05/15

저는 유투브 강의 시청 후 이준구 교수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스승의 날입니다.

부산에 계시면 저는 제자는 아니지만 식사자리 라고 모시고 싶지만 멀리 계시는 관계로 식사

자리도 어렵습니다. 부산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부산 광안리에서 식사자리 한번 모시겠습니다.

이준구

2022/05/15

매형이 부산서 근무할 때 광안리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광안리라면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드네요

이준구

2022/05/15

부산 피난 시절 어디서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근처에 토성국민학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거기가 어딘지 짐작하시겠습니까?
지대가 높아서 우리 집에서 바다가 내려다 보인 걸로 기억하는데요

정태을

2022/05/16

지대가 높은,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고 했는데 아마 '아미동(토성국민학교 위에 있슴)'일 겁니다.
아니면 아미동 옆에 있는 충무동.
한국전쟁시 아미동에는 피난 온 분 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토성국민학교 길건너 바로 위에 경남중학교가 있습니다.
경남중학교 길건너 위에 현재 부산대학 부속병원(일제시 釜山府立病院)이 있습니다.

이준구

2022/05/16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아쉬운 건 부모님 생존해 계실 때 부산 피난시절 얘기를 좀더 들어두었으면 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우선 그때 우리 다섯 식구가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기적처럼 생각됩니다.
내가 알기로 그 당시 부모님 모두 아무런 일자리가 없었던 것 같은데요.

내가 그때 일생 처음으로 싸움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여자 아이하고요.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집 주인 딸인데 뭔가로 내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아마 우리가 가난하다고 놀린 것 같습니다.
어머어마한 순둥이였던 나였지만 자존심 건드리는 건 참지 못해 싸움을 벌였던 것입니다.
매일 바다를 내려다본 것과 그 싸움이 부산 피난시절의 남은 기억들입니다.

정태을

2022/05/16

부산대 부속병원 뒤 산쪽이 '아미동' 입니다. 아미동고개를 넘어가면 감천동.
아미동에는 일제시대부터 화장장(1960년댄가 서면 당감동으로 이전.)이 있었습니다.
화장장뒤에는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한국전쟁시 피난민들이 와서 공동묘지위에다 무허가건물 (당시 '하코방'이라고 했슴.)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영세민이 사는 개발이 덜된 곳입니다.
20몇년전에 일본 학술조산단이 와서 아미동일대 비석마을을 조사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몇년전에도 이마을 을 취재해간 일본 신문(후쿠오카 신문이던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들의 기사를 몇편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준구

2022/05/16

네 잘 알았습니다

이석기

2022/05/16

부산서구 토성 초등학교도 둘러보시고 광앙대교도 한번 보시고 피난시절 기억도 되살려 보시고

부산에 한번 오십시오. KTX 로 2시간 40분이면 도착합니다.

넋두리

2022/05/17

늦었지만, 저도 곁다리 끼여 감사를 드립니다,,,,,,늘 좋은 말씀 새겨 듣겠습니다

이준구

2022/05/17

이석기님
코로나 잠잠해지면 한번 놀러 갈게요

이석기

2022/05/18

네. 꼭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