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대 청소근로자들에게 영어 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갑질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시험 문제를 보니 어떤 건물이 몇 년도에 건축되었는지를 묻는 문제도 있더군요.
영어나 건축연도 같은 것이 그분들이 하는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건 불문가지의 일이지요.
나 역시 서울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쓸모없는 시험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던 분들에게 너무나도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이 단지 시험을 위한 시험을 치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직장 입사시험에도 내가 보기에는 업무와 별 관련이 없는 문제들이 숱하게 출제되고 있더군요.
심지어 공무원 시험에도 그런 문제들이 출제되는 사례가 그리 드물지 않구요.

제일 문제되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그런 시험을 위한 시험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시험은 아이들로 하여금 공부에 염증이 나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들의 지적 성장에 큰 타격을 줍니다.
여러분도 학교 다니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격의 시험과 관련해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겪은 황당한 경험 몇 가지를 말씀 드려 볼까 합니다.
우선 소개할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의 도덕시험입니다.
그 시험에 나온 문제들의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 우리 교실의 면적은 몇 평인가?
(2) 뒤편 동산에는 몇 개의 벤치가 있는가?
(3) 교감 선생님의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

한 마디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문제들 아닙니까?
이런 것들이 도덕과 무슨 관련이 있는데 우리가 그걸 대답해야 합니까?
단지 시험을 위한 시험에 불과할 뿐 학생들에게 손톱만큼의 도움도 되지 않는 시험이었지요.

또 하나 예로 들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역사 시험입니다.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지문이 등장하는데, 이것에 기초해 괄호쓰기 문제가 나왔습니다.

"우파니샤드와 베다는 고대 인도의 심오한 철학서다."

여러분이 문제를 출제한다면 어디에 괄호를 쳐서 문제를 만드시겠습니까?
당연히 아래와 같은 문제를 내지 않겠어요?

"( )와 ( )는 고대 인도의 심오한 철학서다."

이보다는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를 출제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파니샤드와 베다는 고대 ( )의 심오한 철학서다."

그런데 막상 나온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우파니샤드와 베다는 고대 인도의 ( ) 철학서다."

이 문제를 보고 괄호 안에 무슨 말을 집어넣어야 할지 몰라 머리를 쥐어짜다 결국 블랭크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괄호 속에 "심오한"이란 말을 집어넣어야 정답이 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걸 맞춘다 해도 도대체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을까요?
이런 시험을 치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내가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늘 지적하지만 아이들에게 쓸모없는 것들 가르치고 시험 치게 하느니 아예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라고 하는 게 훨씬 더 낫습니다.
공을 차다 보면 건강도 좋아지고 남과 협력하는 자세도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기억하는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병폐는 바로 공부에 염증이 나도록 만드는 교육입니다.

나는 내가 바로 이런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가 재미있어서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성적이 어느 정도 좋았던 건 성적에 무척 많은 관심을 가졌던 아버님께 혼나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죽어라고 시험 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시험을 잘 치려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 문제 푸느라고 잠을 지샜지만 그것들은 그 후의 내 인생에 손톱만큼의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수분해 문제 잘 풀었다고 경제학 교수로서의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요즈음의 교육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잘 모릅니다.
많이 좋아졌을 거라고 믿지만 아직도 그 나쁜 잔재가 꽤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공부하기 좋아하는 어린이가 거의 없겠지만, 최소한 "도대체 이런 공부는 왜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판다독

2021/07/08

일부(?)는 말하죠
성실성
그리고 변별력
때문이라고

그런 문제를 낸다는 건 교사 자격이 없는거죠
적어도 교육 목표에서 제시하는 건 그런 쓸데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다는게 아니잖아요

공무원 역사시험에도 책이 나온 순서를 맞추라고 하는데... 그게 훈련소에서 앞으로 군에서 볼 일도 없는 대통령 혹은 참모총장 등의 관등성명 외우라는거하고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이준구

2021/07/08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음이 많죠

앱클론

2021/07/08

저런 출제유형이 교수님 세대부터 이어져 왔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2000년대 당시 초등학생 시절에도 저런 유형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요즘 대기업들은 영어 점수나 다른 언어 회화능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취직된 사람들은 국내에서 일만 하더군요. 교육이 나중에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텐데 교육부 고위공직자들은 개선할 생각이 없나봅니다. 어쩌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기다려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종훈

2021/07/09

그보다 참담한건... 아무도 분노하는 사람이 없네요. 대자보도 붙이고 시국선언도 하고... 인권 공정 정의 좋사하는 분들 다 어디 계십니까?

Cer.

2021/07/09

이렇게 황당한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는 은사님의 큰 뜻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신 거 같아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면 40년도 넘었을텐데 40년도 더 된 문제를 기억하시다니..

이준구

2021/07/09

선생님이 심오한 철학서 문제 해설할 때 우리가 야유를 했더니 인간이 덜 된 넘들이라고 혼내더라구요

이준구

2021/07/09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때 시험문제도 기억해요
개구리 앞다리 뒷다리의 발가락 수가 몇 개냐는

내 기억의 최대한은 만 세살 때지요
부산 피난 시절 셋방살이를 했는데 내 나이 또래의 주인 집 딸이 우리를 무시하기에 덤벼서 싸운 기억요

Cer.

2021/07/11

역시 괜히 박사를 다신 게 아니시네요 ㄷㄷ..

이준구

2021/07/11

근데 박사를 다는 데 절실하게 필요한 능력은 기억력이 아니고 창의력이예요
내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