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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1 16:21    조회수 : 2886    추천수 : 44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Kenny G 서울대학교에 오다







얼마 전 출근길에 우리 학교에 세계적 색소폰 연주자 Kenny G가 와서 연주를 한다는 플래카드를 봤습니다.
그런 유명한 음악가가 우리 학교에 온다는 것도 잘 믿기지 않았고, 더군다나 야외음악당에서 연주회를 한다니 더욱 믿기지 않았습니다.
Kenny G 이름 밑에 “거미”라는 여자 가수 이름도 써져 있길래 아마 그 사람이 오는 거겠지 정도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 행정실에서 Kenny G 연주회가 열릴 예정이니 많이 참관해 달라는 안내메일이 왔더군요.
그제서야 그게 사실임을 알고 한 번 가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도 평소부터 그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생각에서요.

그렇게 유명한 음악가의 연주회인데 얼굴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의당 일찍 가야 할 테지만 난 일부러 늑장을 부렸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까지 찍을 수 있는 무려 83배 줌의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먼 발치에서도 능히 그의 얼굴을 또렷이 찍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던 거죠.

어제가 마침 그 날인데, 개막 시간에 임박해 그곳에 가니 첫 번째 사진에서 보듯 거미라는 여자 가수가 열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옆 자리에 서 있던 경영대 교수 제자에게 “저 거미라는 가수가 유명한 사람이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예”라고 대답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무식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나야 연예계 계보에 깜깜한지라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어도 싸지만요.

비록 찬조출연이지만 거미의 열창이 정말로 볼 만했습니다.
그러나 난 그의 열창을 즐기면서도 속으로 빨리 끝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임박해서 자칫하면 Keeny G의 얼굴조차 보질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제는 마침 내가 집에서 김밥을 만들기로 된 날이고, 아내에게 6시 반까지는 귀가하겠다고 약속해 놓은 터였습니다.
나는 일반적으로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라 언제 귀가하겠다고 말해 놓으면 거의 정시에 집에 도착하곤 합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5분이 내 오차의 범위이죠.
집에서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릴 걸 생각하니 거미의 열창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거미의 팬들에게는 무척 미안한 말이지만요.

그렇게 40분 동안 거미의 열창이 계속되었고, 나는 이내 떠나야 할 시간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Kenny G를 못 보고 떠날 수는 없어서 집에 돌아가 야단을 맞을 각오를 하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귀가하는 도중에 길이 막혔다고 적당히 둘러대면 될 거라는 생각까지 하면서요.

드디어 우레같은 박수를 받으며 Kenny G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관중석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맨 뒤의 산자락에 서있던 나로서는 그의 모습조차 볼 수가 없었습니다.
까치발을 하고 간신히 관중석 속의 그를 찾아 촬영한 것이 바로 두 번째 사진입니다.
83배 줌이 없었다면 이런 사진을 도저히 찍을 수 없었겠지요.

아직도 첫 곡을 연주하는 도중이었지만 나는 시간이 더 이상 없어 눈물을 머금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내려오면서 야외극장 옆 부분을 지나니까 의외로 그의 연주 모습이 잘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사진이 바로 거기서 찍은 것들입니다.

대가답게 청중과 가깝게 교감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연주도 너무나 훌륭했구요.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자리를 잡고 연주를 듣고 싶었지만, 사나이가 한 번 한 약속을 지켜야 하니 아쉬운 마음으로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약속 기간이 10분이나 경과했더군요.
솔직히 늦게 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면을 받았습니다.
역시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속담이 맞는 것임을 실감했습니다.

나는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로 김밥 만드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아시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 요리의 신조는 “속전속결”입니다.
마지막 사진에서 보는 김밥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 딱 30분이었습니다.
오직 밥만이 이미 만들어져 있고 나머지는 모두 새로 시작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김밥의 모양이 아주 예쁘지는 않습니다.
난 김밥을 말 때 대나무 발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말기 때문에 아주 똥그란 원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맛만은 최고임을 자부합니다.
(조명이 좋지 않아 김밥이 먹음직스럽게 보이진 않습니다만.)
여태까지 우리 가족들이 내 김밥 맛 없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참고로 내 레시피를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밥은 현미 찹쌀을 주성분으로 한 잡곡밥입니다.
영양을 고려한 선택이고, 사실 우린 늘 그런 밥을 먹습니다.

