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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4 01:56    조회수 : 287    추천수 : 2
 글쓴이   jackdawson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안타까운 사연


몇 달 전, 팟캐스트에서 사연을 듣는데, 그 사연을 보낸 여자의 입장이 너무 안타까워 저도 모르게 그 사연 속에 푹 빠져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최대한 되살리면 그 사연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어떤 20대 후반의 여성이 보낸 사연인데, 그 사연의 전반부는 오빠를 너무 사랑하는 20대 여성의 순애보가 아름답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오빠에게 사랑받으니까 너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평범한 20대 여성이었지요. 둘이서 너무 알콩달콩 연애를 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이 오빠가 자기한테 아무 이유없이 시큰둥하고, 막 화를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을 보낸 여자는 어리둥절하여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답니다. 너무 잘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겠지요. (오빠와는 교회에서 만났던 걸로 기억함)

알고 보니 그 오빠가 어디서 들었는지 자신의 과거를 알아버린 것이지요. 그 과거라는 게 다름 아니라 그 사연을 보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잤던 과거였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과거라는 게 잠자리였던 게 맞음)

왜 철딱서니 없이 여자와 잔 걸 얘기하고 다니는 쓰레기 같은 놈들 있지 않습니까? 작은 소도시 지역은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아니까 사연을 보낸 여자의 5년 전 과거가 우연히 지인들을 통해서 그 오빠의 귀에 들어간 것이지요. 아마 5년 전에 그 지역 몇몇 양아치들에게 소문이 퍼졌었나 봅니다. 자기는 그 당시에 사귀는 사이라서 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 남자 친구에게는 그게 친구들과의 농담거리였나 봅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오빠에게 문자로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이고, 그땐 그 남자와 사랑했던 사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보냈는데, 아예 답장도 없었답니다. 만나서 얘기 좀 하자고 해도 만나주질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교회도 안 나왔나 봅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어느 날 그 오빠 집 앞까지 쫓아갔는데, 또 안 만나줬답니다. 그날 또 하필 비가 와서 이 여자는 비를 맞으며 오빠가 집에서 나올 때 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만났는데, 이 오빠가 추위에 떨고 있는 여친을 앞에 두고 별말 없이 내 앞에서 사라져! , 가란 말이야! , 라고 크게 소리만 치고 화를 냈답니다. (아무튼 사연이 좀 영화 같음) 그 오빠라는 사람이 자기하고 아무 말도 안 할 뿐만 아니라 만나주지도 않은지 2주째가 되니까 이 여자가 너무 속상해서 사연을 보낸 것이지요.

여자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요즘 너무 괴롭다고 하더군요. 그 오빠와 헤어지는 게 맞는 건지 도통 답도 안 나오고, 스스로 많이 생각 해봤는데, 아직 오빠와 헤어지는 것은 싫답니다. 그 오빠라는 사람도 아직 헤어지자고 말은 안 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사연을 보낸 것이지요. 프로그램 작가가 좀 각색은 했겠지만, 사연을 보낸 여자는 그간 오빠와 주고받은 문자 메세지를 캡쳐해서 사연을 보냈더군요. (저도 처음에는 상품 받으려고 조작한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그 상품이라는 것이 큰 상품도 아니고 직감적으로 진짜 사연 같아 보였습니다.)

그 코너는 연애스킬비법 서적까지 낸 적이 있는 자칭 연애전문코치 남자 진행자 1명을 포함한 남자 두 명과 연애경험이 아주 풍부한 여자 두 명, 총 4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연애상담을 해주는 코너였습니다. 그날은 감칠맛 나는 연기로 유명한 어떤 조연 여자 영화배우(유부녀)가 게스트로 나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그 프로그램은 연애 못하는 찌질이 루저들을 위해 연애하는 비법을 전수해주는 꽤 인기 있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입니다)

