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을 쇠러 큰집에 갔을 때, 친척 동생이 신체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역 판정을 받았다고 하니 마음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언제쯤 입대할 예정이냐 물으니 확실한건 모르겠답니다. 그런 동생한테 저는 한 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언제, 무슨 병과에 가더라도 순국같이 멍청한 짓은 하지 말라고요.

제가 입대한 해가 14년도였습니다. 그때 국민들이 다 아는 임병장, 윤일병 사건이 연달아 터졌고 군 내부에서 한동안 꽤나 시끌벅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도 뉴스에서 비슷한 사건사고들이 나는 걸 보고 있자면 딱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곳에 아들들을 군말 없이 보내는 한국 부모들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요즘 군대가 무슨 군대냐면서 한심스럽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이 나라가 휴전국가가 맞냐고 성토하는건 기본이요, 다들 나약해빠져서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냐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더 나가면 문재인 정부가 국군을 고의적으로 약화시켜서 적화통일을 도우려 했다는 주장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처럼 복무기간을 2,3년으로 늘리고 구타 및 가혹행위로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고요.

제가 순국선열들을 모욕하고 비하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다른 국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허나 그런 마음을 갖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렇게 할 자신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허나 이 사회가 지향하는 바는 명백히 후자 쪽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내 한복판에서 떼죽움을 당한 무고한 이들을 조롱하고 비방하는것을 넘어 불순분자들로 취급하는 짓 따위를 사회가 용납할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걸 묵인하고 조장하는 정부의 지지율이 철통같이 유지될리도 없고 말입니다. 뭣보다 희생자 사망자 논쟁 따위는 벌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놀러가다 죽었는데 왜 국가 탓을 하느냐, 나라 지키다 죽었냐는 반론도 많은 걸로 압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같은 일이 있었죠. 그런 논리에 호응하는 세력이 여전히 많은 걸 보면, 국민의 존재가치는 오직 국가와 집단을 위해 헌신하는것 뿐인가 싶기도 합니다.

최근 정부는 주 69시간 내지 64시간 근무 중 한 쪽을 택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도입하겠다 발표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가 현실과 안 맞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인 모양인데 그런 판단을 내린 사람들은 주 52시간 근무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노동시간임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자는게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일지 몰라도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린지 직장인들이라면 모를 수 없을겁니다. 거기다 주휴수당까지 폐지한다면 사실상 일은 더 하고 임금은 줄어드는데 이걸 과연 개혁이라 부르는게 맞는 겁니까?

요즘 정부는 모든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조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노조 부패가 극에 달했단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의 노동권은 ILO 기준으로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 정부의 노동정책은 사용자 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들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일하는 당사자들 이야기에는 철저히 귀를 닫고 있는 걸 보자면. 정부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거는 노조를 불순분자로 몰아가려는 심보로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그걸 국가를 위한 결단이라고 포장해주는 보수, 경제신문들을 보면 역시나 이 나라 기득권들은 국민을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 정도로 여긴다는 확신이 듭니다.

저는 국가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고 믿습니다. 물론 국민도 국가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걸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국가에 대한 무한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1946년 쓰여진 채만식 작가의 소설 논 이야기 말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무려 70년 전에 쓰였던 문장이, 현재의 제 심정을 대변해주는것이 씁쓸하기까지 하네요.

"일없네.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길 삼십육년두 나라 없이 살아왔을려드냐. 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 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다 마음을 붙이구 살지. 독립이 됐다면서 고작 그래, 백성이 차지한 땅 뺏어서 팔아먹는 게 나라 명색야?"

애그

2023/02/28

하신 말씀에 거의 모두 공감합니다. 요즘 합계출산율이 0.78이 나오면서 저출산이 다시 화두가 되는 것 같은데 ... 저출산의 직간접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장 근저에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근로시간(넓게는 근무여건), 노조, 병역,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등등... 결혼도 미루고 출산도 하지 않는 것이 집값이 너무 오르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 자체부터가 사람이 경시되니까 그런거 아닐까 싶고... 만에 하나 집값이 비싸지가 않고 먹고 살만 하다고 할지라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이미 과도하게 많은 근무시간 늘리고(근무시간 늘리지 않으면 경제가 망할 것처럼 떠들고) 임금은 그대론데 물가는 오르고 노조는 부패하고 썩었다고 하고, 병역은 비리가 많고(병역면제같은 비리뿐만 아니라 장성급을 위주로한 장교들의 여러 ... )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때 희생자들을 대하는 태도... 내 자식이 그럴 수도 있다면 먹고 살만해도 애를 낳아 그런 사회에 살게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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