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평등한 사회 혹은 공평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소득이나 재산을 갖도록 만들면, 즉 결과의 동등성을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평등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런 정도로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회의 동등성', 즉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공평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일 겁니다.
이 기회의 동등성은 보수주의자들이 특히 즐겨 부르짖는 구호이자 동시에 상당수의 진보주의자들도 동의하는 개념입니다.
비록 마지 못해 동의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요즈음 무척 흥미로운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여기서 기회의 동등성이라는 개념이 갖는 함정을 잘 보여주는 그림 하나를 보았습니다.
K. Harden이라는 젊은 여성 심리학자가 쓴 The Genetic Lottery: Why DNA Matters for Social Equality라는 책입니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상태라 이 책에 대한 포괄적인 소개는 나중으로 미뤄야 하겠네요.

이 책은 유전적 요인이 어떤 사람의 건강이나 교육수준 그리고 소득수준 같은 여러 측면에 강한 영향을 준다는 학문적 연구결과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유전적 특성을 갖고 세상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지요.
가난한 사람은 그런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구요.

보수적 인사들은 이 연구결과를 인용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주장을 폅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대로 살게 되는 건데 사회가 개입해서 이런저런 정책을 써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이지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전에는 해결책이 없는 일이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유전적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을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보수적 인사들은 사회적 약자를 도우려 한다는 명목으로 실시되는 프로그램은 별 실질적 효과가 없는 낭비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대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는 사회구조를 만든다면 공평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요즈음 많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소위 '능력주의'(meritocracy)가 바로 이와 같은 생각과 맥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키가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야구장 펜스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광경을 묘사한 위쪽의 그림은 동등한 기회라는 개념이 갖는 함정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의 EQUALITY라고 쓴 그림을 보십시오.
모두가 똑같은 높이의 발판 위에 서서 똑같은 높이의 펜스 너머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보면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된 셈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니지요.
키가 작은 사람은 야구 구경을 하지 못하고 벽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진정으로 공평한 상황은 오른쪽에 EQUITY라고 쓴 그림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가 작은 사람에게는 더 높은 발판을 제공함으로써 키가 큰 사람과 똑같은 시야를 확보해 주는 것이 바로 공평함이지요.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특별한 배려가 주어져야 공평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Harden 교수는 이 이슈와 관련해 또 다른 사진 하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래 쪽 사진이 바로 그것인데, 자기 딸이 다니는 유아원 벽에 붙여 있는 포스터를 찍은 거랍니다.

사진 위쪽을 보면 "Fair isn't everybody getting the same thing."이란 말이 보입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준다고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아래 쪽에는 "Fair is everybody getting what they need in order to be successful."이란 말이 씌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주는 게 공평한 일이라는 뜻이잖아요.

유아원 어린이들이 이 말들의 뜻을 알아차릴 리 만무하지요.
이것은 유아들을 가르칠 때 바로 이런 신념으로 가르치겠다는 선생님들의 결의를 뜻한다고 봅니다.
과연 우리의 교육에서도 이런 철학적 성찰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양종훈

2022/01/18

솔직히 초등학교때 배운 것 외에는 헌재도움되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중고등학교 6년간 배운 것보다, 2년제 전문대학에서 배운 것을 훨씬 더 유용하게 써먹는데요.. 중고등학교에서 낭비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이준구

2022/01/18

교육의 목적이 현실 생활에 쓸모있는 지식을 전수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 교육은 학생들을 아무 이유없이 너무나 들볶아대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늘 주장하지만 어릴 때는 공 차며 놀고 그림 그리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요.

넋두리

2022/01/18

공정과 상식을 말하지만, 전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행태를 거듭하는데도 청와대와 가장 가까이 가 있다는 부인하고 싶은 현실이 참으로 야속한 시절입니다...동등이니 공평이니 하는 말이 허무하고 비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각각의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일까를 고민해봅니다.

이준구

2022/01/18

미안하지만 자기에게 유리하면 공정, 불리하면 불공정이지요.

제2제이

2022/01/23

글 속의 그림 중 야구장 관련 그림의 의미는, 특정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상자 3개)를 특정한 목적에 비추어서 적당한 만큼 누릴 수 있도록(키큰 사람은 상자가 없어도 볼 수 있고, 작은 사람에게는 1개, 더 작은 사람에게는 2개를 주면 모두가 '야구 관람'이라는 최소한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배분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약자라고 해서 무한정 배려를 하는 것은 사회에서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보이고요. 어찌보면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에 가까운 예시 그림이 아닐까 합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불필요한 이에게는 줄 필요가 없고,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제공하면 된다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중 왼쪽 것이 보편적 복지에 가까워 보입니다. 누구에게는 부족하고, 누구에게는 넘치기 때문이지요. 왼쪽 것이라면 가장 키큰 사람은 어쩌면 조금 앉아서 더 편하게 야구 관람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림으로 비유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는 상황에서는 여러 의미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구 관람이라는 상황에서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은, 높은 펜스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똑같이 상자 하나씩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값을 내고 입장한 모든 관객들이 동일하게 야구 관람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회 제도를 볼 때도 같은 관점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사회제도나 현실은 그림 속의 상황보다야 훨씬 복잡해서 당연히 어렵겠습니다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