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미시경제학 책 129쪽에는 사교육의 예를 들어 ‘위치재’(positional goods)가 갖는 성격을 설명해 놓은 박스가 나옵니다.
위치재란 남들이 소비한 것과의 상대적 맥락에서 그 가치가 결정된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밥이나 고기는 내가 얼마나 먹는지 그 자체가 중요하지 남들이 그걸 얼마만큼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보석의 경우에는 내 보석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가 남들이 어떤 걸 갖고 있는지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집도 그런 측면이 있고 자동차도 그런 측면이 있을 겁니다.

말하자면 위치재는 남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상품인 셈이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소득이 더 커질수록 소비대상이 되는 상품 중 위치재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난했을 때는 늘어난 소득을 더 많은 식품이나 옷 같은 필수품을 사는 데 씁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부유해지면 남들과 경쟁하려는 목적에서 소비하는 상품들에 대한 지출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은 소득이 커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반드시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현상을 처음 발견한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지요.
낮은 소득수준에서는 소득이 커지면 행복감도 따라서 커지지만, 소득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 이르면 추가적 소득이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이스털린의 역설이 성립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을 바로 위치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소득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 이르면 위치재에 대한 지출이 많아지는데, 그런 성격의 지출은 행복감의 증가를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마음먹고 비싼 핸드백을 샀는데 이웃이 훨씬 더 비싼 핸드백을 들고 나선 것을 발견한 순간 불행에 휩싸이게 되지 않습니까?

위치재에 대한 소비는 일종의 군비경쟁(arms race)의 성격을 갖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어깨 위에 올라타려고 지출을 늘리는 것이 마치 냉전시대의 강대국들이 벌인 핵무기 개발 경쟁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군비경쟁이 아무런 실질적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낭비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위치재의 개념을 처음 소개한 허쉬(F. Hirsch)는 그런 경쟁의 낭비성을 다음과 같이 한 마디로 요약해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 잘 보려고 발꿈치를 들고 서면 아무도 더 잘 볼 수 없다.”
(If everyone stands on tiptoe, no one sees better.)
너무나도 멋진 비유 아닙니까?

우리 사회에서 위치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군비경쟁 중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로 사교육입니다.
내가 늘 지적하지만, 자식들을 인간적으로 더욱 훌륭한 사람 만들려고 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니지요.
오직 하나의 목적은 대학입시 경쟁에서 이겨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만들려는 것뿐입니다.

지금처럼 모두가 사교육을 시키는 경우와 모두가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경우 사이의 결과에서의 차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용의자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게임의 전형적 사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우월전략은 사교육을 시키는 전략이구요.

게임이론에서 우월전략은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선택하든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한 사람의 학부모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기로 하지요.
남들이 사교육을 시키는 경우라면 당연히 나도 사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남들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경우라도 나만 사교육을 시키면 그만큼 더 유리해집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남들이 사교육을 시키든 말든 나는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더욱 유리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모든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는 전략을 선택하게 되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 있는 서글픈 상황입니다.
모두가 사교육을 시키지 않기로 합의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행의 핵심입니다.

최근 Economist지에도 위치재로서의 사교육 문제를 다루는 기사가 올라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라고 봅니다만, 사교육을 둘러싼 학부모들의 군비경쟁이 가장 심한 나라의 예로 우리나라와 중국을 들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현재 미국 사회에서도 부유층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뺨치는 정도의 군비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지에 사는 아시아계 학부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겠지요.)

그 기사는 우리나라와 중국 정부가 이 낭비적인 군비경쟁을 막기 위해 도입한 조처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그와 같은 조치가 별 실효성이 없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 조치들을 피해갈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갖고 있을 테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반면에 스칸디나비아 나라들과 독일 등에서는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우리가 그 나라들에서 무언가 배울 점이 있나 하고 그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았지만 불행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휘게’(hygge)로 대표되는 소박하고 아늑한 삶에 만족하는 사회분위기가 그런 차이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처럼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이 심한 사회에서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군비경쟁은 부유층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기 때문에 신분상승의 기회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군비경쟁의 심화가 급기야 어떤 사람은 신분상승의 꿈조차 꿀 수 없는 사회를 만들까봐 걱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앱클론

2021/08/31

아... 부정하고 싶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 또다시 좌절하게 됩니다. 유튜브에 청년고독사라고 검색하면 KBS시사직격 다큐멘터리가 나옵니다. 남일 같지 않더군요. 만약 저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취업에 실패하고 전전긍긍하다 혼자 쓸쓸히 단칸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걸 머리속으로 그려보니 울컥합니다...

이준구

2021/08/31

아무리 현실이 냉혹하다 해도 굴복하지 말아요.

83눈팅

2021/08/31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답답해 집니다.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우리 현실에서는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일까요?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의 사회를 만든 데에는 우리 주류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이준구

2021/08/31

그들이 바로 능력과 노력만으로 성공이 가능하다는 헛된 신화를 뿌린 사람들이니까요
그런 신화가 기득권층의 독점적 지위 유지에 결정적으로 기여합니다

양종훈

2021/08/31

솔직히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학업에 도움이 된다는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학교수업은 이미 요식행위로 전락한지 오래라고 봅니다.

이준구

2021/08/31

그러니까 공교육의 충실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구요

넋두리

2021/09/02

에휴ㅠㅠㅠㅠ 과연, 대한민국에 희망은 있을까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희망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준구

2021/09/02

사실 이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예요
최근의 경제, 사회구조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더군다나 기득권층이 신자유주의 이념을 퍼트리고 있어 불평등과의 싸움이 더욱 힘들어진 상태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