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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17:56    조회수 : 379    추천수 : 17
 글쓴이   사처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1970년 가을에...




1970년 가을에...

1970년 가을학기에 복학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65년도에 입학하고 2년 얼렁뚱당 학생으로 지내다 입대, 그리고 3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돌아온 동숭동 캠프스…

취직도 해야 하고 시원찮은 전공실력도 쌓아야겠다고 굳게 작심(3일 ^ ^)한 터라 하숙집에서.아침밥 먹자 말자 곧장 도서관으로…
지금의 대학가에 있던 ‘중앙도서관’에서 열공하고 있는데 친구가 어깨를 두드렸다.
밖으로 나가서.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전태일> 사건을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지금 시위할건데 합류하잔다.
데모대는 ‘미라보 다리’(당시의 문리대 정문)를 건너지도 못하고 최루탄에 밀려 교정으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청계천 피복공의 노동환경을 조금이나마 들어보니 평소 미쳐 몰랐던 사회현실이 이들을 얼마나 절망케 했는지 그 일부나마 어렴풋이 상상이 갔다.

그들의 열악한 현실보다 더 나를 자괴에 몰아넣은 것은 전태일의 한탄이었다.
“내게 대학생 친구가 있었다면… “
그 어려운 노동법책을 들고 씨름하면서 한 말이란다.
나도 “헌법”, “법학통론”, “행정법”등의 학점을 따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법학> ! 정말 이 과목은 내게 절벽이었다.
그런데 청계천 노동자 청년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부모님께 학비타서 학교 다니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
-앞으로 나는 어떤 사회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
이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던 질문이었다.

이 사건은 나의 인생관(이거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럽지만 딱히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에 지워지지 않는 지문을 남겼다.

*
배워도 많이, 엄청 많이 배우고 공부도 최고수준까지 한 동문 중에 이런 자가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근거린다.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괴담을 주장하는 자들…
이들보다 가방끈은 짧지만 이 괴담에 대해 다음에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같은 학번의 고 조영래 변호사는 뒤에 <전태일 평전>이란 책을 내었죠.

 

이준구
(2019/08/13 13:15)

저와 아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계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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