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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5 12:07    조회수 : 20963    추천수 : 48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민연금의 진실(ps)




ps 1. 국민연금 재정압박의 문제는 ‘인재’(人災)가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재정위기’라고 부르기보다는 ‘재정압박’이라고 불려야 옳다고 믿습니다.
국민연금의 재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하루아침에 무너질 정도로 위험한 상황도 아닌데 이를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응할 시간적 여유도 있는 편이기 때문에 차분한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충분히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국민연금 재정압박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저출산 + 고령화) 현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성장’이라는 새로운 애로요인이 겹쳐져 3중고(三重苦)에 시달리게 된 셈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예상되어 왔던 것이고 새 정부 들어서면서 갑자기 발생한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의 어느 정부가 특별히 잘못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게 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앞의 글에서 지적한 출범 초의 무책임함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지만, 그 후에 이루어진 여러 차례의 개혁작업으로 안정화의 기반은 어느 정도 닦여진 셈입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어려움이 계속 커진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시중의 여론을 들어보면 국민연금과 관련해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큰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능력 있는 정부라 할지라도 저출산 + 고령화 + 저성장이라는 근본적 애로요인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정부가 인색하게 군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마법의 지팡이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게 만들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지금은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앞으로 몇십 년에 걸친 기간 동안 자유한국당이 집권당이 될 수도 있고 바른미래당 혹은 정의당도 집권당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국민연금 재정 문제는 목의 가시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그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대응책을 찾아 나가는 것 이외의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ps. 2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앞의 글에서도 이미 한 번 한 말이지만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어 굳이 반복하려 합니다.
국민연금으로 나오는 돈이 푼돈에 불과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0% 수준으로 하향조정해 나가려는 소득대체율을 45%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소득대체율을 45% 정도로 높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대가가 따른다는 냉엄한 경제법칙에 눈 떠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연금가입자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험료를 더 내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 보험료 납부기간 연장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민연금 가입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저부담 + 고급여)의 패키지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원리상 선택가능한 패기지가 아닙니다.
오직 가능한 선택지는 (저부담 + 저급여) 아니면 (고부담 + 고급여)의 패키지뿐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냉혹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선택지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지가 이것 둘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따라서 국민연금에 대한 논의는 이 불행한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ps 3. 그래도 국민연금이 제일 수익률이 높은 연금상품이다

올해의 국민연금기금 운용수익률이 1% 대로 곤두박질치자 가입자들의 불안감이 한층 더 커진 것 같습니다.
SNS상에서 나도는 말들을 들어보면 아예 국민연금에서 탈퇴해 스스로 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현행법상 국민연금 가입이 거의 의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런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연금만큼 가입자들에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민간부문의 연금상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행정비용의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이윤을 빼지 않고 가입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점입니다.
민간부문의 보험회사들은 이윤을 빼고 가입자에게 돌려주기 때문에 당연히 수익률이 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행정비용과 이윤의 측면에서 경비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보험의 수익률이 더 높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자금운용의 측면에서 더 높은 효율성을 보이는 경우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민간보험의 자금운용 수익률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수익률이 고작 2% 대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더군요.
이에 비해 국민연금기금 운용수익률은 올해만 빼고는 줄곧 4-5% 범위 안에 머물러 왔습니다.

신문을 보면 미국의 소위 헷지펀드(hedge fund)들이 엄청나게 높은 수익률을 얻는다는 기사가 종종 올라옵니다.
그렇지만 그 높은 수익률은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얻은 과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나라의 국민연금이 기금을 헷지펀드처럼 운용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수천만 가입자들의 노후 생계가 달려 있는지라 극로도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놀랄만큼 높은 수익률은 아예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ps 4 국민연금 가입자가 나중에 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

앞에서 쓴 글에서 이 말을 했더니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꽤 크더군요.
일하는 사람의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연금 수혜자는 계속 늘어날 텐데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당시의 젊은 세대가 엄청나게 무거운 보험료의 부담을 져야 할 텐데 그들이 선선히 동의하겠느냐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만의 하나 우리가 아무런 대응조처를 취하지 않아 정말로 2057년에 기금이 고갈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할 때 내가 예상하는 정부 대응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금 고갈의 기미가 보이면서 우선 정부는 부과방식으로의 점진적 전환을 시도할 것입니다.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 해서 하루아침에 “내일부터는 부과방식이 적용된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여건상 점진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움직여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과 연금 받는 사람 사이의 불균형이 워낙 심해지면 부과방식도 이내 한계에 부딪칠 가능성이 큽니다.
높은 보험료의 부담에 대한 젊은이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게 될 테니까요.
이 세대간 갈등이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등장하리라고 예상합니다.

이 단계에서 내가 예상하는 정부의 대응은 일반재정자금의 투입입니다.
지금 군인연금이나 공무원연금에 대해 취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태도를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취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나는 현실적 여건상 정부가 그런 단안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예상합니다.

