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로그인
회원가입 | ID/PW찾기
Home > 게시판

2020/02/21 15:54    조회수 : 2057    추천수 : 18
 글쓴이   이준구
 파일   file_naaCfA.pdf (152,653 Bytes) Download : 70
 제목   스웨덴의 "혐오음식 박물관" 이야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코로나 19의 창궐로 인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신문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식만 들려올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얼굴을 찌푸리고 살 수만은 없는 일 아닙니까?
불편하고 분노하는 중에서도 유머를 찾는 여유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고생이 심한 여러분들을 위로해 주는 차원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전해 드릴까 합니다.

지난 1월 11일자 The Economist지에는 스웨덴 말뫼라는 곳에 있는 "혐오음식 박물관" (Museum of Disgusting Food)을 소개하는 기사가 올라와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 구역질나는 음식은 내가 아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스스로 이 분야에 대해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구요.

나와 대화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화 중에 이 주제가 등장하면 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떠드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특히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역겨운 표정이라도 지으면 짓궂음이 발동해 더욱 신나서 썰을 풀게 됩니다.
별로 점잖지 못한 태도이긴 하지만 누구든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이 기사에서 대표적인 혐오음식으로 소개되도 있는 것은 역시 아이슬랜드 사람이 먹는 발효된 상어고기입니다.
harkarl이라고 쓰고 "하우카르들"이라고 읽는 이 음식은 특별한 종류의 상어 고기를 몇 달씩 매달아 두고 발효시킨(or 썩힌) 것입니다.
우리의 삭힌 홍어와 비슷한 아이디어지만, 그 냄새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한가 봅니다.
(유럽 여행할 때 이것을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세계적 셰프 안소니 부르뎅(Anthony Bourdain)은 이걸 한 번 먹어보고 자신이 맛본 음식 중 단연코 최악의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먹는 경험을 "오줌에 흠뻑 젖은 매트레스를 먹는 것 같다."도 말했다고 하기도 하구요.

이 박물관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구토물 담는 봉지를 지급한다네요.
전시물을 보는 중 구토를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혐오감을 종종 느낄 테니까요.
한 벨기에 언론인이 관람 도중 10번이나 구토를 한 게 지금까지의 최고 기록이라고 합니다.

이 기사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내가 알기로는 스웨덴 사람들이 먹는 발효된 청어도 하우카르들 못지 않은 악취를 가졌다고 합니다.
"수르스트뢰밍" (Surstromming)이라고 부르는 이 음식을 한 외국인에게 먹게 하고 소감을 물었더니 화장실과 수채구멍을 반반씩 섞은 냄새가 난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런데도 스웨덴 사람들은 이것이 나오는 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네요.
(이 썩은 청어 통조림은 특별한 시즌에만 시장에 나온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에서 소개되는 또 다른 혐오식품은 강한 냄새를 풍기는 치즈들입니다.
여러분들 유럽 정통 치즈라고 하는 것들 한 번 맛보고 몸서리 친 경험을 갖고 있으실 겁니다.
Gamle Oles Farfar라는 이름의 덴마크 치즈를 맛본 한 중국인은 몇 분 동안 (숨이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필리핀 같은 동남아에서 널리 먹는 "balut"라는 음식입니다.
TV에서 보셨겠지만 이건 오리알인데, 껍질을 까면 병아리 상태의 내용물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 이걸 서슴없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드물 텐데, 현지 사람들은 너무나 맛있게 먹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역시 이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데, 우리의 대표주자는 산낙지더군요.
다행히 나무 젓가락에 산낙지 돌돌 말아 먹는 것은 아니고, 잘게 자른 탕탕이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외국인이 살아있는 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장면을 보면 더욱 기겁했을 텐데요.
그들에게는 꼬물꼬물 기는 낙지 발을 기름에 찍어먹는 장면이 무척 이상하게 보였나 봅니다.

그 밖에도 혐오스러운 방법으로 만든 술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쌀로 만든 중국 술인데, 물개, 사슴, 개 수컷의 성기를 넣어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럽의 술인데, 비버라는 동물의 항문을 넣어 만든 거랍니다.
(미국산 비버로 만들면 맛이 없고 반드시 북유럽산 비버여야 한답니다.)

