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지인들이나 친척들을 만나면 정치 얘기는 가능한 한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정치 얘기로 핏대를 올리며 논쟁을 벌이다 보면 모처럼의 즐거운 모임이 깨져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동창들의 단톡방들도 정치 관련 글을 올리지 말자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곳이 많군요.

모든 사람의 정치적 견해가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정치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면 논쟁이 벌어지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 요즈음처럼 그 논쟁의 강도가 심했던 경우를 예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신념의 양극화(polarization)가 너무나 극심한 나머지 정치 얘기만 나오면 멱살잡이라도 할 듯 흥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제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입니다.
어느 누구든 원래 갖고 있던 생각에서 한 치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 생각이 전혀 사리에 맞지 않고 상식에 크게 어긋난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모두가 내 생각은 맞고 네 생각은 틀리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애당초 설득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자신이 갖고 있는 믿음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고집쟁이라고 합니다.
심리학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런 성향을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르지요.

이 확증편향은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는 습성을 가진 데서 나옵니다.
자기의 믿음과 일관되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상반되는 증거는 보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신념이 점차 극단화되어 가는 경향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확증편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실험의 결과로 밝혀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특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그에게 10가지의 증거들을 보여줬습니다.
그 중 5개는 그의 믿음을 정당화해 주는 증거이며, 다른 5개는 그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편향성(bias)을 갖지 않고 모든 것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실험이 끝난 후의 인터뷰에서 그의 신념이 어느 정도 약화되었다고 대답할 게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이 틀렸다고 말해주는 증거를 5개나 봤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신만만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 실험의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전보다 자신의 믿음이 한층 더 굳어졌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의 믿음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증거는 아예 쳐다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해 주는 정보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나오는 것이지요.
새로이 얻는 정보에 따라 자신의 믿음을 수정해 가는 유연성은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확증편향만으로는 요즈음 급격히 심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확증편향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존재해온 특성이며 최근 들어 나타난 특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확증편향이란 인간의 기본적 특성에 최근의 어떤 사회적 현상이 결합되어 극심한 양극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양극화의 심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최근의 사회적 현상은 소시얼 미디어(social media)의 급속한 확산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소시얼 미디어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해 우리는 매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신문 안 보고 TV 보지 않으면 세상일을 어느 정도 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시얼 미디어 때문에 한시라도 세상일을 잊고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일 중에서 정치와 관련이 없는 것은 거의 없고, 따라서 소시얼 미디어의 확산은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 같이 접하는 수없이 많은 정보들 중 최소한 절반은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해 주는 것일 텐데, 이로 인해 그의 신념은 날이 갈수록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소시얼 미디어의 콘텐트 생산자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점차 더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유투브처럼 돈과 관련이 된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무슨 주장이라도 서슴지 않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소시얼 미디어의 노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시얼 미디어에서 접하는 정보가 상식에 비추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를 검증할 생각은 전혀 없고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보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신념의 양극화는 필연적인 귀결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념의 양극화로 인해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날로 더 혼란스럽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적 현상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 점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문제는 이것을 해결할 뾰족한 방책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나 역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ps.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신념의 양극화가 비단 우리 사회에만 국한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과 소시얼 미디어의 확산이 우리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이 아님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83눈팅

2021/06/24

교수님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연세드신 분들에게는 유튜브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음악을 듣거나 의학 정보를 얻는 정도 외에는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전철에서 연세드신 분들이 극우적인 성향의 정치적인 내용의 유튜브를 시청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고, 어떤 분들은 일부러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이 이어폰도 사용하지 않은 채 음량을 크게 해 놓고 시청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이준구

2021/06/24

다른 사람 들으라고 그런 게 맞을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좀 별나지요

long

2021/06/24

나꼼수 김용민 이런사람이 YTN 사장 공모한다는데, 우리나라 언론계 말 다했죠 ㅠㅜ
김어준 이 사람은 아직도....ㅠ

판다독

2021/06/24

알고리즘입니다
이 알고리즘이 유튜브나 SNS에서 취향을 찾아준다고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너가 지난 번에 봤던 영상과 비슷한 걸 찾아준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 영상 하나를 보면 그와 관련된 영상을
백종원 영상을 보면 요리 관련 영상이 나오는거죠

정치 영상도 예외가 없습니다. 본인의 성향의 영상을 찾아보면 그와 비슷한 성향의 영상이 계속 추천됩니다. 유튜브에 그런 영상들만 뜨면 세상이 그런가보다 하게 됩니다

미누스

2021/06/24

나랑 정치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이 나의 골육이 될 수 있고, 나의 베프가 될 수 있는데 왜 말을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말을 팍팍 내뱉으면 그게 온당할까요.

미누스

2021/06/24

신념의 양극화를 지적하는 노학자의 근심 가득한 옥고에 편향된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비아냥으로 가득찬 댓글을 달았네요.

튀폰

2021/06/24

kmooc땡큐/ 정작 그 언론인들이 나꼼수만도 못한거보면 언론계 말다했죠

양종훈

2021/06/26

문제는, 거기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의 출처가 대체로 공신력이 있단 점입니다. 어느 대학교수, 연구원, 석박사들의 이야기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