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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10:41    조회수 : 3905    추천수 : 24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영어사대주의를 다시 생각해 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수상으로 승리를 이끌어내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Economist지에 나온 기사를 보면 해로우 스쿨(Harrow School)이라는 명문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의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회고록에서 비록 머리는 나빴지만 더욱 똑똑한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상당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답니다.
똑똑한 친구들이 라틴어나 그리스어 같은 ‘광이 나는’ 과목의 공부에 정력을 쏟는 동안 자신은 영어를 철저하게 갈고 닦을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지요.
그가 후일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 비결이 아마도 그때의 철저한 영어 학습이 아니었을까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Economist지의 그 기사는 학생들을 교육시킬 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교육시키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처칠 수상의 예를 보면 모국어를 철저히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은 학습방법이고, 그렇다면 영어로 교육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 그 기사의 결론입니다.
나도 그 기사를 읽으면서 강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중에는 과연 어떤 언어를 통해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가 심각한 고민거리인 나라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모국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토착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고민이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아예 영어로 교육하는 편법을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 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영어를 통한 교육의 효과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국어로 배우는 경우에 비해 학생들의 학습량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여러 사례에 의해 입증되었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관찰된 바에 따르면, 심지어 영어 과목의 경우에도 영어로 교육 받은 학생보다 모국어로 교육 받은 학생의 실력이 더 나은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MB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인수위원회에서 “영어몰입교육”이란 개념이 크게 관심을 끌고 있었습니다.
위원 중의 한 사람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오렌지”를 현지인이 못 알아들어 “아륀지”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알아듣더라는 발언을 해서 우리를 포복절도하게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미국화된 영어 교육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그런 우스꽝스러운 말을 했던 것이지요.

다행히 상식이 승리를 거두어 그 해괴망칙한 영어몰입교육이란 말은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머리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의 수학과목까지 중고등학교의 한국사과목까지 영어로 가르친다는 발상이 나왔는지 아직도 궁금할 정도입니다.
자칫하면 우리 교육의 암흑기가 찾아올 뻔 했던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영어사대주의”의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작 걸음마를 시작하고 엄마, 아빠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어린애를 영어유아원에 보낸다고 극성을 떠는 부모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영어를 배워 뭐에 써먹으려고 비싼 돈 들여가며 애들을 혹사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칠 수상의 예가 증언해 주듯,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어중간하게 잘하는 사람보다는 한국어 하나를 최고의 수준으로 잘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에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이라고 믿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소통능력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내가 며칠 전 인용한 워렌 버핏(Warren Buffet)의 발언에서도 글쓰기와 말하기 훈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는데, 그 훈련이 모국어의 글쓰기와 말하기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버핏이 외국어를 잘해야 자신의 가치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한 건 아니잖습니까?

미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우리말로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 영어가 그리 딸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렴 우리말만 하겠습니까?
미묘한 뉴앙스 같은 것을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요.

미국에서 공부하는 경우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구태여 소통이 어려운 영어로 강의를 들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무조건 일정량 이상의 영어 강의를 듣도록 강제하는 대학이나 학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가 우리말 강의에 비해 학습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검증이나 해보고서 그런 강제규정을 만들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싱가포르나 홍콩의 대학들이 영어 강의 비중이 높아 세계 대학랭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알려진 비밀입니다.
그들은 어차피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영어 강의가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세계 대학랭킹이 탐이 나 교육효과가 열등할지도 모르는 영어 강의를 밀어 붙이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beatrice
(2019/04/03 16:59)

교수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한국어든, 외국어든 모국어를 잘해야 외국어도 잘하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히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영어권에서 나고자란 한국인의 경우 영어가 모국어 일 것입니다. 일찍부터 외국어에 '자연스럽게'노출이 되는 것은 긍정적으로 봅니다만 모국어를 잘 익히기 전에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모국어도, 외국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결과만을 낳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또한 언어라는 것이 모국어를 중심으로 (한국어든 영어든) 사고하고 표현되는 구조라고 들었습니다. 모국어로 명확한 표현, 그리고 예의를 갖춘 표현을 할 줄 알아야 이 사고 방식과 태도를 바탕으로 외국어로도 구사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에 나와보니 한국인들과도 종종 외국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만히 보면 모국어 방식대로 외국어를 구사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즉, 모국어로도 예의가 결여된 표현이나 어휘를 사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은 외국어로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국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사고 및 표현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렌지'에피소드는 정말 웃기네요. 우물안 개구리의 발상인데...세상을 다니다보면 얼마나 다양한 스타일의 영어가 있는지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 발언을 했나 봅니다.

