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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7 14:12    조회수 : 5466    추천수 : 74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책 추천] Keith Payne, The Broken Ladder



이 책은 비행기 안에서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벌이는 승객의 얘기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비좁은 의자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분위기에서 누구라도 신경이 곤두서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치고 이것이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의자를 뒤로 젖혀 그나마 비좁은 자리를 더욱 비좁게 만듭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좌석 사이의 팔걸이가 마치 자기 것인 양 팔을 떡 걸쳐놓아 나를 불편하게 합니다.
또한 내 뒤에 앉은 사람은 무슨 이유인지 내 등 뒤를 계속 발길질 해 나를 짜증나게 만듭니다.
여러분도 여행 중 이런 불쾌한 경험을 숱하게 했을 것이고, 그걸 참아내느라고 애를 먹었을 겁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표시하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어떤 비행기를 타고 가느냐에 따라 싸움이 발생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석(혹은 일등석)이 있는 비행기에서는 전부가 이코노미석인 비행기에서보다 싸움이 더 자주 발생한다는 겁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그 비즈니스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서도 싸움의 빈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만든 비행기는 입구가 하나인데 비즈니스석이 앞에 위치해 있어 이코노미석 승객은 거기를 지나 자신의 자리로 갑니다.
반면에 요즈음 만든 비행기는 입구가 여럿 있어 비즈니스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코노미석으로 갑니다.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비즈니스석을 거쳐 가게 되어 있는 비행기에서는 싸움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책의 저자 페인(T. Payne) 교수는 이코노미석 승객이 비즈니스석 승객과의 상대적 비교에서 스트레스를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비즈니스석이 아예 없으면 그런 싸움이 덜 빈번하고, 비즈니스석에 편하게 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않이도 싸움이 덜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배상의 불평등에서 문제의 핵심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것이 틀린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빈곤도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불평등 그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입니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 사회가 앓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병폐가 그 동안 급속하게 진전되어 온 분배의 불평등화와 깊은 관련을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불평등성의 심화가 폭력, 범죄, 마약 등의 사회적 문제는 물론, 개인의 건강 문제도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몰고 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불평등성의 문제가 결국 ‘공공보건’(public health)의 문제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자주 얘기합니다.
학교 다닐 때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고 있었는데, 그 일로 인해 창피를 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어떤 사람이 실제로 가난한지의 여부보다 그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렇게 느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사회경제적 지위의 사다리(status ladder)에서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우울감, 걱정, 그리고 만성 통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의 위치가 낮다는 사실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남들과 비교할 때 자신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문제가 아닌데, 굳이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겁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저자는 스트레스라는 것이 위기에 처했을 때 생존본능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원시시대 사냥에 나선 어떤 사람이 바로 앞의 숲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게 사슴의 소리일 수도 있고 사자의 소리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자라면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해야 하고 그럴러면 온 몸의 에너지를 근육에 집중시켜야 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아드레날린이나 코티졸 같은 물질이 배출되어 근육에 영양분을 집중시켜 주는데 이것이 바로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이런 스트레스 상황이 단기적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 생존의 관점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습니다.
몸이 계속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 있으면 각종 질병이 발생하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정신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장기적 생존에 불리한 반응을 겪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단기적 쾌락에 탐닉한다든가 자신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것 등이 모두 스트레스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들 중에 폭력이나 절도 등의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마약에 빠지거나 미혼모가 되는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도 바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구요.

저자는 경제사회적 지위의 사다리가 위, 아래로 더 길수록 사회적 병폐가 더욱 극심하게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더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문제의 핵심은 불평등성 그 자체에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하느냐보다 최상층에 있는 사람과 얼마나 큰 격차를 보이느냐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그는 근래 미국 경제가 끊임없이 성장해 왔지만 사람들이 왜 더 행복해지지 못했는지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국민소득의 절대적 수준은 더 높아졌지만, 불평등성의 심화로 인해 아래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진 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입니다.

미국 사회에 대한 그의 진단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최근 우리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의 수준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느낍니다.
물론 정치적 상황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분배의 양극화가 문제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분배상태가 정말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데는 한 점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소수의 부자들만 더 잘 살고 자신은 더욱 가난해졌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자조적인 말들을 들어 보면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흙수저”, 또는 “이생망” 같은 자조적 표현이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요?
나는 이미 경쟁대열에서 탈락해 사다리의 위쪽으로 갈 가능성은 없어졌다는 절망감이 그 뿌리가 아닐까요?

솔직히 말해 불평등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걸 더 크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그 좋은 예지요.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보수적 정부는 사다리의 아래에서 허덕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음을 주기는커녕 그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계속 밀어붙여 왔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못 줄 망정이면 입으로나마 위안을 건네 줄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MB, 박근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걸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계층간 이동의 사다리가 부서져 버렸고 그 결과 각종 사회적 병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사다리는 얼마나 온전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갖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HONey
(2018/03/11 09:42)

쌤님, 저 이 책 빌려주세요~~~ 요즘 제 관심사에요

 
이준구
(2018/03/11 17:16)

읽고 나서 댓글로 독후감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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