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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1:26    조회수 : 1982    추천수 : 13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모병제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최근 집권 여당의 싱크탱크에서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중에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기사가 나오자마자 지금은 단지 고려중일 뿐이고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부인 발언이 나왔지만, 그 방안이 내년도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20대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전략이라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1971년 모병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보수적인 시장주의자들이였습니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공화당이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세웠구요.
바로 이 점에서 민주당의 모병제 논의가 아니러니하다고 보는 겁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B. Appelbaum저 “The Economists’ Hour”라는 책의 첫 장 제목은 ‘Markets in Everything’입니다.
경제학자들, 특히 시장주의적 경제학자들은 모든 것에 시장원리를 적용하려 든다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달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큰 활약을 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Appelbaum의 설명에 따르면 모병제로의 전환을 처음으로 주장한 경제학자는 그 유명한 시카고대학의 프리드먼(M. Friedman)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뒤를 이어 Oi라든가 Anderson 같은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이 운동에 참여해 공화당을 설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프리드먼은 징병제가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들 동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극도로 불충분한 보상만으로 젊은이들의 시간을 강제로 빼앗는 제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핵심 논리는 충분한 보상을 지급해 자발적으로 군 복무를 원하는 사람만을 모아 군을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공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미국 사회는 모병제로 전환한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베트남전과 징병제가 맞물려 젊은이들의 엄청난 저항이 일어났는데, 전쟁이 종식됨과 동시에 모병제로 전환함으로써 사회가 평온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모병제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두 나라 사이에 아주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의 경우 병력에 비해 인적 자원이 풍부해 그 중 일부분만으로도 충분히 군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전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1947년에 태어난 190만 명의 젊은이들 중 오직 27%만이 군 복무를 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징병제는 이들 사이에서 병역의무를 매우 불공평한 방식으로 배정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7%만 군 복무를 시키고 73%는 그 의무에서 해방시켜 준다고 할 때 누구를 징집하고 누구를 그냥 놓아둘 겁니까?
특정한 기능이 있는 사람을 빼주기도 하고, 교사가 되려는 사람을 빼주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마치 로토 뽑듯 추첨으로 징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로토에서 운이 나빠 징집이 되면 바로 베트남으로 가야 하는데 73%나 되는 운 좋은 사람들은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운 나쁜 27% 중의 한 사람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베트남으로 가는 배에 올라타겠습니까?
여러분의 자식이 그 운 나쁜 27%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런 결과를 빚은 시스템을 기꺼이 지지하겠습니까?

구태여 보수적 시장주의자들이 모병제로의 전환을 위한 이념전쟁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당시의 미국 사회 상황은 모병제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모든 젊은이들이 징집 대상이 되는 징병제하에서는 누가 군대에 가고 누가 가지 않느냐를 둘러싸고 필연적으로 불공정성 시비가 벌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듯, 우리나라는 출산율의 저하로 인해 군에 동원될 인적 자원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징집연령의 젊은이들이 모두 군대에 간다 해도 부족할 지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모병제로 전환할 때의 상황과 판이하게 다른데 모병제로의 전환이 과연 그렇게 절실한 과제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샌델(M. Sandel)이 지적하듯 병역의무에까지 가격표를 달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의 여부입니다.
그는 “What Money Can’t Buy”란 책에서 미국 남북전쟁의 전사자 중 부유한 가정의 자제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부유한 가정의 자제는 아예 징집되지 않거나(남군) 징집이 되더라도 돈을 지불하고 남을 대신 전쟁터에 보낼 수 있었기(북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병역의무에조차 가격표를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의로우냐고 묻습니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니요.”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면 현대 미국 사회의 모병제가 남북전쟁 당시의 상황과 다르다고 생각하느냐고 샌덜은 묻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답을 제시합니다.
지금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적지 않은 미국 전사자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중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 그의 질문입니다.

