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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16:40    조회수 : 6677    추천수 : 25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Jan O'Herne이라는 분을 아시나요?



이 분이 누구인지 아시는 분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도 9월 초 발행된 Economist지의 사망기사(obituary)를 읽기 전에는 이 분이 누구신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지난 8월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 할머니의 일생에 대해서 읽는 순간 나는 찌를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분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네덜란드인으로서 일본군에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갖는 고초를 당하다 풀려난 분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로 여러 말들이 많은데, 이 할머니의 경험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특히 『반일 종족주의』란 책이 퍼뜨리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1942년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은 거기에 거주하는 네덜란드인들을 강제수용소에 쳐넣었습니다.
O’Herne씨도 그 중 하나였는데, 1944년 어느날 일본군이 들어와 갓 스물이 넘은 그녀와 여섯 명의 처녀를 납치해 갔습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일본군 위안소였는데, 그날 이후 그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삶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첫날 밤 그를 찾은 대머리의 일본군 장교 얘기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하지 마!”를 외치며 울고 비명지르고 그를 발로 차기까지 했답니다.
그 못생긴 사내는 빙긋이 웃더니 칼집에서 칼을 꺼내 칼끝으로 그녀의 몸에서 옷을 모두 벗겨낸 후 능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똑같은 일을 당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정원에 숨었는데 발각되어 끌려나와 다시 다른 군인들의 노리개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신체적 고통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상실이 더욱 참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O’Herne씨는 원래 수녀가 되기를 원했는데, 위안소에 끌려간 후 이 꿈을 접어야만 했다는군요.
천신만고 끝에 위안소에서 풀려난 후 신부를 찾았는데, 그는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는 것처럼 그녀를 피했다고 하니까요.

O’Herne씨는 다행히도 영국 군인 Tom Ruff를 만나 결혼해 오스트레일리아의 Adelaide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고생을 했다는 것은 가족에게 철저한 비밀로 했나 봅니다.
그녀는 일본군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었지만 거의 70세에 이르기까지 입을 꼭 다문 채 살았습니다.

1992년 O’Herne씨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는데, TV에서 본 3명의 우리나라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그녀는 용기를 내어 자신도 증언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딸들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고백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능욕당한 사람의 울부짖음”(Cry of the Raped)라는 제목의 글을 봉투에 넣어 두어 딸들로 하여금 읽게 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이야기가 세상으로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복수를 바라는 분노한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일본이 2십만 명에 이르는 젊은 여성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죄행위를 인정하기를 원하는 냉철한 증인으로서 그녀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후 O’Herne씨는 일본 토쿄에서 그리고 미국 국회에서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우익 정부가 과거의 범죄행위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의 보상을 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O’Herne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일들에 대해 새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매춘부였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습니까?
그들은 객관적 증거를 말하지만 피해자 자신의 생생한 증언만큼 더욱 결정적인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보았다고 주장한 객관적 증거라는 게 결국 일제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남긴 자료 아닌가요?
지식인이라면 의당 이 점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고 출발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에 대해선 일자무식인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O’Herne씨를 위시한 6명의 순진한 처녀를 강제로 위안소로 끌고 간 얘기를 들으면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런 일본군이 무슨 이유로 식민지 한국 여성들에게는 자발적 의사를 물어 데리고 갔겠습니까?
야수 같은 그들이 유독 식민지 조선에서는 신사처럼 행동했다는 게 도대체 납득이 가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예전에는 잠잠하게 있더니 사회단체의 부추김을 받아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O’Herne씨는 왜 70살이 다 되도록 그토록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지냈을까요?
자신의 수치스런 과거를 온 세상에 알리는 일이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인가요?

난 위안부 할머니들이 과거 입을 닫고 살아온 데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독재정부하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 준다는 개념 그 자체가 희박했습니다.
별 죄도 없는데 잡아가면 그대로 끌려가고 때리면 그대로 두드려 맞고 살았던 시절 아니었습니까?
그런 정부에 대해 무슨 신뢰가 있기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겠습니까?
그저 자신의 삶이 기구한 탓이라고 체념하고 사셨을 게 분명합니다.

