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정책’이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대명사이듯, ‘일제고사’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대명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제고사 성적에 기초해 학교와 교사의 성과를 평가하고, 시험성적에 기초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이들의 성과를 개선시키겠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핵심이니까요.
마치 기업들이 성과급제도를 활용해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과 똑같은 아이디어지요.

학교와 교사의 성과를 학생들의 일제고사 성적에 기초해 평가한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일제고사가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대명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육개혁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No Child Left Behind(NCLB)법입니다.
우리의 MB 정부가 이를 그대로 따라 하려다가 여러 가지 부작용이 터져나오자 포기하고 만 사례도 있었구요.

부시(G. Bush) 행정부 시절이던 2001년 제정된 NCLB법은 미국의 초중등교육을 획기적으로 개혁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그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갖는 최대의 맹점은 인간이 주어진 유인(incentive)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라는 잘못된 믿음에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으로 유도하면 학교와 교사들이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순순히 따라올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그들이 갖고 있는 최대의 맹점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식의 수동적인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주어진 유인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시켜 정부가 기대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기업들이 자주 활용하는 성과급제도가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많은 경제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이 NCLB법이 가져온 귀결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예상대로 이 법은 갖가지 부작용을 초래했고, 그 결과 교육의 질에는 이렇다 할 개선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조지아주의 교육감까지 연루된 대형 부정사건이 터져 나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일제고사를 실시하자마자 학교와 교사들에게 생긴 변화는 시험성적을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둔 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입니다.
소위 ‘시험맞춤 교육’(teaching to the test)이 광범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일제고사의 대상이 되는 과목들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동시에, 그리고 한 과목 안에서도 출제대상이 되는 주제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교육이 바로 시험맞춤 교육입니다.
이와 같은 교과과정의 왜곡이 교육의 질적 향상에 역행하는 부정적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그리고 그와 같은 방법을 동원해 시험성적을 올려 보았자 홍보의 용도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성과일 뿐이구요.

또한 시험성적이 나쁠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도 썼습니다.
그들을 배제함으로써 평균 성적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문제 학생에게 2주 정학처분을 내리면 정학이 끝난 직후 시험을 쳐야 하는 경우 그에게 3주 정학처분을 내리는 것 같은 일들이 자주 관찰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시험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답을 암시해 주거나 아예 가르쳐 주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레빗(S. Levitt)이 시카고지역의 학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난이도가 높아 정답률이 아주 낮은 문제인데 어느 학급의 정답률이 예외적으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면 그런 의심을 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겠지요.

학교와 교사들이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해 동원한 수법은 마치 조작의 백화점을 연상케 할 만큼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급식의 메뉴에 손을 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영향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단기적인 인식능력의 향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어떤 학교는 이에 착안해 시험에 즈음해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음식을 많이 제공했다는 것이지요.

어제 <한겨레> 신문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고사가 잠시 실시되고 있었던 때 이와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졌더군요.
어떤 퇴직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학년 부장 교사가 (성적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학생을 시험 당일에 결석하도록 유도하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특정 학생을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특수학급으로 보내버리는 방법을 쓴 학교도 있었다고 하구요.
뿐만 아니라 어떤 교사는 시험지를 미리 살펴보고 쉬는 시간에 자신이 가르치는 반들을 돌며 손가락으로 정답을 가르쳐 주기도 했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겠지만, 교육행정 당국이 부정을 저지르는 사례까지 있었습니다.
한 교육지원청이 관할구역 내 한 초등학교 6학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0%라는 조작된 통계수치를 발표했다가 발각이 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조작된 통계인지도 모르고 교장의 리더십과 교사들의 열정을 칭찬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실시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일제고사 실시라는 골치 아픈 문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일제고사가 절대로 아니고 원하는 학교만 실시하는 전수평가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 인사가 교육감으로 있는 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수평가의 실시를 유도할 것이 분명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지역에서는 실질적인 일제고사가 실시되는 셈이 될 테구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국의 NCLB 프로그램의 실험은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듯, 그 프로그램이 실시된 이후 미국의 교육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말은 듣기 힘들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그 실험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이유로 조기종결되지 않았습니까?

윤석열 정부의 입장에서 ‘MB2 정부’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 그리 영광스런 일이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MB 정부 자체가 결코 성공한 정부도 아닌데다가, 스스로의 독자 프로그램 없이 다른 정부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껴온다는 말을 듣는 게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의 행동을 보면 그런 말을 들으려고 일부러 작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 정부 들어서자마자 간판으로 내건 경제정책이 감세정책이었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요?
이제 교육정책마저도 MB 정부의 일제고사를 닮아가려 하고 있네요.
감세정책과 일제고사가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는데 진보정권이 몽니를 부려 폐기된 것이라면 문제가 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정책들을 아쉬워하는 국민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 출범한 정부인 이상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참신한 모습을 보여야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광범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겁니다.
출발점에서부터 다른 정부 따라하기나 한다는 말을 듣는 진부한 정부의 지지도가 20%대를 맴도는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일 아닌가요?

양종훈

2022/10/14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에 교육부가 인재양성을 담당하는 사회부처이자 경제부처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0794

지금까지 행적을 보면 이건 대통령의 신념이며,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저런 정책밖에는 내놓을게 없는 겁니다.

이석기

2022/10/16

이준구 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부동산 투기로 전국의 주택가격 폭등의 원인은 저금리 과잉유동성 자금이 소수일부에게 편중된
결과로 발생한 것입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성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돠어 주택가격이 폭등하니 미래 청년세대들은 panic buying 으로 거품이 형성된 주택가격을 지불하고 주택을 매입한
것입니다. 매도인의 주택 매매차익은 또 자본이득으로 축적이 되겠지요. 이처럼 시장으로 유통되지
못하고 축적된 자본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대기업의 유동성의 부족하면 감세정책으
로 투자를 활성화 시키고 고용을 창출한다는데 일부 동의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 감세는 매출 원가
를 낮추는 효과가 발생할지 모르겠으나 대기업 부자감세 정책을 철회한 영국사례를 우리나라도
고려를 해봐야 합니다. 영국과 우리나라와 국가부채등 조건이 다르다고 변명을 하겠지요.

꼬꾸아빠

2022/10/28

MB정권 때 전수조사 학업성취도 평가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말씀하신 그런 현상들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이뤄졌습니다. 기초학력 미달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들 반강제로 야간 방과후 강좌에 참여하도록 했고, 거부하는 학생들 설득하느라 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목고, 자사고로 일반고를 황폐화시키고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많이 나오면 공부 못하는 학교로 인식되는 그런 현실이었던 거죠. 많이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