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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2 17:27    조회수 : 1280    추천수 : 32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골프장 만든다고 멀쩡한 남의 땅을 강제수용하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오늘 한계레 인터넷판 톱기사에는 토지를 강제수용 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85세 할머니의 1인 시위 장면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분은 일생 동안 이미 네 번이나 토지를 강제수용 당했는데, 이번에 다섯 번째로 강제수용될 위기에 직면하자 그렇게 1인 시위에 나서게 된 겁니다.
그 분이 들고 있는 팻말에는 “대통령님 도와주세요. 생명 같은 농토입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는데, 이를 보는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도로나 철도 혹은 다른 공공시설을 만들기 위해 국가가 사적으로 소유한 땅을 강제수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그 땅 위에서 살며 농사짓던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하루아침에 국가에 뺏기는 게 너무나도 억울한 일일 것입니다.
설사 정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살림의 터전을 옮기고 농사지을 다른 땅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니까요.

그러나 개인의 재산권이 신성불가침하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이 불가능하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조차 불가능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백한 목적과 정당한 보상이 지급된다는 전제하에서 법적으로 강제수용을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 이익이 상충하는 미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공의 이익이 과연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도로나 철도 혹은 항만 같은 국가기반시설을 만들기 위해 강제수용하는 경우라면 그다지 크게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이라고 명확하게 볼 수 없는 경우에도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골프장 건설을 위해 부근의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경우입니다.
골프장을 건설하면 해당 지자체의 조세수입이 더 많아질 것이고, 부근의 상권에 약간의 도움을 주게 될 걸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공공의 이익이라고 부르기는 턱없이 근거가 박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골프장 건설의 핵심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드는 것 그 자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실제로 골프장 건설을 위해 토지를 수용 당한 사례가 상당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국토계획법이 골프장을 공공,문화체육시설로 규정해 민간 건설업자도 토지 소유자 80%의 동의만 얻으면 나머지 소유자들의 집과 땅을 강제로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헌법재판소가 2011년 골프장 건설 관련 강제수용을 허용한 국토계획법 관계 조항에 헌법불일치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강제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강제수용이 가능한 공익사업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토지보상법이 아닌 개별법을 통해서도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는데, 그런 법률이 무려 110개나 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민간업자들이 공익을 가장해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길을 그렇게 다양하게 열어 놓았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이런 법률들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만 받으면 민간업자들도 얼마든지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골프장뿐 아니라 레저시설, 호텔 등의 건설과 관련해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대손손 농사를 지어오던 땅이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골프장이나 호텔 건설을 위해 강제수용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경우 민간사업자의 강제수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지만 공익성의 검증과정이 훨씬 더 엄격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에는 왜 수용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수용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를 엄격히 따진 후 수용근거 법률을 통과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독재정치 시절부터 개인의 권리 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조성되어 왔습니다.
그 유산이 아직도 남아 정당한 이유 없이 강제수용을 당하는 억울한 사람들을 숱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 정치인들은 사익 추구를 위해 개발이나 공공사업에 자주 개입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110개의 개별 법률 중 상당수도 그런 사익 추구의 결과로서 나온 것이라는 짐작이 갑니다.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하면 그런 사익 추구의 잔재를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 합니다.

강제수용에 대한 보상이 적절치 못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지만, 문제의 핵심은 과연 강제수용 그 자체를 정당화할 공공의 이익이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공공의 이익으로 가장한 골프장이나 호텔 건설을 위해 대대손손 농사를 지어오던 땅을 강제수용 당한 억울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공정한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차제에 강제수용과 관련된 법률을 대폭 정리해 그런 억울한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성
(2019/04/23 09:49)

선생님, 제 부산 고향집도 아파트 건설 때문에 수용되어서 부모님이 외진 곳 산 밑으로 쫓겨나셨습니다ㅠ 80%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20%가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혜택을 누리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본주의의 핵심인 개인의 소유권은 경시하는 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준구
(2019/04/23 10:39)

그런 아픔을 겪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테지.
공공의 이익이란 게 참으로 어려운 개념인 것 같네.

 
beatrice
(2019/04/24 22:41)

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동훈학생,
(2019/05/05 12:23)

지당하신 말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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