우리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켜주지 못한 원죄를 갖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정부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일입니다.
그 분들의 아픔을 보듬고 일본으로부터 최대한의 진정어린 사과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도 모자랄 판에 별 근거도 없이 그 분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 것은 정말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ps. Jan O'Herne 씨의 사망기사를 직접 읽고 싶으신 분은 2019년 9월 7일자 Economist의
"Cries from a Handkerchief"라는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무지 가슴 아프지만 너무나도 감동적인 기사입니다.

 

Cer.
(2019/10/07 17:17)

공감합니다. 그런 발언을 한 류모 교수님도 참 이해가 안 가는군요.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런 표현 자체가 굉장히 무례하다는 것을 알텐데 교수 정도 되는 위치에 있으면 할말 못할말 구분할 능력이 있을텐데..

 
이준구
(2019/10/07 17:58)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학자적 양심이 아니라 (아무 근거 없는) 지적 오만이지요.

 
메이데이
(2019/10/07 18:54)

선생님, 이 분의 <50 Years of Silence>가 중국어로 번역되어 <&#27785;默50年>으로 나와 있습니다. 침묵의 세월을 끝내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사람들과 연대한 내력이 잘 나와 있었습니다.

 
메이데이
(2019/10/07 18:57)

<&#27785;默50年>은 <沈默 50年>입니다. 沈의 중국 간체자가 깨졌습니다.

 
안병길
(2019/10/07 19:12)

[반일 종족주의?]

며칠 전 만났던 친구가 '반일 종족주의' 책을 읽었다고 하면서 강제 징용과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그 책 내용에 동의하는 듯한 발언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저에게 한번 읽어볼 것을 권했습니다. 제 답은 대충 이랬습니다.

"안병직, 이영훈 교수 등의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글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그 책을 읽을 필요는 못 느낀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그 주장은 과도한 일반화이다. 일부 통계나 증언 등을 예시하면서 그렇게 주장하는데, 그것을 반박하는 연구도 많다. 예컨대, 노예 사냥식으로 조선 처녀를 위안부로 데려갔다는 증언을 나중에 허위였다고 스스로 부정한 일본인이 있는데, 그런 증언 번복이 사실이라고 해도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서 종군 위안부로 데려간 사례들만 참조해도 일제의 만행은 반인륜적 범죄인 것이다. 위안부 모집을 민간이 했다고 해도, 당시 종군 위안소가 여러 동남아 일본군 부대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일본 제국주의 국가가 행한 구조적 폭력인 것이다. 충분한 보상을 해줬다고 주장하는데, 전쟁 말기에 패하는 국가의 군표가 무슨 가치가 있었겠나.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귀향할 뜻을 존중했다고 하는데, 이미 질곡에 빠뜨려 놓고 사후에 그런 선택권을 형식적으로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위안부 보건 등 관리가 제대로 되었다고 주장해도 그런 반인륜적 범죄를 감출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성노예 인권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로 철두철미하게 서구식 근대화를 준비하여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였다. 매우 용의주도했다고 볼 수 있지. 징용법을 만들어서 향후 국제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렸지.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게는 징용이 아니라 '강제 동원'이란 용어를 쓰는 게 적절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강제 동원된 개인과 그 노동력을 쓴 일본 회사에 관한 것이지 1965년 한일협정이 규정한 국가와 국가 관계가 아니다.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본 법조계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대법관이 대충 판결하는, 그런 실력 없는 분들이 아니다.

그 책 내용에 혹하지 말고 다른 자료도 많이 접하기 바란다."

 
이준구
(2019/10/07 19:24)

메이데이님 인터넷 검색해 보니 그 책 꽤 유명하더라구요.
그 분도 유명한 인권운동가로 인정 받고 있구요.
근데 그 분 돌아가셨을 때 우리 언론은 왜 아무런 말도 안했을까요?

 
이준구
(2019/10/07 19:25)

안 박사 아주 통쾌하게 잘 얘기하셨어요.

 
jackdawson
(2019/10/08 12:27)

일본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저도 조만간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과연 얼마나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인지, 그 자료가 믿을만한 것인지 제 눈으로 직접 읽어보려고요. 유튜브를 봤는데, 너무 말씀이 느리셔서 귀에 잘 안들어오더라고요.

