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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 10:54    조회수 : 4938    추천수 : 28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천재가 나올 수 없는 나라



10월 15일자 서울대 총동창신문에 "천재가 나올 수 없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글 하나를 기고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한탄하며 쓴 글입니다.
조금 길지만 아래에 그 전문을 옮겨 보기로 하겠습니다.



2006년 31살의 나이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메달을 수상한 타오(T. Tao)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천재성을 보였다. 그는 아홉 살에 대학 수학과목을 수강했고, 열 살 때에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다. 그 다음해에는 은메달,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금메달을 땄는데, 그때의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 대회 역사상 금,은,동 메달 모두 그가 최연소 수상자의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에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가 꽤 많지만, 타오처럼 대스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없다. 비록 수학뿐 아니라 어느 학문분야를 보아도 우리나라 출신의 천재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학 분야만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이름 난 고만고만한 학자가 꽤 있지만, 스티글리츠(J. Stiglitz)나 크루그먼(P. Krugman) 같은 스타급 경제학자는 이제껏 배출된 바 없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보통의 능력을 가진 열 명의 학자가 한 명의 천재를 이길 수 없다. 학문의 프론티어를 개척해 가는 것은 언제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의 몫이었다. 어떤 학문이 발전해온 역사는 기라성 같은 천재들의 화려한 퍼레이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퍼레이드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자랑스런 얼굴을 찾아보고 싶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세계 여러 나라들 중 어린이들이 공부 열심히 하기로 따지면 우리나라를 넘어서는 나라가 하나도 없는데. 청소년들 학업 성취도의 국제비교를 보아도 우리나라가 최상위권에서 떨어져본 일이 없다.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청소년들인데, 왜 성인이 되어 무한경쟁의 장으로 들어가면 이내 쪼그라들고 마는가? 오히려 우리보다 잘 살지도 못하고 인구도 더 적은 나라에서 가끔 스타들이 나오곤 하는데 말이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는 데 있다. 간신히 말문이 트인 어린애를 영어 학원으로 내몰아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교육 아니던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수학의 정석’을 공부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눈만 뜨면 공부, 공부 하면서 들볶아대니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날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적 호기심이 싹튼다면 그건 기적 중에서도 최고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서른둘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S. Ramanujan)은 정식 수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어릴 때 과일가게 앞을 지나다가 오렌지가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수열을 생각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렇게 천재성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지적 호기심에서 그 싹이 트는 법이다. 공부하라고 몰아대는 부모의 성화는 오히려 지적 호기심을 뿌리채 뽑아버리는 역효과를 낸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 ‘신동’이라는 말을 듣는 어린이들이 나타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진정한 천재로 성장한 경우는 하나도 본 적이 없다. 부모의 욕심으로 선행학습을 통해 억지 신동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동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지적 호기심이 퇴화해 버리는 비극이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행하는 선행학습은 어린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말살해 버리는 암적 존재다.

우리 교육은 천재는커녕 창의성 있는 인재조차 키워내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대학 수시모집제도를 도입한 명분 중 하나가 창의성 있는 인재를 찾아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서 가르쳐본 경험에 따르면, 수시모집제도 도입 이후 들어온 학생이 더욱 창의적이라는 느낌이 결코 들지 않는다. 그저 시험성적에만 연연하는 모습이 예전보다 더 심하면 더 심했지 나아진 점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우리 교육의 문제가 쓸모없는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는 데 있다고 본다. 예컨대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은 그 후의 내 인생에서 하등 쓸모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인수분해하는 방법을 터득하느라 내 청춘을 바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데 쓸 시간을 동서고금의 고전을 읽는 데 썼다면 좀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생각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창의성 있는 인재를 키워낸다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뿐만 아니라 재미없는 공부만 강요하는 우리 교육은 모두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든다. 청소년들의 행복감에 관한 국제비교를 보면 우리가 늘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비단 공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쟁에서 이기기만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가정교육이 갖는 문제가 더욱 심각한지도 모른다. 우리 어른들이 대오각성하지 않는 한 공부에 찌든 불행한 청소년들의 행진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양종훈
(2020/10/24 13:57)

제가 10대였을때도 청소년 행복도는 늘 바닥이었지요. 청소년이나 교육제도에 대한 국제적인 통계는 한 번도 긍정적인 적이 없었는데 그럴때마다 어른들은 요즘 어린것들이 배부르고 등 따시니까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었지요. 지금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비혼비출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도 학창시절의 영향이 컸습니다. 주말도 없이 매일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하고 학원 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하는 삶을 제 자녀에게 물러주는건 참 못할 짓이니까요.

 
먼지한줌
(2020/10/24 15:52)

십분 공감가는 글이네요.. 고등학교 때 정말 입시지옥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모든 걸 다 해내는 가제트를 요구한다는 느낌이랄까요.
경제학 천재도 음악, 미술, 체육에는 큰 소질이 없을텐데 말이죠.

더 큰 문제는 목적이 없는 공부라 생각합니다. 저는 운 좋게 재수하면서 공부의 목적을 성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대개는 공부를 무조건 잘 해야 하는 인생의 숙명사업이라 여깁니다. 못하면 낙오자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맹목적인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독일잠수함
(2020/10/24 18:35)

티비 프로에서 가끔 보는...

