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주식시장을 보면서 1996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었던 그린스펀(A. Greenspan)이 했던 “비합리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란 말이 얼핏 떠오릅니다.
그 당시 미국 주식시장에서 인터넷 버블이 커지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한 말이었지요.
주식의 가치가 올라가야 할 근본적인 이유 없이 단지 심리적 이유만으로 근거없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가는 데 대한 경고의 말이었습니다.

현재 우리 주식시장이 당시의 미국 주식시장 상황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오직 주식시장만은 독야청청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소위 말하는 젊은 세대의 '영끌 투자' 열풍이 이와 같은 고공행진의 주된 동력 중 하나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요즈음 신문에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는 ‘LH사태’를 통해 밝혀진 부동산 투기 광풍에 비하면 그와 같은 주식시장의 열기는 ‘새발의 피’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밝혀진 LH 임직원들의 투기 행위는 겨우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음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이 사회에서 소위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과 친분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큰돈을 벌어왔는지 도대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증권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소식을 틈틈이 듣지만, 개발 호재를 미리 알아내 일확천금의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지요.
땅 투기에 그치지 않고 아무 쓸모도 없는 나무들 심어놓아 수십억원의 보상금까지 챙긴다는 데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백만 명이 넘는 무주택 서민들의 눈물을 짜내 자신의 배를 불리는 모리배의 검은 심보에 화를 참을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이라고 부동산 투기가 정말로 수지맞는 장사라는 사실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러나 매달 받는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보통의 젊은이들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운동장이겠지요.
부동산 투기는 정보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재력을 갖춘 기성세대들의 독무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부모의 후원 덕분에 어린이 시절부터 부동산 투기대열에 뛰어들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투자가 가능한 주식시장이나 가상화폐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마련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주식이나 가상화폐로 일확천금을 꿈꾼다는 건 건전하지 못하다고 설교해 보았자 꼰대의 잠꼬대 같은 소리로 치부되기 십상일 겁니다.
“이 놈의 세상에서 건전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기는 불가능해졌다.”는 볼멘 대답이 돌아올 게 너무나도 뻔합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개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물론 나도 작으나마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한 일이겠지요.
집 없는 서민들과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무력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낍니다.

LH사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투기꾼들을 모두 찾아내 벌주겠다고 나섰지만, 과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지는 큰 의문입니다.
그 동안 이와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일어났지만 늘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로 끝나곤 했지요.
아무리 수사력을 동원한다 해도 차명으로 꽁꽁 숨어버린 투기꾼을 모조리 색출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게 분명합니다.

물론 투기꾼을 찾아내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투기꾼들은 처벌은커녕 주위의 손가락질조차 받지 않고 너무나도 떳떳하게 배를 불려왔습니다.
그런 부도덕한 행위에 가혹한 사회적 형벌을 부과함으로서 재발을 막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투기꾼 몇 명을 찾아내 벌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대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그와 같은 투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이런 근본적 해법을 찾지 않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온 나머지 오늘의 이런 지경에 이른 것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언론의 논조를 보면 정부가 투기꾼을 색출하는 작업이 서툴다는 데 비판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론도 그쪽으로 흐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 비판이 틀린 것으로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원한다면 그런 식으로 여론을 조성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LH사태가 재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구조 그 자체도 손을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란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 기술혁신에 의한 건전한 성장은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하려면 비판의 초점을 바로 여기에 맞춰야 합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문제인데 하루 이틀 사이에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언젠가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볼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앱클론

2021/03/13

교수님, 저희 20~30대 입장을 이토록 명확하게 대변해 주시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아래는 제 개인적인 넋두리 입니다.

요즘 세상은 말 한 마디, 단어 하나에 잘 나가던 스타들도 몰락하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작은 실수에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며 다른 개개인의 가치관을 자신들의 가치관과 획일화시켜 어떠한 사태나 논란에 동조하게 끔 만듭니다. 동조하지 않으면 공감 능력이 부족하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구박하기 일쑤입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확증 편향이 더욱 심해진 탓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려고 노력하는 저에게 이번 사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 대부분이 투기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삶의 의욕이 사라져 가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 말대로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는 말이 전적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또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더라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현실임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깨우쳤습니다.

그때 그 발언이 화제일 당시에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었는데, 그분 말을 곱씹어 보니 그분은 진정한 진실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꿈과 포부를 크게 가지고 살라는 말은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다 같은 생각이겠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혹시 모를 개천의 용을 위함이거나 공분을 사지 않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음식 없이는 40일을, 물 없이는 4일을, 공기 없이는 4분 밖에 생존할 수 없지만 희망이 없으면 단 4초도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거짓된 희망, 즉 희망고문이라면 단 4초도 살기 싫습니다. 이젠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일지라도, 그분과 같이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진실과 한계를 이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83눈팅

2021/03/15

교수님의 말씀이 천만번 지당하신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LH 사태를 기화로 종부세 폭탄 기사를 도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언론은 어째서 겉으로는 부동산 투기를 비난하면서도 실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는 제도는 그토록 비판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준구

2021/03/15

83눈팅씨의 말이 맞아요.
속으로는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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