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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6 14:02    조회수 : 2336    추천수 : 25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재판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의 죄상을 일일이 열거하다 결국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하는 그의 행동들에 대한 준열한 질책이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을 위해 행사할 책무가 있음에도 다스를 실소유하며 자금을 횡령했습니다. ..... 국민의 기대와 책무를 접어두고 국회의원 공천이나 기관장 임명에 관한 청탁을 받고 ,,. 뇌물을 수수하기도 했습니다.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이러한 범죄는 공직사회 전체의 공정성을 무너뜨려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어제의 판결 결과를 보면 그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되어서도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무려 9년에 걸친 ‘어둠의 시대’를 겪어야 했던 우리의 처지가 새삼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판결문의 낭독이 끝나자 지난날의 아픈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수많은 혐의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가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저지른 숱한 범죄행위의 극히 일부분만이 사법적 단죄를 받았다는 느낌입니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그가 저지른 가장 심각한 범죄행위는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하나씩 밝혀지고 있지만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시절에는 검찰, 경찰, 국정원, 감사원 등 국민의 권익을 지켜주는 것을 본분으로 해야 할 기관들이 모두 그의 사조직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사회 정의를 밝히는 횃불이 되어야 할 언론기관은 그 아래서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민간인 사찰이니 블랙리스트니 댓글공작이니 하는 반민주적 행위들을 그가 직접 명령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대통령으로서 궁극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그가 그 질서의 파괴자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위의 중대성에 비하면 몇 십억원 혹은 몇 백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시절이 그 지긋지긋했던 유신시대 혹은 5공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공소시효가 지난 사항도 많고 증거가 인멸된 사항도 많아 제대로 된 사법적 단죄를 내리기 힘들 겁니다.
그러나 사법적 단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역사적 단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그가 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사례를 하나하나 철저히 밝혀 기록해 놓음으로써 똑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소위 ‘사자방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 노력도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제는 증거가 거의 인멸되어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밝혀질 경우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사건이 될 수도 있는 의혹을 그대로 덮어두고 만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한 일입니다.
아무리 꽁꽁 숨기려 해도 언젠가 진실은 그 얼굴을 드러내고 만다는 믿음으로 계속 파헤쳐야 할 것입니다.

어제 판결 TV중계를 보면서 2007년 대선유세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사자후를 토하던 그의 모습이 얼핏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뭐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뭐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그는 자못 분개한 표정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이 아닌 바로 그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재판과정에서도 그는 거의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들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한사코 부인하는 용기는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어제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앵커는 ‘회상성 기억조작’(retrospective
falsification)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을 인용하더군요,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을 조작하는 심리적 기제 말입니다.

물론 어제의 1심 결과가 끝은 아닙니다.
아직 상급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니까요.
그러나 1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것들이 모두 무죄로 번복될 가능성은 0 이라고 봅니다.
그가 대통령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이 밝혀진 셈입니다.

그 동안 권력의 하수인이 되기를 자처한 정치검찰이 얼마나 많은 면죄부를 그에게 주었습니까?
그가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심증은 차고 넘치지만 정치검찰의 비호 덕분에 그는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어제 명백한 사법적 단죄가 이루어진 걸 보고 비로소 이 땅에 얼마만큼의 정의는 살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이제 남은 일은 국민 앞에 엎드려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판결 결과에 불복하는 태도를 보이는 그와 그 주변인사들을 보면서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상성 기억조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뿌리 깊은 인간의 성향인지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개인적 소회가 있습니다.
‘만약’이라는 것이 웃기는 일이지만, 그가 만약 순리대로 2007년의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내 개인적으로 경험한 가장 원통한 일은 망국적인 4대강사업으로 온 국토가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녹조란 게 뭔지도 모르면서 아직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금강, 한강, 영산강을 볼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해마다 여름이 되면 녹조라테가 창궐해 수문을 열어야 되느니 마느니를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구요.
이미 지나간 일이라 아쉬워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그 일이 머리에 떠오르면 원통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가 뇌물을 받았든 어쩼든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사람들 뇌리에서 점차 사라져 갈 게 분명합니다.
그는 우리가 소중하게 가꿔온 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허물어뜨렸지만,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복구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 국토에 남긴 흉한 상처는 두고두고 남아 우리를 슬프게 만들 겁니다.

 

beatrice
(2018/10/06 18:12)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단락의 내용에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이준구
(2018/10/06 19:57)

난 그 생각만 하면 언제나 가슴이 쓰라리네.

 
한여울
(2018/10/07 00:46)

그래도 교수님같은 분이 계셔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동훈학생,
(2018/10/07 13:16)

마음 같아서는 MB의 전 재산을 압류 해서라도 4대강을 살리는데 보탰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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