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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16:48    조회수 : 1088    추천수 : 13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새삼 느끼는 정확한 번역의 중요성


우리 대학이 발행하는 “대학신문”의 최근호에 법경제학(law and economics) 관련 특집기사가 났습니다.
관심을 갖고 읽던 중 “탈도덕화 비용”이라는 생소한 용어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탈도덕화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탈도덕화란 도덕의 규율에서 점차 벗어난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도덕을 중요한 행위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탈도덕화란 말은 즉각적인 해석이 불가능한 아주 난해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비용이라고 하면 그 의미가 한층 더 어려워져 과연 어떤 종류의 비용을 가리키는 말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대학신문에서는 우리의 이 궁금증을 짐작했는지 친절한 용어 설명을 덧붙여 놓았더군요.
그걸 아래에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탈도덕화비용(demoralization cost) : 정당하지 못한 규제들로 인해 피규제자가 갖는 억울함, 분노 등은 물론 투자위축이나 생산중단 등과 같은 비생산적 행위로부터 야기되는 비용.

그런데 이 설명을 들으니 머리가 맑아지기는커녕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도덕(morality)과 연관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분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덕이 중요한 행위의 기준이 되지 못할 때 왜 그런 비생산적인 행위가 나온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규제가 비도덕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그와 같은 비생산적 행위가 나온다는 겁니까?

사실 "탈도덕화비용"이란 번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demoralization이라는 말을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우를 저질렀기 때문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번역하는 사람이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오역이 나온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은 도덕과 아무 관련이 없는 말입니다.
탈도덕화 비용이라고 번역한 사람은 moral이란 말 앞에 반대의 의미를 갖는 de-라는 말이 붙고 뒤로는 어떻게 되다라는 의미의 –ization이란 말이 붙은 것으로 잘못 해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이 엉뚱하게 도덕과 관련을 갖는 말로 둔갑을 해버린 것입니다.

demoralization이란 말을 단순히 “사기를 저하시키다”라는 뜻의 demoralize의 명사형으로 해석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신문의 해설에서 정당하지 못한 규제로 인해 피규제자가 갖는 억울함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demoralization의 현상을 뜻하는 것이지요.
도덕과는 아무 관련도 없고, 단지 정당하지 못한 규제가 가져오는 사기의 저하란 의미입니다.

바로 이런 사기의 저하 때문에 사람들이 투자를 꺼려하고 생산을 중단하는 것 같은 비생산적 행위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단순하게 demoralize의 명사형으로 받아들여 “사기저하비용”이라고 번역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연히 머리를 복잡하게 굴려 moral이란 말 앞에 뭐가 붙고 뒤에 뭐가 붙고 하는 식으로 해석한 나머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오역에 이른 셈입니다.

만약 대학신문의 학생 기자가 번역의 당사자라면 얼마든지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아직 공부 중에 있는 학생에게 완벽하게 옳은 번역을 기대하긴 힘들 테니까요.
그런데 이 오역의 배후에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오역으로 일반인들을 혼란으로 이끌어간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요.

대학신문의 기사를 보면 법경제학 관련 학자들의 연구업적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그 탈도덕화 비용이라는 오역도 그들 중 하나의 작품일 것이라는 짐작이 갑니다.
그런 근거도 없이 대학신문의 학생 기자가 스스로 용감하게 그와 같은 번역을 했을 가능성은 아주 작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소부터 번역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해 왔습니다.
사소한 번역상의 차이가 이해의 정도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용어가 갖는 원래의 뜻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번역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학계에서 통용되는 번역 용어들 중에는 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라면 당연히 사명감을 갖고 올바른 번역을 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탈도덕화 비용 같은 오역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This is written in Eng.
(2019/04/17 00:52)

저도 비슷한 기억이 납니다.
제가 본 것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게 Capital punishment를 벌금형으로 번역한 거였어요.

외국의 형벌 체계에 관한 짧은 글이었는데 Capital punishment를 벌금형으로 오역했더군요. 벌금형이면 보통 절도 같은 경범죄를 연상하게 되는데 읽다가 살인 같은 중범죄가 나오니까 어리둥절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거 번역한 사람은 capital이 자본이란 뜻이 있으니까 그걸 유추해서 벌금형이라고 때려박은 게 아닌가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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