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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9 10:50    조회수 : 1308    추천수 : 17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책 소개] R. Wrangham, The Goodness Paradox



루소(J.J.Rousseau)는 인간의 본성이 원해 착하다고 말한 데 비해, 홉스(T. Hobbes)는 악하다고 말했습니다.
동양사상에서도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서로 대립하고 있지요.
우리 인간의 본성이 어떻든지와는 상관없이,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을 보면 이 두 가지 견해 모두가 맞지 않음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랭햄(R. Wrangham) 교수는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인간을 신화에 나오는 ‘키메라’(Chimera)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염소의 몸과 사자의 머리를 갖고 있는 전설의 동물 말입니다.
그에 따르면 공격성(aggression)의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염소이기도 하며 동시에 사자이기도 한 존재입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볼 때) 인간은 협동적이며, 친절하고, 남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거칠고, 공격적이며,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랭햄 교수는 이와 같은 양면성이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생긴 결과라고 설명하면서 ‘자기순치’(self-domestication)라는 독특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순치과정을 거친 가축들은 야생의 친척에 비해 무척 양순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개(dog)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우 거칠고 공격적인 늑대에 비하면 매우 다른 종류의 동물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평화롭고 부드러운 성격을 갖고 있지요.
랭햄 교수는 순치과정을 거쳐 가축화된 동물은 단지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양순하게 변화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영장류 동물에 비해 인간은 매우 평화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끄떡하면 동료를 공격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침팬지를 보면 양자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을 알 수 있지요.
침팬지와 매우 비슷한 영장류이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더 평화스럽다고 알려진 보노보(bonobo)의 경우에도 폭력은 일상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사실 영장류뿐 아니라 모든 동물은 공통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랭햄 교수는 공격성에 ‘반응적 공격성’(reactive aggression)과 ‘주도적 공격성’(proactive aggression)의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두 가지가 혼합된 정도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의 특징이 현저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반응적 공격성은 누가 위협을 가한다고 느낄 때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공격성입니다.
위기를 느끼면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 배출량이 크게 늘고 그 영향에 힘입어 갑자기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동물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은 반응적 공격성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주도적 공격성은 본능에 의해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공격성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이 갖는 공격성의 주요한 특징이 바로 이 주도적 공격성인데, 이에 비해 반응적 공격성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적다는 것이 랭햄 교수의 설명입니다.
동물 사회에 비해 인간 사회가 덜 폭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반응적 공격성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랭햄 교수는 몇 십만 년에 걸친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이와 같은 공격성의 특징이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유인원 시절의 인간도 역시 반응적 공격성이 강한 동물이었을 것인데 진화과정에서 그것이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변화를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자기순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그의 자기순치가설입니다.

일반적으로 순치되어 가축화된 동물은 양순한 성격뿐 아니라 신체적 특성에서도 야생에서의 친척과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체격이 더 작아지고 얼굴이 덜 길 뿐 아니라, 송곳니가 작아지며 수컷과 암컷 사이의 체격 차가 줄어드는 등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랭햄 교수에 따르면, 인간도 이와 같은 가축화된 동물의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는군요.

그런데 인간을 순치할 다른 존재가 없으니 결국 스스로 순치의 과정을 걸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자기순치’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 자기순치 과정에서 인간의 반응적 공격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오늘날 보는 평화스런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것이 랭햄 교수의 주장입니다.

아주 폭력적이라고 알려진 침팬지의 사회에서 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알파수컷’(alpha
male)이라고 부르는 우왁스럽고 힘센 녀석입니다.
다른 수컷에 비해 덩치가 크고 완력이 좋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녀석이지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훨씬 더 평화적이라고 알려진 보노보의 사회에는 그런 알파수컷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노보의 경우에는 암컷의 세력이 더 크다고 합니다.
물론 일대일로 붙으면 덩치가 상대적으로 큰 수컷이 우세하지만, 암컷 여러 마리가 협동을 해서 수컷과 대항하기 때문에 힘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거죠.
어떤 말썽쟁이 수컷이 암컷을 괴롭혀 비명 소리가 나면 바로 다른 암컷들이 협동해 대항하기 때문에 수컷이 쫓겨나고 마는 결과가 생긴다는 겁니다.

많은 동물의 사회에 그와 같은 알파수컷이 존재하고, 알파수컷이 존재하는 동물사회가 더 폭력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인간 사회가 상대적으로 평화스러운 데는 그와 같은 알파수컷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문은 왜 인간 사회에는 알파수컷이 존재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랭햄 교수의 자기순치가설은 바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먼 옛날 인간의 사회에도 역시 알파수컷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매우 폭력적인 사회였을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 인간 사회에서 알파수컷이 사라지는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이 바로 자기순치의 획기적 전환점이었다고 합니다.