 
이준구
(2019/10/08 13:34)

그 책을 직접 읽어 보았자 확인이 불가능할 겁니다.
내가 위에서 지적했듯,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연구의 기초로 삼았다고 주장하는 자료의 신빙성입니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해 삭제해 버린 자료는 어떤 방법으로든 되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자료 작성 과정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성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린 소녀의 동원과정에서 자발적인 성격이 어느 정도 있었느냐는 매우 주관적인 문제 아닌가요?
예컨대 일본어도 잘 모르는 소녀들에게 적당히 감언이설로 꼬드겨 놓고 스스로 동의했다고 기록해 놓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었다고 봅니다.
냉철한 역사적 분석을 위해서는 이런 점을 충분히 감안해 분석을 진행해야 마땅한 일이지요.

 
이준구
(2019/10/08 13:37)

어떤 사람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독일 나치는 강제수용소에 사람들 집어넣을 때도 본인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동의가 진정한 자발적 동의가 아니란 건 삼척동자도 잘 아는 사실이지요.
독일 나치를 숭배하던 일제가 거기서 배워 똑같은 수법을 썼을 가능성이 큽니다.

 
jackdawson
(2019/10/08 15:27)

교수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그 책을 읽었다고 해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동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마 많은 독자들이 교수님 말씀처럼 자료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품고 그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설득력이 떨어지면 많은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논파당할거에요. 근데, 솔직히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긴 하더라고요. 때론 궁금하기도 해서 책을 읽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econ2019
(2019/10/08 18:35)

안박사님의 댓글의 다른 부분(과도한 일반화, 강제성 등)에는 동의하는데, 대법원 판결에 대한 옹호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기존까지 행정부의 여러 고민을 담아 만들어낸 균형이 있었죠.

대법원 판결로 인해 행정부는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었고, 그 후 양국관계 경색은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법부가 개입치 말아야할 것에 대해 개입했으며, 그 대법관들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대법관들이 실력없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요. 법대 교수님들 중에서도 이 판결에 대해 반대의견을 가진 분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539376

최근 문제가 되는 누군가는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판결을 부정하면 친일파'라고 했었지만요 ㅎㅎㅎㅎㅎ

반일종족주의는 과도한 일반화적 요소가 있으며 학술서적보다는 정치서적에 가까운 것 같고, 안박사님 비판은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 사회균형은 또 반대편으로 너무 기울어 있는 것은 아니었던가요?

제가 링크건 기사에서처럼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학술대회도 친일파라고 몰릴까봐 열기 힘들고, 정부당국자는 이걸 부정하면 친일파라고 공개적으로 표현하고...반일종족주의의 저자는 예전에 tv토론에 나왔을 때 한 발언 때문에 연구실에 테러도 일어났었죠.
이런 모습들을 '반일종족주의'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낸 것에는 일면의 진실도 담겨있다고 보입니다.

안박사님께서야 많이 공부하신 분이니 당연히 다른 자료도 충분히 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대체로 반일종족주의에 대해 격한 공격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사고가 굉장히 경직적이고 다른 자료는 안 접하는 사람들인 경우를 워낙 많이 봐서요.

반일종족주의도 문제가 많은 책이지만, 그 책에서 이야기하듯 일본을 둘러싼 태도에 대해 문제제기가 필요한 지점들도 우리사회에는 제법 많지 않은가...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미누스
(2019/10/08 21:13)

econ2019님이 대법원판결을 비판하는 이유가 뭐에요? 집행해봐야 아무짝에 쓸모없어서 그래요? 아니면 사법이 개입해서는 안되는 곳에 개입해서 그런거에요? 제 생각엔 후자에 님께서 방점을 찍은 것 같은데요.

 
jackdawson
(2019/10/08 22:34)

대법원 판결 존중해야죠. 문제는 로스쿨 교수는 판례평석 하는 게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고,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한 전원합의체 판례는 판례평석에 좋은 먹잇감(?)인데, 비판한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매도될까봐 걱정되는 분위기는 참 슬픕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못하는 분위기에요.