모든 공동체는 외적의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 부담은 모두가 공평하게 짊어지는 것이 정의로운 일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젊은이들이 모두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정의의 원칙에 기초해 있습니다.

장교나 준사관의 경우에는 군이 하나의 커리어로서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보수가 주어진다는 전제하에서 다른 직업보다 더 선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병의 경우에는 비록 어느 정도의 물질적 보상이 주어진다 해도 커리어로서의 의미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결국 경제적 약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사병으로 자원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닙니까?

샌델이 강조하듯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에 명확한 한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방위하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모든 젊은이들이 공평하게 나눠서 지는 사회가 정의롭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유층의 자제가 세금 몇 푼 더 내면 손쉽게 국방의 의무를 벗어던질 수 있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울 수 없습니다.

 

퀴돌이
(2019/11/12 14:15)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국방서비스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편익을 얻기 때문에 그 비용 또한 골고루 분담되는것이 바람직 하겠지만, 비용부담형식이 항상 목숨을 담보로 하는 형태여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생명은 돈보다 항상 귀한것이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에 동의할 것이나, 사실 모든 사회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더 많은 보수를 지급받는 것을 당연시 여깁니다. 생명이 돈보다 항상 가치있고 귀중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가난한 사람은 남들보다 생명을 잃을 환경이 높은 일자리에서 더 높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을 감수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군인 뿐 아니라 소방관,건설노동자등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게되는 직종에서 항상 일어납니다. 부유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가난한 사람은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되는건 어찌보면 경제학적으로 당연한 현상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경제학적으로 당연한 현상의 결과가 우리의 윤리적 잣대를 들이댔을때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보면 강제적으로 황금같은 20대 청춘을 낮은 임금 받으면서 일하게 되는 청년들의 자유가 어느정도 회복될 것이란점, 여러가지 부수적인 경제효과들이 모병제에의해 나타날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병제가 우리의 정의로운 잣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썩 바람직 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같은 잣대를 징병제에 대보았을 때 그런 잣대가 징병제에 대해서는 바람직 하다고 이야기 해줄지 저는 의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징병제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청년들의 불만이 산재해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강제적으로 군대가서 낮은 임금받고 일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군대가서 좀더 높은임금받고 일하는게 가난한 사람에게 좀 더 나은선택지가 될 수 있지않을까요?

 
이준구
(2019/11/12 14:22)

징병제 그대로 유지하면서 모병제일 때의 보수를 지급하면 그런 문제는 없을 텐데요.
심지어는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직업을 다른 선택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이 모두 떠맡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자원했기 때문에 자발적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왜 그런 선택이 불가피했는지를 헤아려 봐야 하지 않을까요?

 
퀴돌이
(2019/11/12 14:27)

사실 저는 징병제가 정의롭고 모병제가 정의롭지 못하다는데에 동의 할 수 없는게, 현실에서 징병제가 운용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조리와 부정의가 드러났기 때문에 모병제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징병제가 이상적으로 시행되면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징병제보다는 모병제가 좀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퀴돌이
(2019/11/12 14:35)

사실 제가 글을 쓰면서 전제로 한것은 징병제일때는 낮은 임금을 받고, 모병제일 때는 그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전제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과연 징병제하에서 모병제와 동일한 임금을 줄 수 있을지에대해 현실적 실현이 너무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방비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징병제 개선을 해 볼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현실에서 그것은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군인이 되는 것 이외에 더 나은 선택지가 아예없는것은 아닌데, 왜 불가피하게 군대에 가게될지 의문입니다. 군인보다 더 나은 임금을 제공하는 일자리가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준구
(2019/11/12 14:35)

미안하지만 내 마음대로 퀴돌이씨가 우리 징병제가 그 동안 정의롭지 못하게 운영되어 왔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추측해 보면, 결국 돈 많고 힘 있는 집 자제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의무를 회피해 왔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모병제는 그들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죄책감 없이 맘껏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까지 달아주는 셈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병역 회피한 느낌이 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 떳떳하게 행동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병제하에서는 "내가 세금 더 내고 군대 안 가는 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젊은이들 중에 징병제에 대한 반감이 큰 계층은 웬만큼 잘 나갈 자신이 있는 사람들 아닐까요?

