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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8:00    조회수 : 4118    추천수 : 68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금수저, 흙수저, "위대한 개츠비 곡선"(The Great Gatsby curve)



"흙수저"라는 말은 요즈음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던들 겪지 않을 온갖 어려움 속에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슬픔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지요.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는지는 본인의 선택이 전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로또복권 뽑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순전히 운에 따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기도 하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기도 하는 겁니다.
이로 인해 자신의 경제적 성패가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사회라면 뭔가 공정하지 않다라는 생각이 자연 들게 마련입니다.

물론 어떤 시대의 어떤 사회라도 금수저와 흙수저는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평등한 상태로 태어난 사회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는 경향이 더욱 현저하게 나타나는 데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식의 경제적 지위로 세습되는 경향이 있을 때 우리는 '세대간 이동성'
(intergenerational mobility)이 작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세대간 이동성이 작을 때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는 경향이 더욱 현저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불리한 여건을 이겨내고 상위계층으로 받돋움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는 것이지요.

어떤 사회에서의 분배상태가 얼마나 평등한지를 따질 때는 대체로 한 시점에서 소득이나 재산이 얼마나 고르게 분배되었는지를 봅니다.
지니계수(Gini coefficient) 등의 불평등도지수가 바로 이런 용도로 활용되는 것이지요.
불평등도지수를 통해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소득이나 재산상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측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 시점에서의 분배상태가 아주 불평등하다 하더라도 세대간 이동성이 크면 가난한 사람들이라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비록 내 세대에서는 빈곤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내 자식대에 가서는 상위계층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요.
그런 희망이 있다면 오늘의 빈곤함도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현재의 분배상태가 아주 불평등하면 세대간 이동성이 크기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분배관련 통계를 보면 어떤 한 시점의 분배상태와 세대간 이동성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 곡선"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미국 소설가 피츠제랄드가 쓴 소설의 제목입니다.
무일푼의 상태에서 출발해 백만장자로 신분 상승을 이룬 주인공 개츠비를 세대간 이동성의 대명사로 보아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첨부된 도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올라가는 모양을 갖는 곡선이 바로 그 위대한 개츠비 곡선입니다.

이 그림의 수평축은 한 시점에서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니계수의 수치가 더 커질수록 더욱 불평등한 분배를 뜻하고, 따라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불평등도가 더 커지게 됩니다.

한편 수직축은 아버지의 소득과 아들의 소득 사이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는지를 나타냅니다.
위쪽으로 갈수록 그 관계가 긴밀해져 세대간 이동성이 작다는 것을 뜻하지요.

이 그림에서 보는 각 점은 한 나라를 대표하고 있는데, 그 나라에서 지니계수와 세대간 이동성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점들을 대표하는 곡선이 오른쪽으로 가면서 올라가는 모습을 갖는다는 것은 지니계수가 클수록, 즉 한 시점에서의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세대간 이동성이 작아지는 경향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서 이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곡선이 뜻하는 바는 단지 둘 사이에 긴밀한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한 시점에서 분배상태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세대간 이동성이 더 작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세대간 이동성이 작기 때문에 한 시점에서의 불평등성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두 방향으로의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곡선은 코락(M. Corak)이라는 경제학자가 수행한 실증연구의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둘 사이에 그와 같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을 뿐 그 속에 어떤 인과관계가 내포되어 있는지까지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의 연구로 인과관계가 설득력 있게 밝혀지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 시점에서의 불평등도가 클수록 세대간 이동성이 더 작아진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큰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평등성이 크면 하위계층에 속하는 가정의 아동들은 영양의 불충분한 섭취로 인해 신체적으로 허약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교육기회의 제한으로 인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해 계층이동을 할 수단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소득이 낮은 상태에서 저축할 여력이 없는데다가 상속 받은 재산까지 없다면 그의 경제상황은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큰돈이 드는 위기라도 닥치면 그는 바로 빈곤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비유적으로 말한 것처럼, 계층의 사다리가 길면 길수록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계층의 사다리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분배의 불평등성이 심하다는 것을 뜻하구요.

보수적인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으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소년이 근면, ·절약, ·정직의 미덕으로 성공하는 것을 그린 호레이쇼 앨저(Horatio Alger)의 소설에서처럼 말이지요.
문제는 극도로 불평등한 소득분배의 상황에서는 이 앨저의 신화가 더 이상 실현될 공간이 없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이무리 근면하고 아무리 절약한다 해도 뛰어넘기 힘든 현실의 장벽이 굳게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 던지는 시사점을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사회는 단연 미국입니다.
내가 늘 지적하듯 지난 몇 십 년 동안의 부질없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에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지 불평등할 뿐 아니라 세대간 이동성도 무척 작은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의 경험을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미국의 나쁜 선례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느낌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줄 수 있는 실증적 증거는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느낌으로 보면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어 온 것 같습니다.
유독 나만 그런 느낌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대간 이동성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작아진 게 분명해 보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나 흙수저란 말의 사용빈도가 부쩍 더 커진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부유층은 부유층대로 그리고 빈곤층은 빈곤층대로 서로 다른 계층을 이루며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러다가는 멀지 않은 장래에 계급사회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들 정도입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남의 불 보듯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열정을가지고
(2018/04/02 17:26)

교수님 오랜만에 들어옵니다.
요새는 집안에 부모님이 아프거나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면 금수저, 흙수저도 못된다고 합니다..
저 또한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모두들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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