일할 때 꼬박꼬박 보험료를 냈는데 연금기금이 고갈되었다는 핑계로 정부가 입을 씻는다?
이것은 정치가로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용입니다.
이런 만용을 부리는 정치가는 그 순간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재정자금 투입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으리라고 자신 있게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최근 정부가 언뜻 내비쳤던 것처럼 가입자들의 불안감을 덜어 주기 위해 사전에 일반재정자금의 투입을 약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2057년이 다가오면서 가입자들의 불안감이 점차 커질 게 분명한데 정부가 뒷짐을 지고 방관만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 당이 집권하더라도 말입니다.



ps. 5 국민연금에 일반재정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에 일반재정자금을 투입하는 것 그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일일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민연금제도라는 것은 노인을 위한 복지프로그램의 한 종류입니다.
다른 복지프로그램들이 일반재정자금으로 운영되는데 유독 국민연금만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만으로 운영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국민연금이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가입자가 낸 보험료의 틀 안에 국한되는 성격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그 대표적 예지만 (우리의 국민연금제도에 해당하는)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System)를 출범시킬 때 정부의 오지랖이 너무 넓어진다는 점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국민연금은 단지 민간부문의 보험을 대체하는 데 그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의 성격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배경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국민연금제도의 독특한 성격이 나온 것입니다.
가입자들로부터 거둔 보험료로 기금을 만들어 이를 운용한 원리금을 연금으로 돌려준다는 기본성격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래서 국민연금제도는 복지프로그램의 일종이면서도 그 속에 재분배효과를 가미하는 데 제한이 따르는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국민연금제도의 자금을 일반적인 세금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원칙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다른 복지프로그램과 똑같이요.
기초노령연금은 일반적인 세금에서 충당하는데 국민연금이라 해서 달리 자금을 충당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경제학자들 중에는 국민연금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행의 자금조달 방식이 갖는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보험료라는 '가식'을 벗어던지고 (누진적인 방식으로 부과되는) 세금으로 정면승부를 하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현재의 국민연금 보험료는 매우 역진적(regressive)인 방식으로 부과됩니다.
근로소득에만 부과될 뿐 다른 소득에는 전혀 부과되지 않는 데다가, 근로소득도 월 급여 468만원까지만 4.5%의 단일세율로 부과됩니다.
예컨대 연봉 50억원의 재벌 오너가 가입자라면 연봉 1억원 받는 봉급생활자와 똑같은 보험료를 낸다는 말이지요.
국민연금제도가 노인을 위한 복지프로그램의 일종이라 한다면 왜 하필 이것만 그렇게 역진적인 세금으로 운영되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정부가 최후의 카드로 쓸 수 있는 일반재정자금의 투입은 사실 그리 나쁜 대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재정의 건전성에 큰 탈이라도 나는 것처럼 난리를 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금을 걷는 이유는 쓸모 있는 데 쓰자는 것이고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그 세금을 쓰는 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ps. 6 미국의 경우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은 2034년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으로 국제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연금제도가 출범할 때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 분명한 미국과의 비교는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이 연금기금 고갈의 시점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은 2035년입니다.
우리에 비해 20년 이상이나 앞선 시점에서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언론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난파위기’에 처해 있다니 뭐니 하는 보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체로 담담하게 그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 시점을 늦추려면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굳이 이 통계를 인용하는 이유는 너무 위기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2057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 거의 4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세월만 허송한다는 가정하의 얘기입니다.
40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 고령화 + 저성장)이란 근본적 장애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밝혀질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때대로 적절한 대응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때 가서 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비관론에 빠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보다 무려 20년 이상이나 더 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는 우리가 마치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양 조급하게 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으로 조금 '쿨하게' 대처해도 괜찮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그런 쿨한 태도에서 더욱 적절한 대응책이 찾아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ps. 최근 보도를 보니 미국 연금기금 예상 고갈 시점이 2035년 초에서 2034년 말로 조금 앞당겨졌더군요.
그래서 원래는 2035년으로 썼던 것을 2034년으로 수정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미국도 예상 고갈시점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delta
(2018/08/17 20:59)

보험요율이든 소득대체율이든 조정을 해야하긴할테고요, 여기에 더불어서 수급연령도 조정하느냐인데 수급연령은 놔두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는 수급연령이 자꾸 뒤로 밀리면 연금 내는 사람 입장에서 노후설계가 흔들린다는 문제가 있고요, 두번째는 밀리는 수급연령만큼 소득이 없어지는 공백기간이 발생하는데 이를 뭘로 채워줄건지가 불분명합니다.

보험요율이든 소득대체율이든 이쪽은 조정하면 일시적인 충격이 있을 뿐 사람들이 확정된 사실로 생각하는거 같은데, 수급연령을 늦추는건 미래를 건드리는 불확실성을 더하는 것으로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강한 불만이 나오는 것도 보험요율 인상보다도 68세 수급연령 인상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러다가 죽을때까지 못받는거 아닌가 하는 부분을 건드려서 그런거 같거든요.

굳이 정책을 쓰려면 불확실성은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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