 
퀴돌이
(2019/11/12 14:43)

결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징병제와 모병제 논쟁은 이상적인 상황에서의 징병제와 모병제를 비교하는 것이아닌, 현실에서의 징병제와 모병제를 비교평가 해야 논의가 이어질것 같습니다.. 저도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현재 우리사회에는 없는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낫다는 데에는 동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중 징병제에 반감이 큰 계층은 웬만큼 잘 나갈 자신이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뭘해도 사회에서 이것보단 더 잘 살 수 있다는 사람, 이것보단 돈을 덜벌어도 자유가 있는게 낫다는 사람 등 다양할 것 같습니다.

 
독일잠수함
(2019/11/12 14:46)

사실 모든 사회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더 많은 보수를 지급받는 것을 당연시 여깁니다.

-----> 요 전제 자체가 잘못 되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죠

각종 사고나 산업재해로 다치고 사망하는 사람들이 저임금에 저학력에
외주화된 하청 직원입니다

20살 무렵인 사망하신
지하철 관련 근로자나
발전소 근로자 관련은

혹시 못 보셨나요?

언론기사???

못 보신 게 아니라
애써 안보려 했겠죠 아마도...
기억에서 망각하려 했거나...

 
퀴돌이
(2019/11/12 14:50)

독일잠수함//
제 말뜻의 진의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위험수당을 지급받는 등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대가가 부유한 사람들이 가져가는 임금보다 낮은것은 맞지만요. 실제로 같은직장에서 현장에서 힘든일하는 사람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받는게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독일잠수함
(2019/11/12 14:53)

퀴돌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언급한 거구요

정말 그렇게 일반적이라면
굉장히 좋은(?) 사회이게요???

 
퀴돌이
(2019/11/12 15:03)

독일잠수함//

제가 본 현실과 님이 본 현실의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연구직이 대기업 생산직보다 많이 받는것을 보며 위험도 적은데 임금도 많이 받는다고 뭐라 할 수 있나요? 두 직종종사자의 능력이 애초에 다른 것을 그렇게 단편적으로 보면 적합한 비교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현실에서 동일한 능력에 있는 사람이 일을 선택할때 위험을 감수하는 직업이 임금을 더 많이 받겠습니까? 아니면 아무위험없이 일하는 직업이 돈을 더 많이 받겠습니까?
잠수함님이 보는 현실은 상이한 능력의 상이한 위험을 가진 사람들에대한 것 같습니다.

 
독일잠수함
(2019/11/12 15:15)

예전에 무슨 상고 나오면 은행취업하고
공고 나오면 그럴 듯한 공장 취업하고

이러던 시절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맞을 법도 한데...

채용을 안 합니다

미안하지만요

대기업 연구직
대기업 생산직

무슨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 하시나요???

다 아웃소싱입니다

것도 1차 2차 3차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님과 제가 같은 세상 사는 분 맞으신가요?

좀 당황해서...

저 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제가 보긴 했었습니다 실제로...

지금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이지만요 ㄷㄷㄷ

 
퀴돌이
(2019/11/12 15:28)

이야기 하는 논점이 다르니 논의가 이어지질 않는데요..
제가 이야기한 "사실 모든 사회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더 많은 보수를 지급받는 것을 당연시 여깁니다." 라는 제 말의 진의가
동일한 능력의 사람들 중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는것입니다.. 노동경제학에 기초적으로 나오는 논의인데 현실에서 상이한 능력의 상이한 위험의 사례를 가져와봤자 설득이 안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핀트가 어긋난 논쟁인것 같습니다. 당연히 노동자 입장에서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하려면 더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경제 이론적으로 당연한 사실을 논박하고 있을 필요를 못느끼겠네요.

