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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5:34    조회수 : 2370    추천수 : 56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책 추천] Jane Mayer, Dark Money



미국의 이번 중간선거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뿌려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사실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이 훨씬 더 많은 돈을 썼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부유층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이 압도적으로 더 많은 정치헌금을 받았을 게 분명한데요.
그러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공화당을 돕고 있는 '검은 돈'의 존재를 생각하면 이런 단순한 수치의 비교는 별 의미가 없을지 모릅니다.

최근의 미국 정치는 점차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금권정치의 성격을 띠어가고 있습니다.
소위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부르는 19세기 후반의 미국 사회는 돈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정글 자본주의 시대였습니다.
그 반동으로 진보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이 생겨났고, 부자들이 휘두르던 권력에 점차 재갈을 물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루즈벨트(F. Roosevelt) 대통령의 뉴딜(New Deal)정책으로 시작된 진보정치의 전성시대는 196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사회에서 보수집단은 거의 존재감이 없는 미미한 세력에 불과했지요.
여기에 일대 전환점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파우웰이라는 변호사가 쓴 파우웰메모(Powell
memorandum)이었습니다.

파우웰선언서(Powell manifesto)라고도 불리는 이 글에서 그는 보수세력의 결집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때까지의 수세적 태도를 버리고 공세적 태도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이 짧은 글은 미국 보수세력의 재기와 대약진을 가져오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파우웰메모가 가져온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기업과 부유층이 결집해 헤게모니 쟁탈전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쓴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에는 이렇게 시작된 보수주의 운동이 어떻게 미국 정치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틀어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엄청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 내가 주로 참고한 학술 논문 중에는 그것을 다룬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득이 그 부분을 공백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추천하려고 하는 여성 저널리스트 Jane Mayer의 Dark Money 라는 책은 바로 이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책은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거부들이 어떤 수법으로 정치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치밀하고 때로는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수법에 전율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거부는 카치(Koch) 형제들입니다.
석유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제조업 기업집단인 카치 인더스트리즈(Koch Industries)의 소유주인 형 찰스(Charles)와 동생 데이빗(David)이 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업집단은 미국에서 개인 소유의 기업으로서는 두 번째로 큰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업입니다.

찰스와 데이빗은 Forbes가 작성한 미국의 거부 리스트에서 각각 6백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해 공동 8위를 차지하고 있는 거부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조스, 버핏, 게이츠보다는 재산의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재산의 소유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치판을 장악하기 위해 수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마음대로 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인 Heritage Foundation과 Cato Institute에 깊숙이 간여하며 보수세력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이념전쟁을 지휘합니다.
이 전투에 그들보다는 랭킹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재산의 소유자인 스카이프(R. Scaife), 올린(John Olin), 브래들리(Bradley) 형제 같은 조연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카치 형제에 못지않은 전투력의 소유자로서 보수세력의 승리에 나름대로 기여합니다.

이들의 간교함은 자선사업을 위장해 정치자금을 뿌려댄 데서 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자선단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세제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가 기부자인지도 은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사회의 공익을 위해 사업을 벌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복지(social wellbeing)이란 것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사적 이윤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온난화 가스를 제일 많이 배출하고 있는 미국이 왜 지구온난화에 대한 공동대응에 철저히 비협조로 일관해 왔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잘 아시듯 부시(G. Bush) 대통령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협약(Kyoto Protocol)에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파리협약(Paris Protocol)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미국이 왜 그렇게 지탄을 받을 일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요?
이 책에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해 카치 형제를 위시한 거부들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을 방해해 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화당이 집권하면 미국은 언제나 함께 훼방을 놓는 국제적 문제아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어깃장을 놓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자신의 사업, 따라서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구온난화를 위해 대량의 탄소배출 감축을 하게 되면 석유산업이 주축인 카치 인더스트리즈는 큰 타격을 입습니다.
다른 거부들도 똑같은 이유로 탄소 배출량 감축에 절대적인 반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과학적 분석결과에까지 시비를 겁니다.
관련 과학자들의 거의 대다수가 지구온난화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재(人災)라고 믿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오직 이들만이 그와 같은 과학적 분석이 ‘사기’라고 주장하며, 돈에 눈먼 학자를 매수해 반격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지구온난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낙선을 위해 잔인한 홍보활동을 벌입니다.
이 책에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지못해 태도를 180도 바꾼 정치인의 예도 여럿 등장합니다.
이들이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돈 앞에 소신 따위는 아무런 필요도 없으니까요.

이 책에서 또 하나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Occupy Wall Street운동과
Tea Party운동이 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가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Occupy Wall Street운동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월가 금융인들의 탐욕을 규탄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그 동력을 잃고 지금은 아무 존재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때 본격화하기 시작한 Tea Party운동은 거침없이 세를 불려 지금은 공화당의 지배세력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Tea Party운동의 이와 같은 눈부신 성과 뒤에 거부들이 아낌없이 제공한 검은 돈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조직을 꾸려가고 모멘텀을 살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입니다.
지리멸렬한 Occupy Wall Street운동과 거부들이 튼튼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는 Tea Party운동이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008년 정치학자 바텔즈(L. Bartels)는 미국에서 곧 금권정치(plutocracy)가 등장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언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받은 느낌은 곧 그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미국의 정치는 철저히 돈의 힘에 의해 휘둘리는 금권정치가 되어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최근 들어 공화당의 보수주의가 급격한 과격화의 길을 걷고 있는데, 그 배후에 이 금권정치의 영향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에 두 부류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한 부류는 하이에크(F. von Hayek)나 프리드먼(M. Friedman)처럼 순수하게 학문적 차원에서 시장의 미덕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비록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들의 순수성에 대해서는 한 점의 의문도 없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이 책에서 등장하는 거부들, 그리고 이들이 매수한 정치인과 학자들입니다.
거부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 이념을 편의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업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어 거부가 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세금 적게 내고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기업에 좋은 일은 미국에도 좋은 일이라는 거짓 구호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이들에 매수된 정치인과 학자들은 몇 푼의 돈 앞에서 기꺼이 그들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고 물질적 인센티브도 충분히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보는 대부분의 신자유주의자들이 바로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부류의 순수한 학자들은 워낙 소수에 불과하니 만나 보기가 어렵지요.
두 번째 부류에서 이기적 동기에서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거부들은 은밀하게 숨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대부분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거부들에 의해 매수되어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인 거지요.

이 책을 읽고 아직 우리의 정치판은 미국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내가 늘 주장하듯 미국에서 배워올 점도 많지만 절대로 배워서는 안 될 점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돈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미국의 정치는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재연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ps1.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ps2. "다크 머니"라는 제목으로 이 책의 번역판이 나와 있네요. 영어로 읽기가 부담스러우면 이 번역판을 읽으셔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전도리
(2018/11/18 17:05)

현대세계사를 이끌어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내재된 모순을 잘 지적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제 오전에 책을 주문했는데 오후 늦게 책이 도착하였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실정에 맞는 다른 현실이 엄연히 있지요..... 이조시대의 잔재를 21세기가 되도록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정통보수세력들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듯해 통쾌하네요...^^

 
전도리
(2018/11/20 00:51)

.

 
양비론
(2018/11/21 18:04)

요즘엔 생계형 좌파들도 많더라구요.

 
전도리
(2018/11/22 19:40)

.

 
푸른하늘
(2018/12/12 14:03)

교수님 감사합니다.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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