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교수님이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학기 말의 ‘말하기와 토론’ 수업 시간이었다. 찬반 토론 주제로 ‘꿈을 이루기 위한 학업과 인간관계 중 어느 것이 대학생활에 더 중요한가?’가 등장했다. 토론 주제는 전적으로 학생들이 결정하고 선생인 나는 청중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 수업의 방식이다.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전 의견 개진 차원에서 청중들은 자리를 나누어 앉게 되었다. 학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른편으로,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왼편으로.

나는 잠시 망설이다 왼편에 앉았다. 물론 학업과 인간관계는 모두 중요하다. 토론조 학생들도 그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찬반 논의를 위해 양자택일의 극단적 상황을 설정했던 것이다. 그날, 나를 제외한 청중은 열세 명이었다. 인간관계를 선택한 학생은 세 명인 반면 학업을 선택한 학생은 열 명이었다. 그 격차가 내게 일단 충격을 가했다.

토론이 시작되었다. 학업과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가상 인물이 등장했다. 신입생 시절부터 강의실과 도서관만 오가며 공부에 매진해 매학기 장학금을 받고 성공적인 미래를 앞둔 ‘김독고’, 그리고 각종 모임과 행사에 빠지지 않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지만 공부에 쓸 시간이 부족해 간신히 졸업이나 할 수준인 ‘이콜택’(이 이름은 콜택시에서 따온 것으로 부르면 늘 달려오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이었다.

여러 논의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 우선 김독고 측에 대한 이콜택 측 비판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사람이 홀로 이룰 수 있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고 따라서 인간관계를 다루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콜택 측에 대한 김독고 측의 비판은 인간관계의 불안정성과 피로도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과도한 인간관계는 결국 휩쓸리고 소모되는 삶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이후 학업과 인간관계 중 어느 쪽 복원이 더 쉬운가에 대해서도 양측 의견이 대립했다. 김독고 측은 원하는 직업을 갖고 안정을 찾은 후 인간관계를 복원하면 된다고 했고 이콜택 측은 폭넓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필요한 도움을 얻어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모두 납득이 가는 얘기였다.
토론이 끝난 후 생각이 바뀐 청중은 자리를 바꿔 앉으라고 했다. 학업을 선택했던 학생 한 명이 인간관계 쪽으로 넘어와 학업 쪽 아홉, 인간관계 쪽 네 명이 되었다. 격차가 조금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학업이 대세였다. 학생들은 토론을 평가하면서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양자택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법학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졸업반 학생은 현재로서는 학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입장이 달라지면 선택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학업 아닌 인간관계를 선택한 이유도 1987년 입학 후의 4년이 학업에 별 비중을 두지 않고 흘러갔다는 개인적 경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졸업 후 그럭저럭 먹고살 수는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던 때였다. 나는 강의실보다 동아리방이나 독서모임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학점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 자체가 내 주변엔 드물었다(유유상종이라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경험 때문인지 과제와 시험으로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내는 지금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가 겪은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한 입시교육을 거친 후 다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경쟁 단계에 돌입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인간적 교류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김독고 측을 선택한 학생들의 모습이 그래서 충격적이었다.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 불가능해진 세상이 결국 문제의 원인인가 보다. 학생들과 나는 서로 다른 조건에서 학부 시절을 보내는 존재, 그리하여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존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어쩐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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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님의 칼럼을 정독하던 중 흥미로운 글이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이상원 교수님도 글을 참 재밌게 잘 쓰시는 듯 합니다. 저에게 학업과 인간관계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학업을 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인간관계의 핵심은 결국 성공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 둘 모여들어 형성된다고 봅니다. 소위 내가 잘 나갈 때에는 평소 연락이 뜸한 친구들부터 시작하여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며 인맥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망했을 때에도 내 곁에 있어줄 친구 한두 명은 필히 있어야 합니다.

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무엇하나 이뤄낸 것이 없는 상태; 극단적인 예로 백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한들, 정말 절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굳이 저를 만나 친목을 다져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람과 있으면 재밌고 즐겁고 유쾌하다면 지속적으로 만나며 친목을 쌓겠지만 일반적으로 백수의 일상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즐겁고 재밌는 친구라도 백수라는 타이틀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존감과 유쾌함을 잃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고 결국 '학업'을 선택하는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요즘 시대는 능력주의 시대이므로 오히려 인간관계를 이용하여 좋은 자리에 편승하려는 생각이 구시대적 사고발상이라고 봅니다. 졸업만 간신히 할 정도로 학점을 맞춰놓고 대학생활 내내 즐거움을 누리다가 본인이 구축해 놓은 휴먼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학업에 열심히 치중했던 다른 학우들 만큼의 위치에 도달하려는 그 생각이 현 시대와 괴리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학업과 인간관계 중 딱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십니까?

양종훈

2022/01/21

학업에 한표 행사합니다. 인생에서 누굴 믿는다는건 너무 리스크가 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