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런던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샤픽(Minouche Shafik) 교수가 쓴 『What We Owe Each Other』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목이 말해주듯 우리 인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회계약(social contract)가 맺어졌느냐가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최근의 급변하는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합니다.
세계화, AI의 확산, 기후 변화, 고령화 등이 새로운 사회계약을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교육, 보건, 환경, 직업, 노인문제 등의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계약의 틀을 마련함으로써 우리 삶의 질이 퇴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사회계약의 틀은 여러분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는 삶의 질과 직결되는 교육이나 보건 그리고 사회안전망 구축과 관련한 투자에 인색하지 말고, 기업은 근시안적인 이윤추구에서 벗어나 이해당사자(stakeholder)들의 이익을 폭넓게 고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사회계약의 요체는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보호(minimum protection)를 제공하고, 어떤 위험의 경우에는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부담하게 하며, 모든 사람이 능력에 닿는 한 이와 같은 목표의 달성에 필요한 자금을 기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위험 분산의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함으로써 경제적 복지의 수준을 현저하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개의 인용문이 나에게 무척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루즈벨트(F. Roosevelt) 대통령의 말로써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진보를 측정하는 잣대는 부유한 사람의 주머니를 얼마나 더 두둑하게 만들어 주었느냐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몫이 돌아가게 만들어 주었느냐가 진정한 진보의 잣대입니다.”

(The test of our progress is not whether we add more to the abundance of those who have much; it is whether we provide enough for those who have too little.)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이 대목에서 최근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어느 대선 출마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과연 무엇을 사회의 진보라고 보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상속세가 부의 대물림을 막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최소한의 억제 장치도 없이 마음대로 부의 대물림이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또 하나 인상적인 인용문은 그 유명한 베버리지보고서(Beveridge Report)의 끝 부분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1942년에 나온 베버리지보고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cradle to grave)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제시한 책이지요.
이 문장은 그와 같은 복지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느냐에 대한 철학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너무나도 멋진 구절이라 그대로 인용해 보려고 합니다.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민주적 사회에 강요될 수도 없고 그냥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 그 싸움에서 이기려면 용기와 신념 그리고 국민적 일체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선 현실과 난관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미래 그리고 공정한 게임과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썼던) 자유의 이상에 대한 신념도 필요하다. 나아가 특정한 계급이나 부문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국민적 일체감도 없어서는 안 된 요인이다.”

(Freedom from want cannot be forced on a democracy or given to a democracy. It must be won by them. Winning it needs courage and faith and a sense of national unity; courage to face facts and difficulties and overcome them; faith in our future and in the ideals of fair-play and freedom for which century after century our forefathers were prepared to die; a sense of national unity of overriding the interests of any class or section.)


베버리지보고서가 제시한 복지사회의 청사진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복지사회의 건설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고 싸워서 얻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싸우지 않는다면 복지사회 건설의 꿈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말에서 일종의 비장함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막 복지사회의 길로 들어서려는 우리에게도 아주 귀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복지관련 지출을 일종의 낭비로 보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혹은 우리 사회의 복지관련 지출이 너무나 많다는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표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사회복지 관련 지출의 비중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멕시코를 빼면 표에 나온 OECD 여러 나라들 중 최하위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료의 업데이트가 필요하지만 업데이트 한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게 분명합니다.)
복지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잘못된 믿음, 잘못된 정보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나는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허공에의질주

2021/09/18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검찰-사법부-언론-정당으로 이어지는 기득권 카르텔이 너무 힘이 세서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보다 더 엄혹한 시대도 거쳐오신 교수님도 힘차게 진리의 목소리를 내고 계신데 저희도 더 노력해야겠네요.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추석 잘 보내십시오.

이준구

2021/09/18

허공에의질주 씨도 즐거운 추석 맞으세요

양종훈

2021/09/18

감동적이기까지 하네요... 낙수이론에 찌들대로 찌든 한국 경제학자들과 그들 주장을 앵무새처럼 받아쓰는 기성 언론들을 접할때마다 환멸감마저 느껴지는데 말입니다. 어째서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분배를 그토록 경멸하는걸까요?

넋두리

2021/09/18

추석 연휴 만큼은,,,,,잠시 고민 시름 걱정 내려놓으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복된 추석 되십시오

이준구

2021/09/18

넋두리 씨도요

83눈팅

2021/09/23

정말 지당하신 말씀이신데, 우리나라는 이 정도의 주장만 해도 거의 사회주의로 몰아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소위 주류 언론이라는 매체와 그 매체의 지면을 독차지하는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준구

2021/09/23

그런 무식한 짓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