속에 든 것은 우엉 졸임, 계란, 오이, 어묵, 그리고 기름에 볶은 김치입니다.
그리고 나라즈께(奈良づけ)라고 하는 다꾸앙 비슷한 일본 장아찌도 쓰고요.
난 그걸 넣어야 김밥 맛이 제대로 나는 것 같아 일본 여행 가면 그걸 꼭 사온답니다.
며칠 전 오사카-교토 여행에서 사온 걸 썼지요.

일본식 김밥 먹어보면 내 입맛에 아주 맞는 재료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감표”라는 마른 호박꽂이입니다.
그런데 감표를 우리나라에서 구하기도 힘들고 그걸 어떻게 요리하는지도 몰라 아직 내 김밥에 도입을 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그걸 도입해 내 김밥의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보려 합니다.
성공하면 김밥집 여는 것도 한 번 고려해 볼까요?


ps. 초상권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공연사진에 등장하는 관객들의 얼굴을 흐리게 처리했습니다.
사실 원래 사진에서 Kenny G와 관객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그러운 이해 부탁 드립니다.

 

동훈학생,
(2018/04/21 20:39)

저는 워렌 힐 이 내한 했을때 공연장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색소폰 연주의 매력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케니지도 가족들이 다 광팬이라 집에 CD가 널려 있습니다.

케니지나 워렌 힐을 볼 때마다 폐활량이 대단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교수님께서 서울대 근처에 김밥집을 차리시는 상상을 해 보면, 주변 김밥천국 이나 김가네가 폐업의 길을 걷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준구
(2018/04/21 20:56)

자네가 첫 손님이 되어 주겠나?

 
동훈학생,
(2018/04/21 21:16)

제가 첫 손님이면 무한한 영광 일거 같습니다.

저도 김밥을 좋아해서 전에 한번 만들어 보았는데 시식을 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냥 사먹자'

요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님을 깨닫는 순간 이었습니다.

 
이준구
(2018/04/21 21:31)

김밥 만드는 건 쉬워.
충무 김밥은 거의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데 그런대로 맛있잖아?

 
오키프
(2018/04/21 23:23)

아 김밥 속재료 정보를 알고나니 더 맛있겠네요.
일부 속재료는 사신상으로는 무엇인지 추측이 안되는게 있었는데 정보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근데 나라즈께가 전라도 음식의 나나스끼와 같은 건가요? 왠지 그럴 것 같은데...어릴 적에 단무지 대신 나나스끼넣은 김밥 먹어본적 있는데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남니다. 그런데 이거 보고 나니 김밥 먹고 싶습니다.ㅠㅠㅠㅠ

 
이준구
(2018/04/22 09:39)

나나쯔께라고 부른던 것이 이걸 뜻할 가능성이 커.
우리말로는 '울외장아찌'라고 부른다네.
울외는 참외의 일종이고, 이걸 술지게미에 박아 장아찌를 만든 거지.

 
동훈학생,
(2018/04/22 10:47)

교수님께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유부초밥을 만드셔도 참 맛있을 거 같습니다.

 
이준구
(2018/04/22 13:57)

유부초밥은 아직 한 번도 도전을 해보지 못했네.

 
HONey
(2018/04/22 16:33)

저두 만들어주세요~~~

 
이준구
(2018/04/22 17:03)

안티 자진해산하면

 
전도리
(2018/04/24 14:38)

( 교수님..... 제 생각에는 ...안티세력이 있어야...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할 수 있고 .. 그러면서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냥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정반합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준구
(2018/04/24 22:15)

그런가요?
사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안티를 탄압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아부라카타부라
(2018/04/24 22:19)

미리 알았으면 참가했을텐데요~ 서울대생이 아닌게 아쉽습니다ㅠㅠ 83배 줌 부럽습니다

 
잠탱이
(2018/04/25 09:54)

김밥 속재료 글들을 보고 나라즈께, 나나스끼, 감표(칸표,박고지)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식재료의 세상도 관심 두고 찾아보기 시작하니 매우 흥미롭네요. 특히 감표는 정말 생소한데 찾아본 글들이 식감이 좋다고 해서 궁금해지네요.

 
purejungs
(2018/06/03 01:55)

처음에 사진만 보고 우와 또 어떤 애제자님이 이리도 정성스럽고 곱게 김밥을 싸주셨나.. 하고 봤습니다 ㅋㅋ 저의 편견이었네요? ㅋㅋㅋ 밥 색깔이 고급지네요. ㅎ 선생님 김밥집 하시면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하셔서 어려울것 같다고 감히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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