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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17:54    조회수 : 3770    추천수 : 67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규제는 암 덩어리다?


“규제는 암 덩어리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이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 유명한 발언입니다.
규제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장애물이란 뜻으로 그런 말을 했겠지요.
하여튼 ‘규제철폐’는 그뿐 아니라 모든 대통령이 유행가처럼 즐겨 부르짖는 구호입니다.

불필요한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사례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이것들을 과감하게 철폐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는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규제철폐에 앞장 서야 할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복지부동하고 있기 때문에 늘 구호로만 끝나고 말 따름입니다.

그런데 모든 규제가 암 덩어리는 아닙니다.
규제 중에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규제철폐라는 말은 불필요한 규제에 한정되어 쓰여야지 모든 규제에 융단폭격식으로 적용될 말이 아닙니다.

지난 번 제천화재 사건 그리고 최근의 밀양화재 사건을 보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된 일에서 좀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나는 밀양의 병원이 (규모가 작아)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또한 불에 잘 타지 않는 매트리스나 환자복도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납득이 잘 가지 않았구요.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맡아 놓고 있는 병원이라면 규모가 작다 하더라도 그 정도 최소한의 규제는 받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병을 고치려고 병원에 간 사람이 화재에 대한 대비 부족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면 이처럼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동안 수많은 화재를 경험하면서 그 정도의 지혜는 축적했어야 마땅한 일 아닙니까?

모든 규제가 그에 순응하는 데 드는 비용을 수반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규제가 비효율성의 상징처럼 매도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고,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가의 지불이 필수적입니다.

소규모 병원이라도 스프링클러 설치하고 불에 잘 타지 않는 매트리스와 환자복 갖추라고 규제하면 당장 병원의 경비 부담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비용이 전가될 겁니다.
그러나 화재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추가적 비용을 부담하는 쪽이 훨씬 더 낫습니다.
국가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선택되도록 강제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병원이 자발적으로 화재피해 예방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이 최선임에는 아무 의문이 없습니다.
사실 병원이 이기적인 계산을 하는 경우에도 자발적인 예방조치를 취하는 쪽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밀양의 병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미리 알았으면 돈이 들더라도 예방조치를 취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병원은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렀을 텐데 돈을 좀 들여 예방조치를 취했더라면 그런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먼 데를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해지는 것입니다.
규제가 비록 비효율성을 유발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문제되는 상황이라면 도입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병원에서 또다시 화재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수많은 이유로 발생하는 화재 사고를 미리 막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화재가 났을 때 대형 피해가 발생하는 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지 몰라도 차제에 병원의 안전과 관련된 규제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규제의 망에 어떤 허점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이를 메워야 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를 그냥 남겨두는 것도 악덕이지만, 꼭 필요한 규제를 도입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악덕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동훈학생,
(2018/01/28 19:48)

왜 항상 큰 사고가 일어나야 제반 대책이 마련 되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미누스
(2018/01/28 19:55)

'규제는 암덩어리이다'라고 운운하는 것 자체가 '현실따위엔 관심없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옳바로된 규제방법이 무엇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그것 밖엔 없습니다.

 
이준구
(2018/01/28 20:12)

큰 사고가 났는데도 정신을 못 차려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닐까?

 
중상모략의 달인
(2018/01/28 23:47)

사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거 행정학과 (대학원도 아니고) 학부 규제정책론 공부하면 경제적 규제/사회적 규제 해서 싹 다 나오는 겁니다... 제발 정책담당자들 공부 좀 하고 국정 운영 했으면 합니다.. ㅜㅜ

 
TRobin
(2018/01/29 08:10)

여담입니다만, 여기에는 절대로 돈 안주려고 발악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도 한 몫 한다고 생각됩니다. 심평원의 성과 평가기준이 '청구액에서 얼마나 깎았냐'인건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고, 의사들 사이에서 자조섞인 발언삼아 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대한민국 한정으로 미국의과학협회(이름이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보다 더 권위있는 곳이 심평원이란 이야기도 나온다고 하죠.

이미 대형병원들은 건강보험료로는 맨날 적자라 비보험 치료. 카페, 음식점같은 부대사업으로 적자를 메꾸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삼성재단이 가진 돈으로 사회사업은 안하고 삼성의료원 운영비만 댄다고 해서 뭐라고 한 기사가 나왔습니다만, 그게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안하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재단의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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