제가 가끔가는 어떤 연구 커뮤니티에서는 실험실 도구를 사는데, 일본꺼 사도 되냐고 걱정하더라고요. 국산꺼 사고 싶은데, 구하기 어렵다는 거에요. 저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저는 그냥 필요하면 일본제품 삽니다. 이미 우리사회에 일본과 떼어놓을 수 없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너무 감정적 대응인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본 극복해야죠. 경제도 이기고, 외교도 이기고, 과학기술 분야도 이기고, 인권이나 모든 분야에 이겨서 극복해야죠. 그런데, 이길려면 냉정하게 우리가 가야할 길을 계획하고 때론 일본과 협력할 필요도 있는데, 일본 맥주 먹거나 유니클로를 사면 마치 친일파인 것처럼 매도되는 분위기는 결코 도움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감정적인 면이 커요. 차분히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 정부관료가 죽창가 타령에,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면 친일파, 자치구청에선 대놓고 일본제품불매 플래카드를 붙이니... 저는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미누스
(2019/10/09 02:47)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차분하게 이성적'이란 말이, '송양지인'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 들여질 수도 있죠.

 
안병길
(2019/10/10 10:07)

econ2019님,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찬반이 있죠. 찬성 쪽 해설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링크하진 않을게요. 건설적인 찬반 토론은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죠. 생각이 다른 편을 극단적으로 과도하게 공격하는 건 물론 좋지 않구요.

 
미누스
(2019/10/10 11:04)

밤새 격론이 오고간거 같네요. 지웠다 고쳐쓰고...

 
퀴돌이
(2019/10/10 12:12)

더하여 아무런 말없이 댓글을 삭제하여 다른 사람들이 단 답변을 바보로 만드는건 좋지않다고 생각합니다 2019님.

 
econ2019
(2019/10/10 16:47)

제가 미누스님에게 단 댓글에다가 끼어들어서 속담의 속뜻에 대해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고 도발하길래,

해당 사자성어의 속뜻에 대해 제대로 말씀드리려고 답글을 달다가 별로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지운 것입니다. 그만하죠.

 
퀴돌이
(2019/10/10 17:25)

송양지인은 송나라 양씨의 어짊을 말하는 고사아니던가요?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의명분을 내세울 때 쓰는 말인데 그렇다면 미누스님이 부적절하게 송양지인을 사용한건 아닌거 같은데요. 속담이 사용되는때가 그 속담이 생긴실제 상황을 충족시켜야 합니까? 너무 좁게 속담을 해석하시는거 아닌가요. 속담의 속뜻은 생각지도않고 말하지마세요.

 
jackdawson
(2019/10/10 18:56)

그러니까 일본에 대해서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의명분을 일본에 내세운다는 의미인가요? 제가 독해력이 딸려서요. ㅡㅡ;;

 
jackdawson
(2019/10/10 21:28)

미누스님의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 송양지인이라는 말을 저는 어디서 들어본거 같은데, 몰라서 검색해봤거든요. ㅎㅎ

제가 무식한 탓이기도 한데, 남에게 베풀필요가 없는 호의를 베풀다가 되려 낭패를 본다는 뜻인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일본에 대하여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자는 주장이 일본에 대하여 과도한 호의고 따라서 그러다간 나중에 낭패를 본다는 건가요? 그래서 지금처럼 일본제품불매운동도 계속필요하고 뭐 그런뜻인가요? 조국처럼 죽창가 타령,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면 친일파라고 하는 것도 그 정도는 자신의 의견 표현으로써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제가 무식해서요. ㅡㅡ;; 문장의 맥락이 쉽게 들어오지 않아 여쭤봅니다.

 
jackdawson
(2019/10/10 23:40)

제가 독해력이 딸리니 주석이 좀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것 뿐이랍니다.

 
미누스
(2019/10/10 23:41)

내가 한말은 불과 세줄인데, 길게 주석을 다느라 고생많았습니다. 님의 글 속에 내 세줄자리 글에 대한 격한 반응이 느껴지네요.


 
미누스
(2019/10/11 08:14)

진중권이니 조국이니 미세먼지니 하는거 걷어내고, 한자 몇개 집어넣으면 70~80년대 극일하자는 신문칼럼을 읽는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님의 글에 대해 이정도로 밖에 반응못하겠네요.

 
메이데이
(2019/10/11 11:38)

이런 분위기에 말씀드리려니 어색합니다만, 미누스 님, 저한테 메일로 주소 알려 주시면 이번에 나오는 제 책 보내드릴게요. 남경에 관한 이야기 책입니다. shingrr@163.com

 
jackdawson
(2019/10/11 13:32)

제가 그냥 불필요한 논란은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지웠습니다. 미누스님은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jackdawson
(2019/10/1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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