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직업이 직업이시다보니 주위에서 "경제학을 왜 공부하여야 하는가?" 또는 "경제학을 공부하면 무엇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무엇이라고 보통 대답을 해주는 편인가요?

경제학 문제를 풀다 보면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습니다.

사실 제가 회계사시험 때문에 경제학을 어느정도 공부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효용함수, 에지워스박스 문제나 꾸르노모형의 반응함수를 구해서 수요함수 도출하는 문제 같은 걸 보다보면 시험이니까 공부는 하겠는데 이런 건 회계사 실무에도 별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습니다. 뭔가 학문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기교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경제학원론은 어느정도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미시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뭔가 큰 의미를 느끼기가 어렵더군요.

글을 쓰고 보니 간단한 질문은 아니긴 하네요. 교수님의 고견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준구

2021/08/29

경제학이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경제이론의 뒷받침이 없으면 경제의 현실을 분석하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경제학자들이 연구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삶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중에는 공리공론에 가까운 것들도 많은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학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경제이론은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봅니다.
사회에 나가 공직자가 되고 법조인이 되고 언론인이 되고 회사원이 되었을 때 대학에서 배운 경제이론 중 과연 몇 %를 써먹게 될까요?

예를 들어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복잡한 수학을 사용해 게임의 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공무원이나 법조인, 언론인의 경우도 아무 차이가 없을 테구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경제학원론에서 배운 것 이상의 경제학 지식은 단지 지식을 위한 지식에 불과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나는 경제학부 학생들에게 전공과목을 너무 많이 들을 필요가 없다고 조언합니다.
그 대신 역사, 문학, 철학, 과학 같은 기본교양 과목을 많이 수강하는 게 낫다는 거죠.
예술분야의 과목을 수강하는 것도 좋을 것이구요.

내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정말로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솔직히 말해 경제학 과목의 교육도 그리 충실하지 못했지만, 더욱 아쉬운 건 교양과목을 수강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지요.

당시에는 서울대가 종합화되지 않아 각 단과대학이 따로 논 셈인데, 내가 다닌 상과대학에는 교양과목을 담담하는 교수가 영어 한 분, 그리고 체육 한 분 딱 두 분뿐이셨어요.
영어를 가르치신 여교수님에게 "19세기 영시론" 하나를 수강한 게 내 교양과목 수강의 전부였습니다.

그 강의를 통해서 Keats니 Byron이니 Browning이니 하는 영국 시인들에 접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흥미롭고 유익한 강의를 단 하나밖에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게 너무나도 한스럽지요.
요즈음을 종합화된 덕분에 얼마든 수강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Cer.씨가 경제학에 대해 그런 의문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면 내 충고를 따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Cer.

2021/08/29

아,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경제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고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회계사 시험에서 시험 과목으로 출제되다보니 경제학을 공부했었습니다. 미시경제학 파트에선 정말 교과서에서 지엽적으로 다루는 부분까지도 간간히 출제되고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깊게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깊게 공부하면 뭔가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할텐데 그런 건 거의 없고 오히려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실생활과 유리된, 다소 거품이 낀 학문이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에서도 "이렇게 배워서 써먹을 데는 있냐?"라는 의견이 많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교양과목을 많이 수강하라고 해주셨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다른 교수님께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고요. 전공 과목이 따로 있더라도 일정 수준까지 전공 실력을 끌어올린 후에는 교양과목을 많이 들어두는 게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좀 깎아내린 것 같아서 교수님이 다소 언짢으셨을수도 있는데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구

2021/08/29

경제학 시험문제 내는 사람에도 문제가 있어요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지엽말단적인 문제로 수험생을 괴롭히니까요
그러니 이런걸 배워서 뭣하나라는 회의가 일게 마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