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손실 10년 뒤 177조... 전기료 올렸다”


이것은 위쪽의 사진에서 보는 어제 J일보의 제1면 톱기사로 올려진 탈원전 관련 기사의 제목입니다.
탈원전으로 인한 손실이 10년 동안 무려 177조원에 이른다는 것인데,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의 인터넷판 기사 제목이 "탈원전에 전력손실, 30년간 1,000조 - 국회 첫 계산서"로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1,000조원이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웬만한 사람은 놀라자빠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국회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와 같은 계산 결과를 산출해냈다는 듯한 뉴앙스의 제목도 문제가 많은 대목입니다.

알고 보니 이 기사의 소스는 한 야당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요청해 작성된 “에너지 전환에 따른 비용 발생”이란 제목의 간략한 보고서였습니다.
그 요청을 받아 국회입법조사처에 근무하는 한 입법조사관이 계산한 결과를 요약해 보고서를 만들었더군요.
따라서 그 보고서는 그 입법조사관 개인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을 뿐, 국회입법조사처의 공식적 견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국회입법조사처에 그것이 그 조직의 공식 견해인지 직접 문의해 보시면 과연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요?)

그런데도 그 기사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국회의장 직속 기구인 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지원을 위해 2007년 설립됐으며, 법에 따라 만들어진 국가가관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손실 비용을 추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 마치 그 보고서가 입법조사처, 나아가 국회의 공식 견해임에 한 점 의문도 없는 듯한 인상을 받지 않습니까?
어떻게 중앙 일간지가 이런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기사를 올렸는지 그들의 상식을 의심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이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 보니 계산 결과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더군요.
에너지 문제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눈부신 기술진보에 힘입어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 생산단가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World Economic Forum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합한 결과에 따르면, 2030년까지 태양광발전 생산단가는 약 50%, 그리고 풍력발전의 생산단가는 25%에서 50%에 이르는 범위의 하락폭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합니다.

정부간 기구인 국제재생에너지기구(The 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IRENA)에 따르면 작년도 8.5센트 수준이던 재생에너지 생산단가가 2050년에는 1센트에서 5센트에 이르는 범위 안에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생산단가가 2050년에 이르면 현재의 최대 1/8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도 이 보고서는 2050년에도 재생에너지 생산단가가 지금과 똑같다는 어처구니없는 가정하에서 비용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탈원전으로 인한 손실이 10년 동안 177조원에 이른다는 것은 아마도 기자가 그 보고서에 나온 수치를 보고 임의로 계산한 결과 같습니다.
보고서 그 자체에는 그런 주장을 한 구절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래쪽에 제시해 놓은 보고서 표의 수치들을 단순히 더하고 빼서 그런 결과를 얻은 것 같네요.

예를 들어 그 기사를 보면 재생에너지의 생산단가가 170원이라고 가정할 때 2021년의 경우 (원전을 계속 활용하는) 최적시스템의 생산비용이 35조 5,600억원인데 (원전을 활용하지 않는) 탄소중립시스템의 경우에는 36조 9,600억원으로 1조 4,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는 구절이 나오거든요.
(표의 첫 번째 행에서 그 수치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두 경우의 수치를 비교해 각 연도의 추가비용을 계산한 다음, 2030년까지의 단순합을 구해 10년 동안 177조원이 더 들게 된다고 결론을 낸 것 같습니다.
(내가 직접 단순합을 구해 보니 177조원과 다른 수치가 나오더군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계산과정에서 지극히 원론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그 기사 중에 (재생에너지의 생산단가가 170원을 가정했을 때) 2031년의 두 경우 에너지 생산가격이 각각 35조 7,200억원과 56조 7,500억원으로 탈원전으로 인한 추가비용이 21조 300억원에 이른다는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이 금액이 현재의 21조 300억원과 똑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경제학원론 배울 때 현재의 1원이 10년 후의 1원과 똑같은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걸 배우지 않습니까?
즉 미래에 예상되는 금액은 할인을 해서 현재가치로 환산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 기자가 미래에 예상되는 추가비용을 할인해서 10년 동안의 총 추가비용을 계산한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런 할인과정을 거치지 않고 10년 동안의 단순합으로 177조원이라는 수치가 나왔다면 그건 전혀 믿을 수 없는 수치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기사의 소스인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생산단가가 불변이라는 가정을 함으로써 탈원전의 비용을 엄청나게 큰 폭으로 과장한 계산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게다가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미래의 비용을 할인해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추가적인 왜곡을 가져왔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 기사의 신빙성은 0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기사가 중앙 일간지의 제1면 톱을 장식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네요.
이런 신빙성 없는 기사가 탈원전을 무조건 헐뜯고 보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낍니다.

ps. 이 보고서는 원전을 계속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최적시스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최적'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양종훈

2021/09/27

좀 알아보니까 탈원전이라고 해야 현재까지 폐로된 원전은 단 2기인데가 원전 가동률은 줄어든적이 없다고 합니다.

양종훈

2021/09/27

그리고 올해 초에 제기됐던 월성 방사능 물질 누출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https://youtu.be/wjBw83MB_1Y

홍선생

2021/09/27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원전은 수명을 다 한지 오래이지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폐쇄 해야 할 시기가 한참 지나 보수해서 사용 할 수 없는데. 사고가 날까봐 걱정입니다.

수원나그네

2021/09/2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입법조사처에서 누가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일종의 권력행위인데,
권력자자신이 휘두른 칼에 자신이 다친다는 '권력학법칙'을 벗어날 수 없겠지요.
중앙일보나 국힘당의원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