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조된 예금화폐는 사회에서 교환의 공통 매개물로 기능하는 점에서 기존 화폐와 실체가 동일하므로, 기존 화폐에 형성된 객관적 교환가치(즉 구매력)에 편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된 예금화폐의 구매력은 기존 화폐의 구매력에서 십시일반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기존 화폐의 구매력은 침식됩니다.

화폐 구매력의 침식 과정에서 빈자로부터 부자로 부가 이전되는 사회적 귀결이 발생합니다.

2.
사회 내에 화폐수량이 증가하면, 화폐의 구매력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하여 여러 철학자, 경제학자가 다루어 왔습니다. 특히 데이비드 흄은 공동체에서 하룻밤 사이에 화폐량이 2배 증가하면 물가도 2배 증가할 것(즉 화폐의 구매력이 1/2로 감소)으로 예측하는 대화를 친구인 아담 스미스와 하곤 했지요. 통화량 증가가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는 유명한 화폐수량설입니다.

화폐수량설은 어빙 피셔에 의해 MV=PT의 교환방정식(본질은 항등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교환방정식은 마치 아인슈타인의 E=MC^2처럼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교환방정식은 고전적 화폐수량설이 주장하는 '통화량 증가가 *장기적*으로 전반적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를 알려줄 뿐입니다. 교환방정식은 개별 창조된 통화량, 개별 재화의 미시적 움직임을 절대로 알려줄 수 없습니다(개인적으로 천원권, 오천원권, 만원권 지폐로 다양한 재화의 거래를 상상하면서 사고 실험을 해 봤습니다). 저는 그래서 교환방정식을 빛좋은 개살구로 봅니다. 쓸모가 없어요.

사족: CBDC가 도입되면, 교환방정식에서의 개별 항목을 분석할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즉 미시적 경제 활동을 전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CBDC는 국가개입주의의 끝판왕이며, 빅 브라더 체제의 가장 훌륭한 수호자여서, 저는 제발 도입되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존경했던 이창용 한국은행장님, 최근에 한국은행이 '디지털화폐연구실'을 '디지털화폐실'로 개편하였더군요. 글로벌 준비금도 아닌 한국 원화에 스테이블코인도 에러가 아닐지요? 전환기에 고군분투하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3.
공동체에 새로운 화폐가 유입되면, 즉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하는데, 모든 재화에 대해 균질적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부가 빈자로부터 부자로 이전됩니다. 화폐수량설, 교환방정식은 '물가수준'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균질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에 세상을 맞추는 격이지요. 자산 가격의 급등락이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론에 억지로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지금부터 제가 설명드리는 내용은 전적으로 미제스의 도움에 기댄 것입니다. 예금통화 창조 과정을 밝히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영접하게 된 저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가장 저평가된 위대한 경제학자라고 봅니다. 또한 고백하자면, 저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많은 부분을 수용합니다. 다만 저는 경기 변동 이론의 구체적 내용, 특히 자본의 우회생산의 결과 해석에서 다른 의견을 가집니다. 또한 저는 경기 변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산가격의 변동으로 봅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얽매여 있다는 점이 저와 가장 다른 점이겠습니다.

4.
먼저 화폐에 한계효용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결론은 있습니다. 미제스가 재귀적 과정으로 깔끔하게 증명하였습니다.

한계효용이론을 화폐에 적용하는데 어려움이나 반대가 많았습니다. 즉 어떤 개인에게 화폐의 한계효용은 화폐의 교환가치를 이미 전제하고 있으므로, 후자로부터 전자가 도출될 수 없다는 만만치 않은 반론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제스는 오늘의 화폐의 객관적 교환가치(즉 구매력)는 어제의 화폐의 객관적 교환가치로부터 시장 참여자의 주관적 가치평가에 의해 도출된다는 재귀적 과정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화폐, 현재의 통화체제에서는 은행을 통한 대출에 의해 창조된 예금화폐를 가지는 개인에게 화폐단위의 한계효용이 감소합니다. 이는 해당 개인이 *구매자로서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합니다.

사족 1: 미제스는 공동체에서 새로운 화폐가 아니라 기존 화폐의 변동은 대수의 법칙에 따라 변동 원인에서 발생하는 힘들이 상쇄될 것이므로, 새로운 화폐에 따른 영향만을 분석하였습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즉 새로운 화폐의 추가 없이, 군중 심리에 의해 특정 지역의 주택 가격이 상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족 2: 제가 효용을 '개인이 재화에 부여하는 욕구충족 가능성'으로 정의하였는데, 재화 자체의 내재적 효용을 전제하고 있다는 잠재적 반론에 대해 미제스의 재귀적 과정을 그대로 적용할 예정입니다.

5.
어제 특정 아파트가 1억원으로 매매되었다고 칩시다. 1억원은 특정 아파트와 균질의 아파트(이하 아파트)를 교환할 수 있는 객관적 교환가치(즉 구매력)을 가진다고 시장에서 인정됩니다.

은행 대출을 통한 예금화폐를 획득한 갑은 화폐단위의 한계효용이 감소하여 갑의 마음속에는 (아파트, 1억원) 순서의 효용이 생깁니다. 우연히 (1억원, 아파트) 순서의 효용을 가지는 매도자가 있으면 매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낮은 매도호가가 '1억원 + a'이라면, 화폐단위의 한계효용이 감소한 갑은 (아파트, 1억원 + a)를 지르면서 우월적 구매자 노릇을 할 것입니다. 추가(2025. 9. 8.) 만약 갑에게 아파트의 기대수익의 효용이 있다면 갑의 (아파트, 1억원 + a)의 효용 순서는 더 공고해 질 것입니다. 상승된 매도호가에 맞춘 거래는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초래하겠지요.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다른 거래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아파트에 기대수익의 효용이 붙으면 가격 상승은 수요를 증가시키고, 공급을 회수시켜 결과적으로 탈균형적 가격 급등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이전 글을 참조해 주십시요.