 
독일잠수함
(2019/11/12 15:39)

교과서 같은 이야기 로 전제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저는 세상 교과서 안 맞는다는 그렇다는 이야기 라면 맞나요?

이게 논점 차이인가요?

정말 교과서 같은 님 주장대로면

아주 황당한 저임금에 고위험에 노출되는 사람이 적어야 할텐데...

안 그렇다는 겁니다

전혀 현실에선...
현실에 님 주장 맞는 경우도 있겠죠

제가 그래서 위에다 적어도 한국에선
이라고 했잖아요????

님 같으신 생각을 누가 안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식이면...

모든 문제 해결을 못해요

왜?
논점이 있고 주장을 하려면
한국사회에서 이야기를 해야지

왜 한국에는 들어맞지도 않는 전제에서 주장을 하느냐는 겁니다

이게 논점 차이인가요?

애초에 주장이 잘못된 거죠????

 
퀴돌이
(2019/11/12 15:51)

님이 저임금에 고위험 노출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심정은 이해하구요. 한국 사회에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한국에 그런분들이 있다는 거랑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논의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에요. 모병제 징병제 이야기 하다가 어쩌다 거기에 핀트가 꽂히신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위험해지는 대가로 더 많은 임금을 얻는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라는 것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현실에 낮은 임금, 높은 위험의 노동자가 있다는게 어떻게 제 주장에 대한 반증 사례입니까? 제 주장을 반증하시려면 어떤 경제주체가 위험을 더욱 감수하는데 임금이 낮아지는 것을 선호 하는, 예컨대 위험선호자일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은 일반적으로 위험을 기피하기 때문에 이런 논의가 나오는 거구요. 동일선상에서 이야기 하지 않으니 피곤하네요.
제가 쓴 글중 모든사회에서~당연시 여깁니다 가 님한테는 모든사회에서는 고위험직종이 높은수당을 받습니다로 이해되신거 같은데 그게 제 진의가 아니라고 계속 말씀드리고있습니다.

 
독일잠수함
(2019/11/12 15:58)

사회과학 이론이
다 맞을 수야 없겠죠?

그쵸 제가 모를 리가 없잖아요?

무슨 제가 성인군자라고 안타까워하고 말고 합니까???

현실에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라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구요

왜 인지는...????
나도 모릅니다 미안하지만요

제 나름 생각이 있는데

건 이야기 안했구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라는 겁니다

정말 교과서 내용이라도 맞는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요런 이야기 입니다

사회과학 과 자연과학 차이가
경향성이냐 거의 들어맞냐?

차이 정도 인가요?

그 사회과학의 경향성이 정말 맞았으면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전혀 맞지도 않고 하니 언급한 거구요...

 
퀴돌이
(2019/11/12 16:12)

다른 선상에서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니 지치네요. 이론이 물론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는거 압니다. 당연히 이론이란 현실을 보다 잘 설명하기위해 고안된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전 아까부터 제가 처음에 쓴 글의 진의가 님이 이해한 것과 다르다고 말씀드리고있어요. 그걸 고려하지않고 자꾸 저임금 고위험 직종에 일하는 사람을 님의 제 주장 비판 도구로 사용하시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니까 계속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까부터 저는 제 말뜻의 진의가
위험을 더욱 감수할수록 임금이 높아진다는 , 한명의 경제주체에게 펼쳐지는 상황을 이야기 하고있는데 저임금 고위험에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근거로 끌어오면 제가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상이한 경제주체들이 다양한 위험과 임금의 분포를 가지는 직종에 일하는 현실의 상황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구요. 님이 지적하는 현실의 상황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위험과 임금의 양의 상관관계(한 경제주체)와 님이 이야기 하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위험과 임금의 음의 상관관계(현실에서 모든 직종을 관찰했을때 나타나는) 이야기랑 다른 논의라는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제가 위에 쓴 두가지 상황은 모두 현실에 부합합니다.