아이큐 검사하면 무지막지 하게 높게 나오는 분들 가끔 보는데...

공부 잘 못한 경우 더라구요

아 그러니 방송에 나오는 건가요???

 
앱클론
(2020/10/24 19:49)

정말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 폴 크루그먼이 그랬죠.
"The miracle turns out to have been based on perspiration rather than inspiration."

우리나라는 창의적인 인재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수 많은 걸출한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

 
김서원
(2020/10/25 18:58)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나치게 촘촘하고 강하게 고착화되어 있는 대학서열구조 때문입니다. 어떤 대학을 입학하느냐에 따라 그 다음에 이어지는 노동시장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의 성장과정이 무한경쟁 치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걸 깨지않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지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창의성이라는 건 자기가 하고 싶은거 마음껏할 수 있을 때 길러지는 건데, 우리나라는 수능으로 대표되는 경직된 평가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없죠. 이건 학종과 같은 수시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평가의 공정성을 강조하다보니 측정가능한 객관적 지표에 매달릴 수 밖에 없고요. 그 원인을 다시 찾아보면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학생들에게 너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학 하나 단위로 서열이 촘촘하게 매겨지고, 등급화되니까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면 수험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거죠.

교육에서는 경쟁을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거의 없애는게 맞죠. 사실 천재들이 경쟁이 있어서 공부를 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냥 재밌어서 하는거죠. 그래서 오히려 남들이 안하는것도 곧잘 몰입해서 하죠.

 
Jeondori
(2020/10/26 16:51)

이 글은 나중에 차분히 정리됬을때 기회가 된다면 올리겠습니다.

 
KMOOC땡큐
(2020/10/26 17:43)

상산고등학교 같이 자사고를 귀족학교라고 비난하면서 폐지하려면서 정작 본인 아들은 전북대를 졸업하고 영국의 유명한 명문대 입시기관에 수천만원을 들여가며 유학보내는 그 전라북도 교육감.....

 
Jeondori
(2020/10/27 01:11)

솔직히 이글은 안올리고 싶었습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말을 해놓고 한입으로 두말 할 수 없기에 올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럴 때 내 본심이 나와서 더 솔직해 질 수 있다고 생각되기에 수정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천재는 정신병리상 2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첫번째는 분열병권 천재,두번째는 조울병권 천재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천재는 일종에 내면에 광기가 내재되어 있는 거죠..그런데 그런 내면적 광기의 표출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우리사회는 관대하지가 않습니다.

돌아가신 이건희회장님도 정신분열을 앓고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눈자위를 유심히 관찰하면 눈동자의 촛점이 와해된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돌아가셨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기에 말씀 드립니다.곡해는 사양합니다.돈과 그로인한 권력이 있었으니까 그 같은 병력이 있는 것도 은폐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님 같은분도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정신분열병을 앓지 않고 어쩌면 훌륭한 학자로 지금보다 더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생을 사실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영국같은 곳에서는 청소년기에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이 세월이 흘러 40살정도 되어서는 유명한 의사가 되어 있는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우리사회에서 유능한 천재는 단명한다는 것이 통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이부분에서 연장자분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소년기가 사고력의 그 줄기가 왕성하게 형성되는 시기인데...그 시기의 부모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이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페어플레이(fair play)를 가로막고 자라나는 청소년기에 상처를 입힌다면 우리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간에서 이르기를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경제력 , 아버지의 무관심,어머니의 정보력의 삼박자가 갖추어 졌을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때는 돈 없어도 머리만 좋고 본인이 노력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집 수재아이는 대를 물려 가난을 물려받고 신분상승의 기회는 그야말로 0%에 가까운 불운한 인생을 살다가 가는 지극히 불평등한 삶을 살겠죠.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가 없는 겁니다.

진정으로 그야말로... 일본이 대마도를 준다고 해도 바꾸고 싶지 않은 천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저를 포함해서 우리모두 대오각성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DLLLLD
(2020/10/27 09:54)

중고등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을 가르쳐야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 열심히 공부 한다= 많은 시간에 공부에 투자한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시간, 학원 수업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량으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성인들이 유튜브로 주식고수의 이야기를 많이 보고 마치 주식공부한것처럼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를 하더라도 자기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수많은 시간동안 앉아 있는 것은 소용이 없는데도,, 우리 아이들을 그런 환경으로 내몰고 있는 기성세대의 이기심이.. 아이들을 자유로운 진리의 접근을 차단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반성합니다. 기성세대의 책임이 큽니다.

 
지성
(2020/11/06 00:21)

선생님, 경제학과 3대 천재이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더 신뢰가 갑니다 !!!

선생님.. 짧게나마 영재 소리 들었던 제 경험으로 첨언 하자면..
제일 중요한 것은 "미래"였던 것 같아요... 천재 영재 소리 들으며 밤새 도서관에서 물리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졸업하면 그냥 직장인인걸요..
천재성 있는 후배들이 다가올 미래와 인생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애그
(2020/11/07 01:46)

선생님의 미시경제학책에 '위치재'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위치재는 비유하자면 관중들 중에 일부가 일어나서 관람을 하기 시작하면 뒤에 안보이는 사람들도 일어나게 되고 결국 모두가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모두가 서서 불편하게 보는 상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교육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미 파레토 열등한 균형으로 와버린 것 같습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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