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쁜 일이 좀 끝나 한가하게 책을 읽을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N. Kishtainy라는 사람이 쓴 "A Little History of Economics"란 책이었습니다.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번역본으로 읽었지요.)
경제학의 역사를 빛낸 여러 사람들 위주로 재미있게 풀어쓴 해설서입니다.
그의 설명 중 내가 100%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약간 있어 여러분에게 강추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시장의 불완전성에 대한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적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A. Smith의 말을 따라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비유하잖아요?
각 개인의 이기적 행위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공익으로 이끌어준다는 내용의 비유 말이지요.
이 말은 시장메커니즘이 경제를 효율적 자원배분의 상태로 이끌어 준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지요.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신봉자들에게는 이 말이 마치 성배(holy grail)와도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이 그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시장메커니즘은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체제가 우리를 유도피아로 인도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내가 늘 지적하듯, 시장경제체제의 기본원칙인 '1원 1표'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1인 1표'와 상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평성의 차원에서 시장에 대해 크게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이 분명합니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시장이 효율적일 뿐 아니라 정의롭기까지 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지만 이건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관점에서도 시장은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경제학 배울 때 귀따갑게 들으셨겠지만, 시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와 같은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가 발생할 때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자원배분은 비효율적이 되는 겁니다.
시장의 실패는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드문 현상이 아니고 우리 삶에서 자주 발생하는 매우 흔한 현상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티글리츠 교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건 시장근본주의자들만 믿는 신앙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이지요.
스티글리츠 교수가 쓴 글들 보면 여기저기서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잘못된 믿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A Little History of Economics"에서 인용한 스티클리츠 교수의 발언이 너무나도 통쾌하더군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발언 말이지요.
그런 손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걸 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는 말인데, 이걸 보고 너무나도 큰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시장을 맹신하는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종훈

2021/04/30

시장이 실패할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부 개입으로 인한 실패보다 훨씬 낫다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려운게 정부가 시장을 무시해서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준구

2021/04/30

이런 논쟁은 끝이 없으니 아예 말려들지 않는 게 상책이예요
각자 거의 확신범에 가까운 믿음으로 싸움을 벌이니까요
경제에서는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자 제주장만 늘어놓기 일쑤니까요

이준구

2021/04/30

내가 지적하는 건 단지 시장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뿐이지요

양종훈

2021/05/01

네. 답변 감사드립니다.

83눈팅

2021/05/04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은 아마도 서구에서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신의 개념을 경제학에도 확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저 나름의 추측을 해 봅니다. 미국의 에반젤리칼 기독교인들은 기후변화도 신의 뜻에 의한 것이며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하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