 
독일잠수함
(2019/11/12 17:16)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903/97239742/1

아마 저 기사가 고등학생 읽으라고 있는 기사 같은데...

대체 제가 왜 이런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다 알거라 생각하는데...

혹시 대학생이신가요????

아니라면

너무 세상 모르는 건지
애써 알고싶지 않은 건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님이 생각하는 교과서 내용대로만
존재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마칩니다

 
퀴돌이
(2019/11/12 17:46)

대학생 맞구요. 세상 만사 제가 아는대로 흘러가지 않을거라는거 알고있지만 제가 말하는 주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 하고있는 기사 가져와서 절 설득하려고 하면 제가 뭘 말해야할지 계속 당황스럽네요. 갑자기 노동시장의 양분문제를 끌고오는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님이 지적하는 현실을 저는 부정한적도 없고요. 그저 님이 사례로 드는 현실의 사례들이 제 주장을 반박하기에 부적합하다고 계속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쓴 댓글을 읽어보지 않고 그냥 댓글 다시는건가요?
제가 이야기 하는 위험과 임금의 양의 상관관계(한 경제주체)와 님이 이야기 하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위험과 임금의 음의 상관관계(현실에서 모든 직종을 관찰했을때 나타나는) 이야기랑 다른 논의라는것을 이해하신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쟁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위 두가지 상황이 현실에서 모두 가능한 이유는 경제주체의 능력이 상이하기 때문이죠.
저도 이렇게 마치겠습니다.


 
독일잠수함
(2019/11/12 18:01)

단순히 위험과 임금 둘 사이의 관계로만 이야기를 하신 것은 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전제라면 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월급이 엄청나게 적은 직업군인에 들어가는 지금 현재 사람들은 뭘까요?
부사관 임금 수준을 알고 이야기 하시나요?

어찌보면 미래 장기복무 할 수 있다는 기대
20년 이상 할 수 있으면 연금 받고 노후 안락한 세상 살 수 있다는 기대인데...

그 장기복무가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장기복무 되면 임금도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보장되는 수준인 듯 하구요

굉장히 멍청한 짓이죠
어찌보면 굉장히 비합리적인 기대를 하고 들어가니...

모병제가 되면 이런 비합리적인 기대로 속여 모병할런지도 모릅니다

미군이 그렇다는 말이 있긴 한 거 같던데요...

실제 한국군 현재
부사관 장기 복무 비율을 찾아보니
그러니 이거 바라보고 들어갈텐데 말이죠

장기복무 선발률은 일반부사관 27.3%

30%가 안됩니다

직업군인 하겠다고 하는 지금 현실서도 이럽니다

 
퀴돌이
(2019/11/12 18:14)

논의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이어집니다만..

제 글을 안읽고 댓글을 다는게 확실하신거 같습니다. 글을 새로 팔터이니 거기서 논쟁하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모병제와 징병제에 관한 논쟁이 이어져야 하는데 불필요하게 논쟁이 길어지네요.

 
Cer.
(2019/11/14 13:00)

저도 모병제가 아직 시기상조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면 같은 위험직종인 경찰도 징집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논리에는 조금 반박하기가 어렵더군요.

 
지성
(2019/11/15 09:12)

군인과 경찰은 사망 확률이 크게 차이가 나니까 다르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위험 기피적이니까 군인과 경찰 직종의 노동공급곡선의 모양이 다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정된 예산 하에서 군인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은 위험기피적인 성향이 덜하거나 저소득층이지 않을까 합니다.

중세에는 군대에 가면 적어도 굶지는 않는다고 그러면서 갔다던데 비슷한 상황 아닐까요..

 
윗글 위험을 거래하는 것은 비윤리적인가?
아랫글 교수님, 생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