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학자 중의 한 사람이지만, 솔직히 말해 학자들이 하는 연구 중 많은 것들이 공리공론(空理空論)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은 그 자체로 그것의 실용적 쓸모와 관계없이 중요한 일이고, 어떤 성격의 것이든 학문의 연구는 이 점에서 중요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연구가 우리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개선해 주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다.

최근 The Economist지에서 그래핀(graphene)이란 신물질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연구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2004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가임(A. Geim)과 노보셀로프(K. Novoselov)라는 두 물리학자가 그래핀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르고요.

그래핀이라는 물질의 잠재력이 무지 큰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동안 실용화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그래핀의 킬러 앱(killer app)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그래핀이 가까운 시간 안에 우리 삶을 크게 바꿔놓으리라는 기대가 급격히 커졌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내가 읽은 기사를 요약하여 이 신물질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해 드리겠습니다.

반복되는 육각형 모양으로 얽혀진 탄소원자의 단분자층(monolayer)인 그래핀은 강철보다 200배나 더 큰 강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게가 무지 가볍고 유연성이 크다는 성격을 갖는데다가, 열과 전기의 전도성이 엄청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빛을 흡수하는 흥미로운 성격까지 갖추고 있답니다.
이런 성격들로 인해 그래핀이 다양한 산업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최근 발견된 그래핀의 킬러 앱 중 하나는 시멘트에 소량의 그래핀을 섞음으로써 그 강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멘트의 0.1%만 섞어도 콘크리트의 강도가 30% 이상 높아진답니다.)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난화가스의 8%가 시멘트 제조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소량의 그래핀을 섞음으로써 시멘트를 적게 써도 된다면 이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큰 이득이 아닐 수 없지요.

더군다나 그래핀을 섞은 시멘트 콘크리트는 그 안에 있는 철근의 부식속도를 늦추는 장점까지 갖는다고 합니다.
시멘트 콘크리트의 작은 틈으로 물이 스며들고 이것이 철근의 부식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래핀을 섞은 시멘트 콩크리트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답니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래핀이 시멘트 콩크리트의 강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아예 철근으로 보강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작년에 맨체스터 대학교의 연구팀이 한 건설회사와 공동작업으로 체육관을 지었는데, 그래핀을 활용한 공법을 써서 건축에 드는 자재를 1/3이나 절약할 수 있었답니다.
시멘트나 철근을 제조할 때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환경친화적인 공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그래핀의 활용이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줄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핀의 또 다른 활용가능성은 도로 포장용 아스팔트에 섞어 그 강도를 높이는 일입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아스팔트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틈이 가고 구멍이 생겨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그런데 그래핀으로 강화된 아스팔트는 그런 문제가 훨씬 덜 생기는 이점이 있다고 하네요.
당연히 아스팔트의 수명이 길어지는 이점이 생기겠구요.
흥미로운 점은 자동차 타이어에 그래핀을 첨가함으로써 그 수명을 늘리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는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핀이 배터리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도 활용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더 가볍고, 더 오래가고, 더 빨리 충전되는 배터리를 만드는 데 그래핀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전기자동차의 시대가 열릴 것이 분명한데, 이와 같은 활용가능성은 가히 ‘그래핀의 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그래핀의 공급이 수요에 맞춰 빨리 증가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종전에는 그래핀이 포함된 광석을 채굴해 그것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주로 썼으나, 이제는 인공적으로 그래핀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었다고 하네요.
심지어 쓰레기나 폐기 플라스틱에서 그래핀을 추출할 수도 있다니 너무나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메탄가스에서 카본을 추출하는 방법인데, 이산화탄소보다 더욱 강력한 온난화가스인 메탄을 처리해 그래핀도 얻고 청정연료인 수소까지 부산물로 얻을 수 있다니 그것도 반가운 소식이구요.

그러나 그래핀의 광범한 활용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한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래핀이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미지수인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소량의 그래핀이라도 인체에 큰 해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의 광범한 활용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문제만 성공적으로 해결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그래핀의 혁명’이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핀의 혁명이 비록 또 하나의 산업혁명을 가져올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차세대의 중요한 먹거리를 제공해 줄 것은 분명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의 기술발전 속도를 볼 때 본격적인 그래핀의 혁명은 이제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느낌입니다.
우리도 착실하게 준비해 이 혁명의 대열에서 주역을 담당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양종훈

2022/06/22

백 번 옳은 말씀입니다.

Elon

2022/06/24

이미 물밑에서 많은 변화들이 꿈틀거리고 있죠 양자컴퓨터 유전자편집 AI VR 블록체인 우주산업(스타링크) 자율주행 등등등…
여기에 수많은 학자들의 노고가 담겨 있고 이제 기업들이 이것들을 세상에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가만히 있다고 바뀌지 않았습니다 작은 한 발자국들이 모여서 위대한 움직임을 만들었지요 수십년간 잠들어있던 이론들을 계속 관심을 가지고 결국 결과물로 나오던 것들이 위에 언급한 것들입니다 당장 ai는 이미 저희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고 mRNA백신은 우리를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시킬 수 있었어요 위에 쓴 것들 모두 하나하나 눈물겨운 스토리들이 담겨 있어요 저는 그들의 헌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수님 앞으로 20년은 정말 천지가 개벽할 껍니다(일단 제 닉네임에 있는 사람이 뭘 할지..)일단 오래 사셔야 합니다 그래야 재밌는 구경 실컷 하시지 않겠습니까? 꼭 같이 세상의 재밌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공유하고 싶네요

이준구

2022/06/24

오래 살면 재미있는 거 많이 보게될 것이란 말이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