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상소는 왕조시대에 임금에게 올리는 가장 강력한 항의였습니다. 임금이 자기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는 의미로 도끼를 메고 올리는 상소였다네요.

역사적으로 보면 지부상소를 올린 인물들이 소수지만 등장합니다. 그 내용들을 보면 정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걸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번에 탄핵심판대에 오른 국무위원들, 특히 한덕수 총리의 변명을 듣고 있자니 지부상소 생각이 났습니다. 구색맞추기식으로 열린 국무회의에서라도, 대통령이 계엄 얘길 꺼냈을때 상당수 국무위원들이 위헌이라면서 반대했다 들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은 무시했다지만요.

그런데 말로만 "안 됩니다." "위헌입니다." 하면 할일을 다 한겁니까? 적법하지도 않고 절차마저 무시한 계엄이 나라에 얼마나 악영향을 줄지 뻔히 다 알면서, 고작 한두마디 반대의견 피력으로 할 일을 다했으니 탄핵되는건 억울하단 얘기가 나옵니까?

당시 국무위원들이 정녕 대통령에게 동조한게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았어야 하지 않습니까? 장관이 그런 일 하라고 있는 자리 아닌가요?

"정 그런 이유로 계엄을 하셔야겠다면 일단 저부터 죽이십시오." 그렇게 강경하게 반대한 인물이 현 국무위원들 중 하나라도 있었냔 말입니다.

일개 유생도 임금의 절대왕권에 맞서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습니다. 오늘의 헌법을 세우기 위해 수도 없는 이들이 탄압받고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총리부터 장관들이 이렇게까지 비겁해도 되는 겁니까?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았을겁니다. 사람인 이상 두려운게 당연합니다. 지부상소가 드문 이유도 그만큼 용기내는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그 책임이 가벼워질순 없습니다. 그걸 뻔히 알만한 사람들이, 계엄 해제 이후로는 뭘 했습니까? 말로만 송구하다 죄송하다 하고 실질적인 책임을 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되려 적반하장으로 계몽이었다느니 통치행위였다느니 하는 소리를 안 하는게 신기할 지경이죠. 그 알량한 책임도 지기 싫다고 버티는 추태는 둘째치더라도요.

무지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 상식을 무시해버리는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에도 못 미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