저는 미국식 영어 교육만을 받은 세대라 그런지 이 곳에 와서 다양한 영어를 접하면 알아듣기 힘들때가 많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호주 친구를 만났다가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어서 제 영어실력이 다운된 줄 알고 우울했었습니다. 그런데 영어 잘하는 한국친구에게 말하니 본인도 그 호주 친구의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다고 해서 위안이 되더라구요. 미국식 영어만을 배운 교육시스템의 폐해를 경험했습니다.ㅠㅠ

 
퀴돌이
(2019/04/03 18:14)

교수님이 쓰신 영어강의를 듣도록 강제하는 학과에 있습니다.. 여기서 경제학 배우는 학생들은 영어로 강의를 듣지만 시험공부는 한국어 번역본을 따로사서 보는게 현실입니다. 심지어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님들도 그 현실을 아시는지 영어 강의를 하다 영어로만 들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은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실정이에요. 물론 유학에 최적화된 과이기 때문에 영어로 경제학을 배우는 메리트가 있지만, 대다수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에 한국어로 따로 두번 공부를 해야합니다. 비효율의 극치이지요.

 
독일잠수함
(2019/04/03 22:29)

처칠 가문이 한국전과도 관련이 있긴 하더군요

처칠 아들이 군인 출신인데...
것도 특수부대 출신
군 전역후 한국전에 종군기자로 참전했다고...
아버지 만큼 자식들도 황소고집으로 유명하긴 했다는 이야기가 있나 보던데요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뭔가 캐릭터가 좀 강한가요????

 
변하지않을것
(2019/04/04 05:34)

국어를 잘 해야 영어도 잘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영어를 배우기 전에 국어를 잘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것들과 영어를 못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기에 영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어로 말하고 글쓰는 건 어디서 배워야 “잘” 할 수 있는지요? 저는 학교에서 읽기 듣기는 기본 이상은 배웠던 거 같습니다.

 
너구리
(2019/05/29 04:15)

1. 한국인에게 왜 영어가 중요한가?
전세계 고등지식의 상당수가 영어로 생산되고 있고, 비영어권 국가에서 생산된 것도 영어로 쉽게 번역이 됩니다. 전문성을 갖추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한국은 영어가 영어와 별 관계가 없는 분야에서도 영어능력을 많이 요구합니다. 공무원시험, 편입, 로스쿨 등이 그렇습니다. 영어 잘 하면 영어 할 시간에 다른 것 공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영어가 중요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로 의사소통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오랜 시간동안 저성장 국면에 들어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외국에서 기회를 찾으려면 영어를 잘 하면 유리합니다. 월급 받고 일할 정도면 영어를 아주 잘 해야 겠지요?

한국은 미국의 지적 식민지입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이 어디서 박사를 받았는가 생각해보면 압니다. 서울대 대학원생들 중에 공부 할 사람들은 다 유학 준비하지 않나요?

2. 한국어부터 배우고 영어를 배우라는 것은 엉터리이다.

한국어이든 뭐든 "언어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영어도 잘 한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어를 먼저 배우고 영어를 나중에 배워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동시에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영어 배워보면 알겠지만, 책을 빠르게 읽고, 성우가 아닌 일반인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10년 이상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1) 한국 고딩들은 영어 공부할 시간이 없다.
미국은 SAT 한 문제 틀렸다고 대학입시에 큰 당락이 없습니다. 또 미국에는 명문대가 수십개입니다. 하버드 안 가도, 밴더빌트, 미시간 이런 데 가도 충분히 좋은 대학입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라서 명문대가 적습니다. 따라서 수능 1문제가 당락에 큰 영향을 줍니다.
한국 고딩은 고딩지식의 "과잉숙달"을 연습해야 합니다. 고딩이 영어소설을 읽고, 미드를 듣고 할 시간이 없습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중3이전에 어느 정도 영어를 끝내야 합니다. 이것은 적어도 초딩 때부터 영어에 노출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2) 빨리 시작할 수록 노출시간이 많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 단어 암기를 강요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과가 "apple"이라는 것은 고딩이 외우나, 초딩이 외우나 그냥 시간 쓰면 외울 수 있습니다. 물론 "pontificate"같은 단어들은 초딩이 외우기 힘들 수 있습니다. 자기 수준에 맞게 빨리 시작하면 할 수록 어휘량이 늘고, 어휘량이 늘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늘어납니다. 선순환이 생깁니다. 따라서 빨리 시작해야 유리합니다.

(3) 영어 자체가 한국어의 발달을 저해하지 않는다.
영어를 한다고 해서 한국어 능력이나 사고력이 저해되지 않습니다. 영어를 억지로 강요하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영어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한국어와 다른 사고과정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영어로 말 할 때,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영어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 영어를 알면, 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나는 관심이 있는데, 충분한 한국인들이 관심이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돈이 안 되니까 출판사가 번역을 안 합니다. 따라서 내가 한국어만 알면 그런 분야에 접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영어를 알면 그런 분야에 더 쉽게 접근합니다. 다양한 생각과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득이 되면 득이 되지, 실이 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영어 사대주의는 기우입니다.
레닌은 러시아인이고, 엥겔스는 영국인입니다. 독일어를 몰랐으면, 자본론을 어떻게 읽었겠습니까? 혁명하는 애들이 언제 독일어 공부합니까? 어렸을 때 배웠겠죠.
우리가 아는 유명한 지식인들 다 라틴어, 영어 어렸을 때 배웠습니다.

영어 사대주의를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공교육은 19세기 모형인데, 21세기에 모든 학생들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적절한 영어교육 전문가를 찾아서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교육받는 방법을 찾는게 고민이어야 할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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