갑에게 아파트를 매도하여 '1억원 + a'를 획득한 을은 사치품인 고가의 자동차, 고가의 장신구 등을 구매합니다. 위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고가의 사치품은 '평판 욕구'에 상응하는 효용을 제공하여 가격 상승은 수요 증가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점도 저의 이전 글을 참조해 주십시요.

공동체 내에서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파트 가격 상승, 고가 사치품 가격 상승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화폐의 객관적 교환가치의 변동은 모든 재화에 균질적, 동시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음을 아시겠지요. 화폐의 구매력 변동은 매매 행위의 경로를 따라 연쇄 파급되어, 점차 전체 공동체를 통해 퍼져나갑니다. 마치 호수에 떨어진 돌이 만든 파동이 퍼지듯 미시적 선택이 다이나믹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킵니다. 미시적 선택에 따른 거시적 사회현상, 즉 빈자로부터 부자로 부를 이전시키는 사회적 귀결에 거의 다다랐습니다.

6.
재화의 변동, 가령 석탄 공급 증가는 공동체의 경제적 지위를 개선시킵니다. 석탄가격의 하락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소득이나 재산을 재정렬하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손실 없이 많은 이들이 석탄 공급 증가를 누릴 수 있습니다.

화폐는 다릅니다. 화폐가 변동되었다고 그 자체로 재화 수량을 변동시키지 않습니다. 화폐 증가가 직접적으로 재화 수량의 증가를 초래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간접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파동의 진폭이 점점 줄어들 듯, 화폐의 구매력도 점점 줄어듭니다.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처음 화폐를 만진 갑이고 뒤이어 을로 이어집니다. 화폐가치의 변동은 변동에 가까이 있던 일부 개인들에게 혜택을 주고 화폐 가치의 전반적 하락에 의한 비용은 그 화폐가 최후로 도달되는 계층들이 부담합니다.

예전 금속본위제에서 금광소유자와 이에 가깝게 연결된 집단이 누리는 이윤은 궁극적으로 화폐가치의 변동과정의 마지막 집단의 손실입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당시의 뉴욕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하루 $1~2 였는데, 캘리포니아 호텔 룸 임대료가 월 $1만 이상이었습니다.

오늘날 화폐체제에서 은행 대출을 통해 예금통화를 창출하는 자, 즉 우리의 '갑'이 금광소유자에 대응됩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갑들'이 은행 대출을 통해 아파트를 매매하므로 아파트 가격이 저렇게 오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제가 이야기한 기대수익 효용에 따른 가격 급등이 반영되어 그 정도는 실로 심각해 집니다. 은행에 대출을 일으킬 정도의 부자가 아파트를 매매하여 얻은 이익은 은행에 대출을 일으킬 수 없는 빈자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서민들은 십시일반만 당해서 밥이 꽤 줄었지만, 이를 알지도 못하므로 지속적으로 당할 뿐입니다. 경제학이 이를 일깨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택 가격의 폭등을 야기하거나 방치하는 정권은 서민의 적입니다!

추가(2025. 9. 8.) 미제스는 모든 인플레이션 정책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국가 주도의 자원 집중이 필요한 산업분야(가령, 현시점에서 AI 산업)가 있어서, 사회 자본을 의도적으로 집중시켜 재화 증가를 유도함으로써 국민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비슷한 취지로 유치산업보호론을 찬성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통일되지 않는 한 내수에 한계가 있어서 수출이 중요한 안타까운 환경 아래에 있지요. 그래서 증가된 재화가 수출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그런데 주택은 수출할 수 없는 재화지요. 공동체의 가치를 아파트에 몰빵하여 아파트 가격 하락이 공동체를 무너뜨릴 지경까지 만들었습니다. 조만간 예상되는 아파트 가격 하락(폭락)에 대응한다면서 중앙은행의 잘못된 통화정책과 재정부의 잘못된 재정정책이 아름답게 결합되어 일본화(Japanification)가 되는 일은 피했으면 합니다. 일본이 개척한 일본화의 길에 이미 미국과 중국은 접어든 것 같지만요...

희대의 선동가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화폐를 오염시키는 것이라고, 아마 유일한 옳은 말을 했습니다. 실로 맞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라고 해야 더 적절하겠지요. 화폐는 마치 도량형의 자(scale)와 같습니다. 기준이 오염되면 모든 것이 오염됩니다. 저는 마에스트로로 추앙되는 그린스펀을 최강 파워 미국을 지금의 그저 그런 강대국으로 격하시킨 중요 원인 제공자로 봅니다. 그는 전임 볼커가 애써 만든 건전한 달러를 '그린스펀 풋'으로 주식시장 하락을 방어하는 하찮은 용도로 사용하다 거대한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 미국의 전성기를 끝냈지요. 물론 미국 달러화를 오염시키기에 전력을 다한 그린스펀 후계자들인 버냉키, 옐런, 파월도 원인 제공자들입니다. (개인적으로 버냉키가 노벨상 받을 때, 약간의 분노가 일었습니다.)

경기 변동, 자산 가격 변동, 중앙은행/재정부의 개입에 따른 지나치게 짧거나 없는 불황, 불황의 순기능인 구조조정 실패(또는 연기), 한계 기업이나 가계의 대량 양산, 자본의 우회생산 확대에 따른 재화(특히 소비재) 증가, 그에 따른 실질소득의 악화와 소비재 수량 증가에 따른 장기 디플레이션, 공황이냐 장기 디플레이션이냐의 선택 문제(일본화 문제 연관), 창조적 파괴 환경의 제거 등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 게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