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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17:09    조회수 : 3188    추천수 : 72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기증 장기 부족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어제 한 방송국의 저녁 뉴스를 보니까 장기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중인 환자의 숫자가 무려 3만을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식 받을 장기가 없어 죽는 사람이 하루 3명이 넘는다고 하구요.
의료기술이 발달해 이제는 거의 모든 장기를 이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증되는 장기가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때이른 죽음을 맞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사정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대학의 베커(G. Becker) 교수가 인간 장기의 거래를 허용하자고 제의한 걸 보면요.
오죽하면 사람의 눈, 간, 신장 등을 시장에서 사고파는 걸 자유롭게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 기증 장기 부족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이 방법을 채택해 기증 장기 부족의 문제를 멋지게 해결했는데, 문제는 많은 나라들이 그런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채택하지 않아 고통을 자초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요즈음처럼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이웃 나라의 좋은 점을 본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방법이란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이 발견한 인간 행태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행태경제학자가 발견한 인간 행태의 독특한 성향 중 하나가 바로 ‘기정편향’(default
bias)이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찮음을 싫어해 미리 정해진 것을 그대로 따르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바로 기정편향이지요.

기정(旣定)이란 것은 이미 정해졌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디카를 처음 사면 여러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귀찮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제조업체가 미리 선택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 ‘귀차니즘’의 결과가 바로 기정편향인 것입니다.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몇 개의 유럽 국가들은 이 기정편향을 이용해 기증 장기 부족이 문제를 멋지게 해결했습니다.
나라마다 장기 기증 방법이나 절차가 조금씩 다릅니다.
크게 보아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분명한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한 기증의 의사가 없다고 보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를 위한 대부분의 나라가 선택하는 방식인데, 명백한 동의 원칙 혹은 옵트인
(opt-in) 원칙이라고 부르는 방식이지요.

이와 달리 특별히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추정된 동의 원칙 혹은 옵트아웃(opt-out) 원칙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앞에서 말한 스페인 등의 나라에서 바로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방식 사이의 차이가 사소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큰 차이가 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옵트아웃 원칙을 채택한 나라에서는 장기 기증률이 85% 수준을 넘는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옵트인 원칙을 채택한 나라의 기증률은 20% 내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기증률의 이 어머어마한 차이는 바로 기정편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장기 기증의 의사가 있어도 귀찮아서 기증 약속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어디 가서 서식을 얻어 작성한 다음 사인해 제출하는 것이 간단한 일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기증 장기가 부족하든 말든 그대로 놓아두는 것입니다.

옵트아웃 원칙을 선택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 중 장기 기증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자신이 뇌사상태에 빠지더라도 장기를 적출하지 말라고 분명히 의사를 표시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귀찮음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대로 놓아둘 것이고, 따라서 뇌사상태에 이르면 자동적으로 기증을 하게 됩니다.

내가 쓴 “인간의 경제학” 책에 이 사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몇몇 사람만 아는 비밀이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상식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문제 해결의 방법이 있는데도 왜 많은 나라들이 이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 건가요?
옵트인을 옵트아웃 방식으로 바꾸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왜 우리나라 정부는 기증 장기 부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는지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우리 정부만 모르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구요.
만약 알고 있다면 옵트아웃 방식의 채택에 대한 진지한 논의라도 시작해야 마땅한 일일 텐데요.

3만 명이 넘는 환자들이 기증 장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무척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을 쉽게 덜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간단한 제도 변화 하나로 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되돌려 줄 수 있다면 한시라도 지체하지 말고 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사람이 먼저”임을 내걸고 있는 정부가 제일 처음 팔 걷고 나서야 할 일이 아닐까요?

 

독일잠수함
(2018/02/28 23:26)

문화 차이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한국인이 그런 편향성이라고 하기도 힘든...

