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뽑힌 카드(D. Card) 교수 이야기를 하면서 크루거(A. Krueger) 교수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함께 수상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잖아요?
여러분이 잘 아시듯,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선정 기준 제1호는 생존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 이미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절대로 수상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또 하나 있습니다.
2002년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분야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카네만(D. Kahneman)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사실은 그와 함께 연구한 트버스키(A. Tversky) 교수도 당연히 함께 받았어야 했습니다.
불행히도 트버스키는 6년 전인 1996년 5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영광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두 명의 천재 심리학자 사이의 진한 학문적 우정과 이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도 그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 루이스(M. Lewis)는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저널리스트답게 또 한 권의 매력적인 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스라엘인인 두 사람은 1960년대 후반 각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Hebrew 대학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거기서 두 사람의 의기가 투합해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내내 공동작업으로 수많은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바로 이 연구들이 후일 행태경제학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들은 경제학자들이 신주단지처럼 떠받들어 모시는 기본가정, 즉 “인간은 합리적(rational)이다.”라는 것이 과연 현실과 부합되는지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그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지요.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부르는 주먹구구식의 판단방식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현실의 인간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이 연구과정에서 두 사람은 찰떡같은 팀워크를 이루었기 때문에 한 연구에서 누가 어느 부분에 주로 기여를 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합니다.
그들은 거의 매일 붙어살다 싶어 해서 심지어 배우자들이 그들을 질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거의 20년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그런 찰떡궁합을 이룬 사례는 심리학계는 물론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1970년대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연구업적으로 인해 그들은 심리학계의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심리학계뿐 아니라 경제학이나 철학 등 인접 학문분야에서도 그들의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들이 1970년대 말 미국 이주를 결심했을 때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그들을 유치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보면 그들의 학문적 위상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Michigan 대학은 그 두 사람과 배우자들을 합친 4명에게 모두 교수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그들의 배우자들도 상당히 유명한 심리학자였거든요.
결국 트버스키 부부는 Stanford 대학으로 가고 카네만 부부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살짝 엿볼 수 있는 것은 트버스키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Stanford에서 그를 영입할 때 일반적인 인사규정을 무시하고 최단시간에 오퍼를 낸 것만 보아도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의 수퍼스타급의 대우를 받고 그곳의 교수가 되었던 셈입니다.
반면에 카네만은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UC Berkeley에서 냉담한 대접을 받고, 결국 캐나다의 UBC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이룬 학문적 업적은 거의 전부가 공동작업이었고 누가 주도적 역할을 했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겁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나중에 그들이 이별을 고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심을 덜 받는 측으로서는 아무래도 공동작업에 회의를 느끼게 마련이니까요.

그들이 미국 이주를 결심한 것은 카네만의 재혼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 트리즈먼(A. Treisman) 교수와 재혼했는데, 그가 이스라엘에 살기를 좋아하지 않아 할 수 없이 미국으로 이주를 결심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트버스키도 할 수 없이 미국 이주 길에 따라 나선 것이구요.

카네만은 트버스키보다 나이가 3살 위인데, 약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과 다투기를 싫어하고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는 성격인가 봅니다.
아마도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어렵게 성장하면서 그런 소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나 봅니다.

이에 비해 트버스키는 매우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군의 공수부대에서 대위로 예편했습니다.
수에즈 전쟁, 6일 전쟁을 모두 실전투병력으로 참전했고, 욤키푸르 전쟁 때는 심리장교로 참전한 역전의 용사입니다.
전투에서 위험에 처한 부하를 극적으로 구조해 훈장을 탄 영웅이기도 하구요.
(카네만도 장교로 복무했지만 심리전단에서 일했기 때문에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학문적인 토론이 붙었을 때도 카네만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비해, 트버스키는 매우 전투적인 태도로 임했습니다.
상대방이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면 거의 짓이겨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정도의 공격성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트버스키가 좀 더 주도적인 입장을 취한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성격 차이로 인해 트버스키가 더욱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쪽이 사람들 눈에 더 잘 띄기 마련이니까요.
또한 그들이 각각 몸 담고 있었던 Stanford 대학과 UBC 대학의 명성 차이도 무시못할 영향을 미쳤을 게 분명합니다.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이 심리학계와 경제학 등의 관련 학계에서 명성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트버스키가 훨씬 더 많은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예컨대 천재들에게 주어진다는 MacArthur 상은 1984년 카네만을 빼고 트버스키에게만 수여되었습니다.
그리고 1985년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도 트버스키 혼자만 뽑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카네만은 훨씬 더 후인 2001년에 이르러서야 뽑혔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카네만이 명백하게 트버스키를 시기하지는 않았지만 심적 스트레스는 꽤 받았나 봅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1980년대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알게 모르게 냉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부터 UC Berkeley에서 가르치던 카네만이 1993년 서부를 떠나 동부의 Princeton 대학으로 가게 된 것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이별을 고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카네만은 더 이상 트버스키의 그림자 밑에서 살기 싫어 동부로 이주를 결심했다고 회고합니다.
그 후 그들은 가끔 대화를 주고받기는 했어도 상당히 피상적인 대화에 그쳤을 뿐 진지한 학문적 토론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카네만 말대로 그들은 ‘학문적 이혼’을 단행했던 셈이지요.

그들 사이의 교류가 거의 단절된 직후 트버스키는 카네만에게 전화를 합니다.
눈에 생긴 종양이 악성 흑생종으로 밝혀졌고 암이 온 몸으로 전이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앞으로 6개월 정도 더 살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1996년 6월 트버스키는 5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불꽃처럼 살다 간 한 천재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위의 사진 왼쪽이 트버스키인데, 상당한 미남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공수부대 유니폼을 입은 그의 당당한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아생전에는 두 사람이 이룬 공동작업의 과실을 트버스키가 더 많이 차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작 노벨경제학상이란 최상의 영예는 그를 피해갔습니다.
2002년 홀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 카네만의 제1성은 트버스키와 함께 나누었어야 할 영예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관한 한 가지 흥미로운 가십이 있습니다.
카네만의 두 번째 부인이며 Princeton의 동료 교수였던 트리즈먼은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트버스키의 부인인 Stanford 대학의 바버라(Barbara Tversky) 교수는 1998년에 홀몸이 되었습니다.
각각 배우자를 잃은 카네만과 바버라는 현재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그 가십의 내용입니다.
카네만과 트버스키의 찐 우정이 배우자들에게까지도 배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ps. 이 책에는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 사이의 대화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두 집단 사이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더욱 풍부한 학문적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패의 원인은 거의 전적으로 경제학자들의 오만하고 고압적인 태도 때문이었다네요.
대화의 장에 참여했던 심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오만함이 아예 몸에 배어 있었다고 합니다.
나로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평가지요.
어디에서든 경제학자는 겸손함이라는 덕목을 잊고 사는 사람들 같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