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하버드 대학교의 두 저명한 교수가 “Growth in a Time of Debt”라는 논문을 발표해 경제학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들은 라인하트(C. Reinhart)와 로고프(K. Rogoff)인데, 경제학계에서는 꽤 지명도가 높은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이 논문은 국가채무가 너무 높은 수준으로 오르면 경제성장이 크게 위축된다는 실증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그들은 국가부채의 수준이 GDP의 90%를 넘기 시작하면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수습과정에서 각국 정부가 대규모의 재정부양을 실시하고 있어서 국가부채의 수준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정부가 국가부채가 높아지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재정부양을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긴축기조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연구결과는 재정긴축(fiscal austerity)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연구결과를 인용해 이제는 무모한 재정부양을 끝내고 긴축기조로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실 연구자 자신들은 그 실증연구 결과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을 경계했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마치 진리라도 되는 양 부풀려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공화당의 대표적 정치인인 라이언(P. Ryan)은 “Path to Prosperity”라는 보고서에서 그들의 연구결과가 너무 높은 국가부채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상식을 결정적으로 입증했다고 치켜올렸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인식하에서 공화당의 예산안 RR 2020a가 작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여러 정치인들이 그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재정긴축을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라인하트와 로고프가 재정보수주의의 아이콘으로 한창 떠오르고 있을 때 매우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University of Massachusetts의 한 대학원생이 그들의 실증연구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일개 대학원생이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을 상대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지금은 Loyola Marymount 대학의 조교수로 있는 헌든(T. Herndon)이 바로 그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애쉬(M. Ash)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었는데, 기성학자들의 실증연구를 하나 선택해서 그들이 낸 결론이 다시 나올 수 있는지 검증해 보라는 과제를 부여 받았습니다.
헌든이 선택한 실증연구가 바로 라인하트-로고프의 국가부채 연구였고, 그는 그 연구에 방법론상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컨대 그 연구는 20개국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실제 계산과정에서는 다섯 나라를 빼먹고 15개국에 대해서만 계산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와 관련해서는 모종의 데이터가 없어진 것도 발견했습니다.
미국과 뉴질랜드처럼 그 경제규모가 천차만별로 다른 나라들의 경제성과를 (가중치 없이) 단순 평균해 결과를 도출한 것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헌든은 2014년 이 검증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작성해 학술지에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University of Massachusetts의 애쉬(M. Ash) 교수와 폴린(R. Pollin)교수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Does High Public Debt Consistently Stifle Economic Growth? A Critique of Reinhart and Rogoff”라는 논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연구자들이 이 논쟁에 뛰어들어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경제학계의 중론은 국가채무의 수준과 성장률 사이에서 라인하트-로고프의 연구결과가 말하는 만큼의 명백한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국가채무의 수준이 GDP의 90%를 넘는 순간 성장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높은 국가채무의 수준이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해석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두 변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와 같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라는 지적이지요.
그 반대로 낮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국가부채의 수준이 올라가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요즈음은 조금 잠잠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국가부채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대규모의 재정지출이 불가피한 걸 뻔히 보면서도 국가채무 때문에 마치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떠들어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보수언론은 하루가 멀다 않고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을 것인 양 호들갑을 떨기가 일쑤였구요.

국가부채의 수준이 너무 높아지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국가부채의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재정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지의 타당성 여부입니다.
재정지출 확대와 국가부채 증가의 비용과 편익을 면밀하게 분석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구요.
이 문제와 관련한 우리 사회에서의 논쟁이 과연 이 상식의 수준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양종훈

2022/01/07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673230
눈덩이 나랏빚…이러단 국가신용등급 2단계 `강등`
한국경제연구원이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41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국가신용등급은 0.03단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경제신문은 국가채무가 늘어날수록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한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준구

2022/01/07

큰 틀에서 보면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질수록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게 맞는 말이겠지요.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단지 국가채무가 늘어난 이유가 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양종훈

2022/01/07

누구는 현 정부가 돈을 너무 흥청망청 쓴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너무 인색하게 군다고 비판합니다. 나라빚이 이번 정부에서 400조가 늘었다는데 어느 쪽 말을 들어야 할까요?

이준구

2022/01/07

이건 정확한 판단이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제 보고 싶은대로만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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