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하나로 UC Berkeley의 카드(David Card) 교수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경제학자이기도 하고, 또한 나와 나름대로 학연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카드 교수는 나와 비슷한 시절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Princeton대학 동문입니다.
나는 198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는 198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몇 년 동안은 학교를 함께 다녔을 테지만 솔직히 말씀 드려 그때는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습니다.
나중에 카드 교수가 유명해진 다음 사진을 보니 경제학과에서 몇 번 보았던 얼굴임이 기억나더군요.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그때 어깨동무하고 사진 한 장 찍어놓았어야 하는데요.)

Princeton대학 경제학과는 노동경제학이 상당히 센 편입니다.
O. Ashenfelter 교수가 일종의 대부 역할을 해서 수많은 세계적 노동경제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카드 교수도 그 팀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카드 교수가 지금은 Berkeley에 재직하고 있지만, Princeton대학에서도 꽤 오래 동안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카드 교수가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연구업적은 최저임금(minimum wage)의 효과에 관한 것인데, Princeton대학의 동료였던 크루거(Alan Krueger) 교수와 공동작업으로 이 문제에 관해 중요한 논문도 쓰고 책도 썼습니다.

이 두 사람이 1994년 American Economic Review에 발표한 “Minimum Wages and Employment: A Case Study of Fast-Food Industry in New Jersey and Pensylvania”라는 논문은 경제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경제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최저임금의 인상이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90%가 넘습니다.
말하자면 최저임금의 인상이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 표준적인 견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뒤집는 실증연구 결과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공동작업은 1995년에 출판된 Myth and Measurement라는 멋진 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뉴저지 주가 1992년 최저임금을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인상시킨 것의 효과가 무엇인지에 관심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에 비해 인근의 펜실바니아 주는 4.25달러의 최저임금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에 착안해 펜실바니아 주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통제집단으로, 그리고 뉴저지 주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실험집단으로 삼아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분석했던 것입니다.

분석의 결과 뉴저지 주의 최저임금 인상이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저임금)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의 고용을 줄이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고용주들이 최저임금 인상분의 상당 부분을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시켰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태여 고용을 줄일 필요가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상대로 그들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론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카드 교수와 크루거 교수의 연구결과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연구가 경제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는 긍정적 평가가 더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카드 교수가 오늘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 아닙니까?

카드 교수는 1995년에 노벨경제학상에 버금가는 명예라고 할 수 있는 J.B. Clark 메달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40세 이하의 경제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올린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인데, 이 상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후일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됩니다.
카드 교수도 그 전형적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밟은 셈이지요.

어제 카드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불현듯 그의 절친한 학문적 동료 크루거 교수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카드 교수에 못지않은 학문적 업적을 올렸고 현실의 경제정책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2019년 알지 못할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행한 경제학자입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Council of Economic Advisors 의장을 역임한 그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표적 경제학자 중의 하나입니다.
나는 그의 진보적인 견해에 늘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생존해 있다 하더라도 카드 교수와 나란히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동작업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좋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듣기에 인품도 매우 훌륭했다고 하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못내 아쉽군요.

그런데 카드 교수와 크루거 교수의 분석결과를 바로 한국의 경우에 대입해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연구가 이루어졌을 때의 미국과 지금의 한국은 상황이 매우 다른 게 분명하고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도 다를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인상은 무조건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결론은 성급한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ps. 첨부한 두 장의 사진 중 왼쪽(혹은 위쪽)은 Princeton대학의 본관인 Nassau Hall입니다.
미국 독립 전에 대륙회의가 잠깐 열린 바 있고, 독립전쟁 때는 포격을 받은 바도 있다는 유서 깊은 건물이지요.
오른쪽(혹은 아래쪽) 사진에서 기념물 뒤로 보이는 것이 우리가 공부할 당시의 경제학과 건물인 Dickinson
Hall입니다.
내 청춘의 상당 부분을 매일같이 여기서 보는 정원을 오가면서 보낸 셈이지요.

앱클론

2021/10/12

아...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양종훈

2021/10/14

한국 경제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견해네요

앵무쥐

2021/10/14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서 카드 교수님이 최저 임금에 대해 쓰신 책을 읽고싶었지만 찾기가 어려워 아쉬웠는데요. 교수님 글을 통해 논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홍선생

2021/10/14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요.. 가볍게 유효수요만 생각해 봐도 생계가 어려울 정도의 너무 낮은 최저임금은 대공황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최저임금 올리면 하나 같이 다 죽는다고 하는 걸까요... 심지어 올려서 나빠진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었는데 말이죠. 혹시 있으면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나요?

83눈팅

2021/10/19

폴 크루그먼 교수의 뉴욕타임스 칼럼에서도 카드 교수의 최저임금 관련 연구를 자주 인용하는 걸 보았습니다. 교수님과 인연이 있는 분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니 더 축하해 주고 싶네요. ㅎㅎ

애그

2021/10/27

시간이 지나서 이 댓글을 선생님께서 보지 모르겠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연구가 가지는 의의, 가능하다면 비하인드 스토리와 이런 에피소드 같은 것들을 책으로 엮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노벨물리학상이나 화학상 같은 경우는 아무리 쉽게 풀어써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데 경제학은 선생님의 필력이라면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경제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책이 있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건 경제학을 전공하는 저만의 생각인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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