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덥고 우울한 뉴스만 들려오는 꿀꿀함을 달래기 위해 가벼운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도 비만 인구가 늘어 걱정을 하고 있지만, 미국에 비하면 아직 새발의 피 수준에 불과합니다.
미국 거리를 다녀 보면 정말로 거대한 몸집의 남녀가 무척 자주 눈에 띕니다.

이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비만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햄버거 같은 즉석식품이나 청량음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비만세(obesity tax)를 부과하는 게 그 좋은 예입니다.
아직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지역에 따라 비만세를 부과하는 경우가 있나 봅니다.

비만세 부과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는 관점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을 먹고 비만해지든 말든 그것은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일이지 정부가 간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비만세 부과를 주장하는 사람은 비만의 문제가 순전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을 폅니다.
국민의 건강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면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공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요.

즉석식품이나 청량음료에 비만세를 부과하게 된다면 그 부담이 주로 빈곤층에게 돌아간다는 것도 중요한 반대 논리 중 하나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기 때문에 비만세 부담이 별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게 분명하지요.
비만세 부과로 인해 빈곤층이 무거운 세금 부담을 지게 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과연 비만세의 부과가 즉석식품이나 청량음료의 소비를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흡연을 줄이기 위해 담배세를 인상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논쟁과 아주 닮아 있지요.
예컨대 햄버거 가격을 5달러에서 6달러로 올린다 해서 과연 사람들이 햄버거 소비량을 현저히 줄이게 될까요?

최근 저명한 행태경제이론가 D. Kahneman 교수 등이 쓴 Noise라는 책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보았습니다.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중 하나가 레스로랑으로 하여금 메뉴에 각 음식의 열량, 즉 칼로리를 명시하도록 규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고열량의 음식을 피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위쪽의 사진에서 보듯, 어떤 레스토랑은 칼로리 수치를 가장 왼쪽에 배치하고 그 오른쪽에 음식 이름과 가격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메뉴를 만듭니다.
그리고 어떤 레스토랑은 아래쪽 사진에서 보듯, 칼로리 수치를 가장 오른쪽에 배치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메뉴를 만들든 그 효과에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행태경제이론을 연구하는 사람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둘 중 어떤 방식으로 칼로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사람들의 메뉴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 번째 방식 즉 칼로리 수치를 가장 왼쪽에 배치하는 방식이 낮은 열량의 음식을 선택하게 하는 데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임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글을 읽을 때 왼쪽으로부터 시작해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읽지 않습니까?
따라서 레스토랑에 가서 메뉴를 펴든 순간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어떤 음식의 칼로리 수치입니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듯, 처음 본 이 칼로리 수치가 깊은 인상으로 각인되기 때문에 음식 선택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설명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에서 이와 비슷한 실험을 실시해 본 결과는 그 반대로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가장 오른쪽에 칼로리 수치를 배치했을 때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더 큰 것으로 나타난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듯,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히브루어는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옮겨가면서 글을 읽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오른쪽에 배치된 칼로리 수치가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지요.

행태경제이론은 사람들이 일종의 마음의 결 같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결을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정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의 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을 '넛지'(nudge)라고 부르지요.
지금 설명해 드린 메뉴판의 이야기는 바로 이 넛지의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Cer.

2021/08/17

예전부터 생각해왔던건데 비만세는 정책적으로 정말 괜찮은 거 같아요.

비만세를 부과해도 정크푸드에 대한 수요가 별로 줄어들지 않으면 그만큼 조세수입이 증가해서 좋고 수요가 많이 줄어들면 국민들이 건강해져서 좋고 어느 쪽이든 효과는 분명히 볼 수 있는 정책 같다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앱클론

2021/08/17

저도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휘발유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할 것 같아요.

휘발유에 세금을 부과하면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여 어느 쪽이든 효과는 분명히 볼 수 있는 정책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친환경이 대세인 요즘 트렌드에 딱 어울리는 정책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굉장히 비쌉니다. 또한 휘발유세를 걷으면 영세민들만 더 궁핍해질 것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유지비가 부족하여 차를 파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비만세를 부과하면 잘 사는 사람들은 상관 없겠지만, 영세민들은 외식 예산이 줄어들고 특히 서구권은 정크푸드 산업이 서민들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잡혀 있어 수요가 비탄력적이라면 결국 가난한 서민들만 고통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패스트푸드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는 조세수입을 위한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합니다. 박근혜 정부 때 담뱃값 인상했던 것처럼요(담배는 백해무익한 반면 정크푸드는 담배보다 훨씬 낫고 허기진 배도 채울 수 있는 게 차이점).

허공에의질주

2021/08/18

휘발유에는 휘발유 가격의 절반이 넘는 유류세가 부과되고 있죠.

앱클론

2021/08/18

아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허공에의질주님!!

양종훈

2021/08/18

다른 건 몰라도 술담배에는 세금을 더 무겁게 메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