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귀화한 김충선의 부대는 엄청 용맹스러웠다고 합니다. 근대 이전에 세계 최대 수준의 개인무기라는 분석도 있는 일본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은 조선군이 상대하기 너무 벅찬 존재였지요. 조선군은 활에 능하고 성을 지키는 싸움은 잘하지만 일단 일본도를 휘두르는 일본군과 백병전으로 붙으면 조선군은 전부 풀잎 베어지듯 일본도에 나가떨어졌으니... 일본군의 조총은 생각보다 위력이 없었지만 그 일본도를 휘두르는 일본군은 너무 공포의 존재였지요.

이런 조선군의 약점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청나라의 무시무시한 기병부대에 조선군은 속수무책으로 완패하지요. 아무튼 조선군은 멀리서 활쏘고 성 지키는 것은 참 잘하는데 뭔가 백병전으로 붙으면 무력해져요.

근데 선조와 인조가 조선 임금 중 최대의 찌질이였나요?^^ 오히려 요즘 이상하리만치 대중적으로 미화되고 각색되는 광해군이 혼군 아니었을까요? 광해군의 업적을 따져보면 도대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쫓겨나기 이전에는 정사도 게을리했죠. 권력운영도 아버지 선조보다 훨씬 못한 실력이구요.

선조는 그래도 구악 척결하고 사림정치를 시작했고 조선 최고의 인재들을 등용하고 보호해주는, 그렇게 인재를 보는 눈, 지도자의 덕목을 갖추고 있었지요. 머리도 상당히 좋았죠. 또한 엄청난 업적인 동의보감 편찬도 선조가 시작했고 죽기 전에 거의 완성되었지요. 게다가 조선 최대의 개혁인 대동법도 선조 시대에 싹을 틔웠습니다.

광해군 때는 대동법이 이랬다 저랬다 했지만 인조 때 다시 제대로 추진되기 시작했지요.

게다가 인조는 광해군을 무려 20년 동안이나 독살하거나 사약 내리지 않고 살려두는 관대함을 보였지요. 심지어 광해군이 다시 복위하려는 운동에 직접 연관됐음에도 불구하고 살려두었습니다. 세조는 단종을 가차없이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선조를 위해 변명해보자면 선조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인물입니다. 오히려 아들 광해군이 무책임한 인물이었지요.

대중들은 선조의 수없는 선위파동을 찌질한 짓으로 여기던데...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파천하는 도중에 신하들은 당파로 갈려 선조의 말도 안듣고 지들끼리 싸우고, 나중에 지원온 명나라군은 선조와 조선을 매우 우습게 하대하고, 이 상황에서 선조가 신하들을 통솔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카드는 선위파동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선위하겠다고 했을때 신하들이 다른 말을 하면 그것은 나중에 반드시 역모로 몰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선위파동을 일으키면 신하들은 한목소리가 되어야하고, 이걸 선조는 리더쉽을 발휘해서 전쟁을 효율적으로 통솔할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지요.

또한 선조가 만일에 선위를 해버리면 조선은 권력공백사태가 발생하고 이것은 명나라로서도 손해가 되기 때문에 결국 조선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들어주게 됩니다.

선위파동은 선조로서는 신하들을 장악하여 통솔하고, 명나라와의 협상력을 높이는 정치적 카드인 셈이지요. 꽤 설득력 있는 해석 아닐까 싶네요.

인조나 선조나 괜찮은 임금이었다 하는 것은 이순신이 너무 미화(노량해전 후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장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을 써놓은 이순신 평을 보면 미화도 아닙니다)되었다고 하여 원균을 띄워주는 것이나 다름 없는 무리수입니다..

인조 서인 정권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외교적 무능은 이미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광해군이 권력운용은 잘못하였다 하더라도 외교로서는 조선 국왕중 제일의 안목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건 사학자들 이야기입니다... 사대주의 사상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그 정도 인식이 있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광해군을 죽이려는 움직임은 이미 서인 정권에서 여러 차례 있었고... 나중에는 아들 소현세자 일가를 손수 박살낸 탓에 원래 묘호도 인조가 아니라 열조였습니다... 사실상 뭐 같은 임금이다라는 뜻으로... 당시에도 평판이 무지 안 좋았죠...

그리고 선조도 왜란 때 나라야 어찌되었든 "나는 요동으로 갈 것이다" 라는 임금을 재평가할 여지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대동법도 유성룡을 비롯한 재상들이 한 것이고 왜란이 끝나고 유성룡이 쫓겨난 뒤에는 다시 폐지됩니다... 백성들의 지지가 필요 없어졌거든요... 인재도 마찬가지지요... 의병장 김덕령 등에 대한 시기를 생각하면... 그 시대에 재상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한 것을 임금이 한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 봅니다...