이 기사에서 빠져 있는 대표적인 혐오식품 후보 중 중국의 취두부(臭豆腐)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중국이나 대만 여행 가서 길거리 간식으로 사먹은 취두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배기는 반찬으로 먹는 취두부인데 앞에서 말한 하우카드르나 수르스트뢰밍에 못지 않는 어마어마한 냄새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짜지 언급한 모든 음식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홍어, 된장, 청국장은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혐오식품의 후보가 될 수 있는 건 담백질의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강한 냄새라는 점입니다.
이 강한 냄새가 어떤 사람에게는 악취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둘도 없이 좋은 냄새가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된장이나 청국장이란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처음 먹는 외국인에게는 먹는 게 큰 고역일 것이 분명합니다.
어려서부터의 경험이 이런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고, 따라서 혐오감이나 호감이란 것이 문화적으로 형성된다는 말은 전적으로 맞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혐오음식의 박물관을 만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놀려주려는 의도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더군요.
그보다는 훨씬 더 고상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걸 알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박물관은 혐오감(disgust)이라는 인간 감정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혐오감이 불쾌한 감정이기는 하지만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감정 중 하나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혐오감 덕분에 썩었거나 독이 있는 음식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혐오감은 유전적으로 물려 받기도 하지만 문화적으로 형성되기도 합니다.
내가 혐오감을 느끼는 대상은 내가 어디에 익숙해져 있는가 혹은 내 주위의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에도 크게 영향 받는 것이 사실이지요.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어떤 것에 대한 혐오감은 극복되기도 하고 다른 것은 일생 동안 남기도 하는 법이구요.

이 사실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애당초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낯선 것은 자신의 생존에 큰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까요.
낯선 외국인 때문에 전염병에 걸릴 수 있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탈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혐오의 감정은 도덕적 판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기와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음식을 먹는 사람은 도적적으로 열등하다고 보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어느 사회든 소수 집단이나 외국인에 대한 갖가지 편견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공통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박물관은 우리들이 바로 이와 같은 편협함에서 벗어나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자신은 매우 혐오스럽게 느끼는 음식이지만 그걸 너무나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겸허함을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누구든 남이 어떤 음식을 먹는다고 손가락질을 할 자격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내것, 내편만이 최고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 박물관의 메시지에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처럼 단지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갖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마치 악마인 것처럼 몰아가는 살벌함이 가득찬 분위기에서는요.

ps. 기사 원문을 읽어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겁니다.
직접 찾아서 읽으시거나 여기의 첨부파일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bernanke
(2020/02/21 19:37)

산낙지 말씀을 하시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2003년 작 <올드보이>인데, 깐느영화제에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다름 아닌 산낙지를 말 그대로 씹어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가 국제적으로 유명해지자 이 장면을 본 유럽 사람들이 기겁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외국인에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준구
(2020/02/21 20:11)

서양 사람들 당연히 충격을 받겠지요.
근데 내가 군대 있을 때 살아있는 뱀을 통째로 먹는 친구 봤어요.

 
양종훈
(2020/02/22 19:04)

외국에서 꼽는 한국의 이색음식 중 하나로 멸치육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 냄새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특히 서양인)들치고 기겁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고 하네요.

 
이준구
(2020/02/22 19:47)

아 그런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서양 사람들 오징어 굽는 냄새 특히 싫어한다고 들었어요.
김 굽는 냄새도 싫어하구요.

 
앵무쥐
(2020/02/24 22:05)

교수님께서 살미아키를 드셔보셨는지 문득 궁금합니다(&#8212;)(__)

 
이준구
(2020/02/25 11:53)

검색해 보내 살미아키가 감초로 만든 식품이군요.
Economist 기사에도 그게 언급되었던 것 같던데.
아직 먹어 보진 못했지만 아주 역한가 보네요.
이름은 모르지만 영국, 호주 사람이 즐겨 먹는 어떤 잼처럼 생긴 음식도 많은 사람들이 기겁을 한다는데.

 
beatrice
(2020/02/26 17:16)

저도 멸치육수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저의 경우는, 이 곳에서 멸치 육수를 베이스로 한국음식을 한적이 있는데 특별히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보인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프랑스 친구들에게 저에게 사진을 보내며 이게 먹는거냐? 정체가 뭐냐?며 놀라면서 묻곤 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개불입니다.ㅎㅎ 산낙지는 영화로 많이 알려지고 많이 언급되기도 해서 별로 놀라지 않는데 개불보고 놀라는 친구들이 많더라구요.ㅎㅎ 먹고싶지 않은 비주얼이라며...

 
이준구
(2020/02/27 21:44)

개불은 내가 봐도 징그러워.
서양 사람이야 오죽하겠어?

 
윗글 조선일보의 말씀...
아랫글 교수님께 질문 : 현재 나라 살림이 파탄 지경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