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새해 벽두부터 이명박, 박근혜 두 전 대통령의 사면 얘기가 불거져 나와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친이, 친박 인사를 중심으로 사면 얘기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원론적으로 말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맞기는 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사면의 혜택을 베풀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국민통합’을 위해 두 전 대통령을 사면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죄를 사회가 용서해 주기로 결정한다면,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차원에서 볼 때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그 두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광경을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모습조차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자신은 정치보복의 희생양이라는 태도를 보여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태도는 소위 친이, 친박 정치인들로 하여금 정치보복이라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의 충족 없이 덜컥 사면을 해준다면 결국 정치보복이었다는 그들의 논리에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사면이 결정되고 나면 그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제일 처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의 말이 나올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틀림없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맨 처음 나올 것이 너무나도 뻔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진솔한 반성과 사과라는 전제조건 충족 없이 사면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아직도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양 의기양양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지 않습니까?

멀리 올라가면 건국 직후 친일파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반성과 사과 없이 사면해 준 꼴이 되었기 때문에 출발점부터 이 땅에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친일파에 대한 철저한 숙청은 어렵다 했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국민 앞에 엎드려 자신의 과오를 사죄하는 모습은 보이게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너무나도 떳떳하게 건국의 영웅 행세를 하게 만드는 바람에 우리 사회가 출발점부터 꼬이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나는 두 전 대통령이 한 일에 비추어 볼 때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어불성설이라고 믿습니다.
대법원까지 세 단계에 걸쳐 한 점 의심의 여지 없이 유죄가 밝혀진 상황에서 그걸 정치보복이라고 한다면 이 땅의 정의는 땅에 떨어져 버린 셈입니다.
정치보복이라는 말은 편한대로 함부로 입에서 내서는 안 될 말입니다.

어떤 보수언론은 이런 잣대를 들이댈 경우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위협의 말까지 하더군요.
나는 만의 하나 문 대통령이 그와 비슷한 일을 했다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다만 나 개인적으로 문 대통령이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을 따름입니다.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사면을 결정하면 국민통합은커녕 국민분열의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두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 법률에 따른 정당한 조치였다는 사실은 무시되고 역사는 다시 거꾸로 흐르는 퇴행을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사면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종훈

2021/01/02

정부 지지율, 당 지지율이 하락하니 정권 재창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트라우마도 남아있을테니 미리 면죄부를 사두는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넋두리

2021/01/03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반성은 물론 사과조차 없고,,,오히려 오리발 내밀며 천수를 누리면서 자연사를 앞둔 역사의 대역 죄인에게 사면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요,,,

83눈팅

2021/01/05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트로크

2021/01/06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두 당사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당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때

사면이라는 것을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뒤통수를 너무 세게 맞아 머리가 띵합니다.

밯밯밯

2021/01/14

완전히 동의합니다.

심지어 당대표라는 사람이
당원들의 의견 일절 묻지않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는게 엄청 충격적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반복되온 가해자의 뻔뻔함과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제 3자들의 용서는

이제 되풀이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