실제 사체 부검하기도 힘든 문화라고 하기도 하구요
(정말 문제가 있어 보이기에 유가족 동의 얻어야 사체 부검도 가능한)

그리고 부모 형제 죽음에 가까운 상황서 거기서 신체 일부 떼어내서

장기기부 한다는 거 자체가 문화 자체에서 이해가 불가한 것이라 생각듭니다

그래서 저런 장기기증이 불가능하다고 보구요

그렇다면 이게 그렇게 덜 문명화된 문화라고 하기엔...

대체 왜 남의 생존을 도와야 하냐고 한다는 생각과고 관련이 있어 보이구요?

그런데...

그렇게 한국이 지금 남 잘 살게 배려하는 문화인가요?

이게 근본적 의문이네요

나만 잘살면 되는 곳 아니구요???

남이 죽던 말던 관심 없는 문화 아닌가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동훈학생,
(2018/03/01 09:30)

동네 배달 음식점을 홍보한 책자에서 수십개의 치킨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귀찮아서 알아보지 않고 유독 한 곳만 시켜먹는 저의 행동도 기정편향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방법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구
(2018/03/01 14:02)

독일잠수함님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시는 것 아닌가요?
민약 그 말이 정말로 맞다면 내가 제의하는 방법이 더욱 효과가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장기 기증하는 걸 그리 반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거부 의사를 표명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독일잠수함
(2018/03/01 14:17)

비관주의로 변한 것이 저 어린 대학시절 비교하면 정말로 타인 고려 안 하고 사는 사회 같습니다...

전엔 좀 눈치도 보고 또는 많이 베풀고 산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고등학교 동기들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다들 하는 소리가 더 잘 살 게 된 건 맞는데 왜 이리 각박한 세상이냐고...
조금도 여유도 없고...

사후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유가족이나 형제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장기기증이 가능할 터인데... 과연 허용할 사람들이 많을까요?

이런 정서적 상황을 무시하고

법으로 사전 이의제기 없으면
장기를 떼어낸다고 했을 때 과연 가만히 있는 유가족들이 있을까 싶습니다
지금같은 사회 분위기서요 그리고 우리 문화에서요

그런데 교수님 말씀대로 비관주의로 흘러간 거 맞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될 정도로 이해타산 문화가 지금은 중요한 거 같더군요

그러니 괜히 남 일 끼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많아진 거 같구요

그냥 눈감고 사는 게 괜히 정의구현 노력하려 하는 거 보단 살기 편하단 생각이구요

보다보면요

 
독일잠수함
(2018/03/01 14:20)

교수님 글에 이성적으론 동의 많이 하는데
세상살이에선 안 맞지 않나 하는 글입니다
한국 지금현실선...

그런데 이런 사회 만들어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런 의문이 드네요...

한국 사람(저도 한국사람이지만) 이렇게 각박하게 만든 사람들이 분명 있을 터인데...

 
이준구
(2018/03/01 19:06)

나는 생각이 달라요.
뇌사자 가족이면 그런 태도를 취할지 몰라도 일반 사람들의 태도는 다를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제도는 자신도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험을 드는 것과 같아요.
이런 점을 들어 국민을 설득하면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홈런볼
(2018/03/05 23:50)

저도 살아보니 독일잠수함님 생각처럼 변해가는 걸 느낍니다. 좋은 의도를 갖고 행동한 것이, 실망과 상처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생기게 되니 무심해지는게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저같은 사람들이 많아도 세상이 유지되는 것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환경이고 그 환경을 설계하는 제도를 개선하는 것. 그것이 좀 더 사람들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성
(2018/03/09 10:08)

선생님, default bias 좋은 것 배웠습니다. 저 역시 이팔 청춘 이후 귀차니즘이 점점 커지고 있어 격렬히 공감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의사표현에 따른 비용-부작용-을 크게 우려하는..) 편향이 더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를 하고 나서 특정 안건에 찬성 또는 반대만 가능할 경우에 찬성을 손들게 할지 반대를 손들게 할지에 따라 결과가 몇 명씩 달라지는 경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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