동물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보통의 수컷들은 알파수컷의 횡포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그대로 참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알파 수컷에게 반항해 보았자 일대일의 싸움에서 번번이 패배하기 일쑤일 테니까요.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는 상대적 약자들이 서로 뭉쳐 알파 수컷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결정적 차이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만이 사용가능한 언어가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지요.
동물의 경우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에 약자들이 모여 알파 수컷을 제거하자는 모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은밀한 곳에서 모여 대화를 통해 알파 수컷을 제거하자는 모의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먼 옛날 우리 인간의 조상들이 바로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은밀하게 모여 독불장군처럼 군림하는 집단의 말썽쟁이를 제거하기로 합의를 보고, 결국 그를 죽여버리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최근까지도 수렵채취 부족들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사례를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완력이 세다 하더라도 힘을 합친 여러 명을 이길 재간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의 연합(coalition)은 매복 공격 등의 방법을 통해 말썽쟁이를 제거했을 겁니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공격적인 성향을 갖는 유전자가 자연선택 과정에서 도태되는 결과가 빚어졌을 거라는 게 랭햄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평화스럽고 부드러운 성격의 인간들만 살아남게 된 것이구요.

그리고 이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독불장군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문화적 학습도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남의 눈총을 받을 짓은 곧 바로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튀지 않고 집단의 규범에 순응하는 태도를 저절로 학습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왕따' 당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것의 인류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말썽쟁이를 죽임으로서 사회에서 제거한 것은 또 다른 성격의 폭력을 의미합니다.
여러 사람이 연합해 의도적으로 살인의 폭력을 행사했다는 의미에서 랭햄 교수는 이런 성격의 폭력을 coalitionary proactive aggression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런 성격의 폭력이 인간 사회의 한 특징이 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지구요.

주도적 공격성은 전쟁 등을 위시한 인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사회적 폭력 현상의 기본 성격입니다.
동물의 경우에는 주도적 공격성의 예가 비교적 드물고, 이 유형의 공격성은 바로 인간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가 한편으로 매우 평화스럽게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매우 폭력적인 이중적 성격이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키메라와도 같은 인간의 특성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는 학설이 바로 이 책에서 설명되고 있는 자기순치가설입니다.

나는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 랭햄 교수는 하버드 대학의 생물인류학(biological anthropology) 교수인데, 인류학에 조예가 없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 가능한 한 풀어서 썼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어로 쓰여 있는데다가 전문용어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반 독자로서는 읽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약간의 도전정신을 발휘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독파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메이데이
(2019/10/19 12:35)

올려주신 <선량함의 패러독스>의 부제에서는

진화하는 동안 인류가 가지고 있는 괜찮은 품성과 폭력성 사이에 '뜻밖의' 관련성이 있었던 것으로 느껴지지만
선생님의 소개글을 읽고 나서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생각할 때,
오랜 세월 계속된 '뜻밖의' 관련성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특성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준구
(2019/10/19 13:32)

인류학계에서 자기순치가설이 얼마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공격성을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ps. 메이데이님의 <선량함의 패러독스>라는 번역은 정말로 탁월합니다.
나도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망설였는데 이걸 보고 "야, 이거다."라고 외쳤답니다.

 
메이데이
(2019/10/19 14:25)

아이고 선생님. 과찬의 말씀입니다.

 
독일잠수함
(2019/10/19 19:00)

솔직히 찾아보고 순치 라는 단어 처음 알았습니다 ㅡㅡ
길들이기나 가축화 가 더 쉬운표현 아닐까 합니다
순치 라고 해서 상상을 마구 했었던 ,,,

그런데 사람에게 길들이기나 가축화도 쓰기 힘든 표현이긴 하겠네요 ㅡㅡ

 
독일잠수함
(2019/10/20 20:21)

교수님께서 저 이론 책을 언급하셨는데,,,
유사 이래

독재정(지 멋대로 하는 권력)은 강력한 사병으로 권력을 유지한 것을 보면 또한 반론도 있지 않을까요?

조금 떡고물로도 강력한 사병 사냥개는 유지가 가능하니...

하여간 인간성 휴머니티 라는 것은 요상하긴 한가 봅니다

간단하게 정의가 불가능 하니...

유인원 사회도 사병 유지 한다고 하지 않나요?
전에 얼핏 글 읽었던 기억이 분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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