글쎄요. 명나라로 망명을 생각한 것이 왜 그렇게 욕을 먹을 일이지요? 민주주의 시대에도 정부의 해외망명은 흔한 일인데, 하물며 왕이 곧 국가인 왕조시대에 한양이나 평양에서 왜군의 일본도에 도륙이 되기를 기다릴 수도 없잖아요. 만약에 그런 만용을 부리며 한양이나 평양, 개성 등지에서 버티다가 왜군에게 포로로 잡히거나 도륙이 나면 그 순간 조선은 그냥 망하는 겁니다. 선조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해서 왕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질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며, 당시 세계관으로는 그게 곧 나라를 지키는 일이고, 왕조시대의 가치관으로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당시에 만약에 왕이 죽으면 엄청난 정치공백사태가 일어나 조정의 힘이 분산되고 결국 왜군에게 더욱 유리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2차대전때도 나치의 공격을 피해 해외로 망명했다가 종전 후에 환영 받으면서 귀국한 유럽의 정부나 왕조도 있습니다. 그런 게 흠은 아닙니다.

대동법은 선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싹을 틔웠다고 했지 선조가 다 했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언제나 왕과 신하가 의논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거야 당연하지요. 훈민정음 정도야 세종이 거의 독자적으로 만들었을 뿐, 그 외의 정책이나 업적은 언제나 왕과 신하가 의논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대동법의 연원은 조광조나 이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선조가 한 게 아니라 유성룡 등의 재상, 신하들이 한 것이라고 주장하시려면, 광해군 때의 그나마 왔다리 갔다리 수준의 대동법도 이원익과 여러 신하들이 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왕은 허수아비이고 그냥 신하들이 다 한 것이라고 보는 건 좀 무리가 있지요. 예를 들어 4군 6진 개척을 세종의 업적이라고 하지, 최윤덕, 김종서와 휘하 장졸들의 업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광해군이 임해군, 영창대군을 제거한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적모(인목대비)를 폐한 것은 매우 큰 실수이고 무리수였습니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독살설이 맞다면, 직접지시나 적어도 방조가 맞다면)한 것보다는, 광해군이 적모를 폐하고 유폐시킨 것이 진짜로 패륜입니다. 인조가 소현세자家를 정치적으로 제거한 것은 왕조 사회에서 흔히 있는 권력투쟁이죠. 소현세자의 장자를 세손으로 세워 후계를 잇게 하면 어린애가 임금이 될 수도 있는데 전란 이후의 조선이 제대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또다시 반정이 일어나 혼란스러워지거나 외척이 득세하겠지요. 차라리 효종에 물려준 게 나았던 겁니다.

광해군 외교... 역사의 가정은 없다지만 어차피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더라도 후금은 힘의 논리로 차례차례 조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을 것입니다. 결국 비참한 굴복을 하거나 침략당했겠지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봐야지, 인조라도, 광해군이라도, 누가 임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청나라의 호전성에 비추어보면... 언젠가 조선은 아주 굴욕적인 화친을 맺어 군신지간이 되거나 침략당하는 것이 수순이었습니다. 후금은 중원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후방에 있는 조선을 어떻게든 미리 손봐야 했거든요.

차라리 미숙하긴 하지만 유교질서를 거부하고 황제 흉내 내면서 신하들과 맞짱 한번 제대로 뜬 연산군은 화끈한 맛이라도 있지만 광해군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대체 그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후에 의병장이나 무인들을 천대한 것은 솔직히 군벌의 성장, 무인이 유력가문이 되어 문관들과 혼맥을 맺어가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애초에 싹부터 자르기 위한 선조의 냉정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아마 태종이라도, 세종이라도, 영정조라도 당연히 그런 선택을 했을 것 같네요. 조선의 임금이라면 말입니다. 아마 저 같아도, 문치주의의 조선에서 무인의 성장을 허락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국시를 바꿀 것이 아니라면 무인세력을 미리미리 억제하는 것은 당연한 정치적 선택이 되어야하지요.

군벌, 혹은 군벌+유력문신의 연합이 탄생하면 결국 정권을 노리게 되고 끝없는 혼란이 일어나고 그 군벌을 제거하기 위해 또다른 군벌을 불러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언급된 유능한 문신들은 어쩔 수 없이 다 죽여야하고, 이렇게 계속 악순환과 혼란, 국력분산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또 청나라와 왜만 신나지요. 국정혼란과 사회 분위기의 무인화가 불러오는 폐해는 고려시대 무신들의 정권이 교훈입니다. 문치를 추구하는 조선과 왕이라면 당연히 애초에 무인들의 싹부터 자르는 것이 군사쿠데타를 방지하는 가장 현명한 결단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왜란 후에 공신명단을 작성할 때도 무신들을 그렇게 푸대접해버린 겁니다.

평소에 허준 같은 인재를 발탁해서 아끼다가 임진왜란 후에 병으로 죽어가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의보감을 편찬케 한 선조의 마음은 훌륭한 애민정신이자 지도자에게 요청되는 필수덕목입니다. 난세의 시대에 최고권력자로서 살얼음판 위에서 권력을 운영하다보면, 후세 사람들이 보기에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설명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