사연을 들은 여자 진행자들은 자신들이 만났던 남자들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그 오빠라는 사람은 쫌생이다, 마음 아프겠지만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해결책을 냉정하면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제시했습니다. 연인 사이에 아무 말 없이 연락을 안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도 했지요. 여자가 싫어졌으면 이별 통보를 하든지 해야지, 이건 아닌 거 같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자는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 오빠를 계속 만나봤자 과거를 계속 들먹거리며 지금처럼 화만 내고 서로 상처의 골만 깊어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 것이며 세상에 남자는 많고, 지금은 곧 죽을 거 같지만 새로운 남자를 만나면 금새 잊혀진다는 조언을 건네며 힘내라는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주었습니다. 실제로 방송이 끝난 후 그 사연을 보낸 여자에게 전화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날 게스트로 나온 여자 영화배우는 같은 여자로서 직접 만나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다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이 연애상담 코너가 이렇게 진지하진 않은 코너였습니다. 보통은 여친과 키스하고 싶은데, 여친 입에서 입 냄새가 난다,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같은 코믹스러운 사연이 많아서 1시간 내내 배꼽 빠지도록 웃으면서 연애상담하는 코너였지요. 저도 집안 청소할 때 들으면 혼자 미친 척하고 계속 웃었던 코너였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사연이 사연인지라 웃음기 쫙 빼고 갑자기 다들 너무 진지해졌습니다. 자칭 연애전문코치라는 남자 진행자는 지금 헤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역시 여자들이 뭘 모른다며, 그 오빠라는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갑자기 격론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오빠라는 사람은 지금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사연을 보낸 여자를 만날 때 마다 떠올리기 싫어도 여친의 과거가 떠올라서 화낸 것이었고, 그렇게 화내는 자신의 모습에 너무 괴로워하고 있는데, 왜 여자들은 눈치 빠른 척하면서 그걸 바보같이 눈치도 못 채고 이해해주지 못하냐고 했습니다. 지금 그 오빠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힘들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자들은, 지 과거는 얼마나 깨끗하냐고 반문하겠지만, 이 오빠에겐 지금 시간이 필요하다며 사연을 보낸 여자가 그 오빠의 마음을 이해해야지 지금 당장 헤어지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오빠가 스스로 마음의 정리가 될 때까지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인내를 갖고 더 기다려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한다면 그것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했습니다. 어찌나 사연이 안타까웠는지 저도 푹 빠져서 들었지요. 그러면서 그 자칭 연애전문코치 남자 진행자가 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연애의 온도>라는 영화 얘기를 꺼내더군요. 이 영화를 한번 보면 그 오빠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나중에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어제저녁에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연애의 온도>를 봤습니다. 사실 제 취향만 따지자면 이런 영화는 누가 영화표를 공짜로 주지 않는 이상 킬링타임용으로도 절대 안 봅니다. 포스터만 봐도 대충 무슨 영화인지 예상될 뿐만 아니라 너무 식상하지요. 딱 봐도 <내 사랑 X가지> 같은, 시간 내서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3류 영화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그렇게 못 볼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는 문외한이라 어떤 평은 못 하겠지만, 제가 볼 땐 범작 정도는 되는 거 같습니다. 그런 걸 떠나서 저는 영화 보는 내내 굉장히 격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빛바랜 저의 20대가 떠오르고.... 남녀 주인공의 연애 양태가 꼭 저의 10년 전 모습 같았습니다. 아 맞어... 나도 그랬었지... 하면서 속으로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계속 치고 있더군요.

저 역시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때론 격렬히 싸우다가도 격렬한 연애를 했었지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러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 영화, 시간 나시면 보셔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망작은 아닙니다. 유튜브에서 천 원 내고 볼 정도는 됩니다. 저는 이 영화가 요즘 청년들의 연애를 너무 섬세하게 잘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해본 적도 없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왜 연인 사이에 페이스북이나 핸드폰 비밀번호를 공유합니까? 아무리 연인사이라도 개인 생활은 있는 법입니다. 불행의 씨앗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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