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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17:00    조회수 : 1611    추천수 : 30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아쉬운, 너무 아쉬운 서울로 7017







서울역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를 시민을 위한 산책로로 바꾸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를 듣고 마음이 설레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나는 꽃밭이나 정원 같은 걸 무척 좋아하잖아요?
서울의 삭막한 시멘트 숲 속에 에메랄드 색으로 빛날 공중 산책로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완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완공이 된 후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산책로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시멘트 화분으로 가득찬 산책로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이건 아닌데!"를 외쳤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숨 막히게 만드는 또다른 시멘트의 숲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신문에 난 사진이 산책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 한 번 꼭 가서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바쁜 일정으로 하루 이틀 미루다 오늘 드디어 서울역행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서울로 7017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산책로의 모습은 그 사진에서 보던 것과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에서 보듯, 나무와 풀들이 심어진 시멘트 화분들로 가득찬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한 번으로 족하고 다시 찾고 싶지는 않은 그런 산책로였습니다.

듣기에는 현상공모까지 해서 이런 산책로의 모습을 선택하게 되었다는데, 그 사람들의 센스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도 시멘트 화분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같은데요.
무슨 예술성을 추구했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못생긴 모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고가도로를 산책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인근의 상인들은 교통혼잡을 우려하며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에 옮겼다면 무척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산책로인 셈입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만든 산책로라면, 누가 봐도 "이걸 만들기 잘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멋지게 만들었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서율로 7017은 정원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원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우리 일상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아이디어에 기초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으로써 우리의 삭막한 일상에 자연의 따뜻한 숨결을 불어 넣어준다는 데 정원의 본질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로 7017을 가득 메운 시멘트 화분들을 보고 자연을 떠올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 삭막하기 짝이 없는 길을 걸으면서 아늑한 휴식을 느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나만 유독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통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멘트로 가득찬 공간이 잘못된 조경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서울로 7017과 자주 대비되는 것이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입니다.
철길로 사용되던 부지를 신책로로 바꿨다는 점에서 서울로 7017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요.
거기 직접 가보신 분도 많겠지만, 이 두 산책로를 비교해 보면 바로 채점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에 어떤 조경 전문가가 하이라인 파크는 하이라인 파크일 뿐 우리가 그걸 그대로 따올 필요는 없다고 말한 기사가 난 걸 본 게 기억납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서울로 7017이 단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저 다르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창성을 발휘해 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었다는 데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내가 2009년 뉴욕에서 찍은 하이라인 파크의 모습과 비교해 보십시오.
세 번째, 네 번째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 번째 사진을 보면 살벌하게 보이던 철길이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걸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잘 만들어진 정원이 만들어내는 마력 아닌가요?

서울로 7017도 시멘트 화분이 아니라 네 번째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은 자연스런 정원의 모습을 기본구도로 선택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이라인 파크를 본 딴다는 게 아니라, 이것은 산책로로 사용되는 정원의 기본 요건이라고 봅니다.
시멘트 화분들이 어떤 예술적 가치를 갖는지 몰라도 서민들의 휴식을 위한 산책로라면 서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런 흙길에 여러 가지 나무와 꽃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구요.

내가 서울로 7017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각각의 화분에 한 가지의 꽃들만 심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모르고 있던 꽃 이름을 알게 된 건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꽃들은 여러 가지가 어울려 피어야 제멋이라는 기본이 또 한 번 무시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사진은 내 오피스텔 빌딩 옥상에 내가 만든 꽃밭의 모습입니다.
(건물주가 내 친구인데 내가 꽃밭을 좋아하는 걸 알고 나에게 꽃밭 조성 일을 맡겼지요.)
여러 가지 꽃들이 어울려 피어있는 모습이 아기자기하지 않습니까?
1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서울로 7017의 산책로 오른쪽과 왼쪽이 이와 같은 모습의 꽃길로 이어져 있었다면 얼마나 예뻤을까 혼자 상상해 봅니다.

내가 오늘 찍은 서울로 7017의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보내 줬더니 모두가 한숨을 쉬더군요.
어떤 분은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구요.
불행히도 내 생각에는 시간이 약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나무가 좀 자란다고 흉물스런 시멘트 화분에 갇혀 있는 모습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요.

오래 전에 이 게시판에 광화문 광장의 흉물스런 모습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 서울로 7017도 광화문광장에 이은 서울시의 또 하나의 실패작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도대체 미적 센스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일을 맡는 바람에 서울시민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을 것들이 날라가 버린 셈입니다.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된 마당에 또 추가적인 예산을 쓰라고 말하기는 염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7017을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려면 그 흉물스런 시멘트 화분을 모두 치워 버려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 정겨운 시골길을 떠올리게 하는 예쁜 꽃길로 다시 조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미니카
(2017/06/09 20:20)

한국에 뛰어난 설계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걸 공모전으로 뽑았다니 공무원 보는 눈은 일반국민들이 보는 눈과 다름가 봅니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기대했는데 허허참

 
이준구
(2017/06/09 20:26)

뛰어난 설계사까지도 필요하지 않아요.
평균적인 미적 센스 있는 사람이라도 이것보다는 예쁜 산책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시장은 바뀌었어도 광화문광장 만든 사람들은 그대로가 아닐까요?

 
임형찬
(2017/06/09 23:20)

도시계획 전문가였던 김진애 전 의원이 2014년도에 이미 지적을 했듯 하이라인파크는 도시조경 뿐만 아니라 기존 건물의 2~5층의 구간을 리모델링하여 곳곳에 사실상 고층 로비화하는 전략도 있었습니다. 즉, 대체로 매장들은 1층에 입점하는데, 하이라인파크가 생김으로서 건물의 출입구가 2~5층에도 생기고, 해당 층에 식당이나 매점이 입점할 수 있는 경제적 이점도 있었습니다. 건물과 건물을 오가는 통로로서도 하이라인 파크가 활용되었구요. 하지만 서울역 고가도로는 가보셨듯....그 어떤 곳과 연결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임형찬
(2017/06/09 23:22)

시민에게는 쾌적한 휴식공간, 자동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마치 거대한 육교 통로, 건물주에게는 상점 입점 활용을 늘이고, 유동인구에 따른 이득을 주는 윈윈이었습니다. 시는 폐고가철로를 재활용해서 비용을 절감하구요. 하지만 박 시장은 단순히 견학을 갔다가 꽂혀서 일을 처리했는데...이번에는 서울역을 지하화하겠다는군요.

 
이준구
(2017/06/09 23:40)

그렇게 고도의 활용전략은 기대하지도 않아.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번듯한 산책로만 만들어 줬어도.

 
메이데이
(2017/06/10 10:47)

여러 가지를 어울리게 해도 이름을 알게 할 방법이 있었을 텐데요. 말씀대로 아쉽습니다. 담당자가 선생님께서 포스팅하셨던 천리포수목원 같은 데를 안 가봤던 모양입니다.

 
이준구
(2017/06/10 14:41)

천리포 수목원 같은 데 가서 조금만 아이디어를 얻어도 그런 볼성 사나운 산책로를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네요.

 
임형찬
(2017/06/11 10:18)

이동학

정말 그렇네요.. 호기심에 한번 가봤다가 다시는 가지 않을 그런 풍경이네요.. 왜 이랬을까요 ㅠㅜ



김기온

빽빽하고 번잡한 도심 속에서도 반전이 숨어있는 길의 고즈넉함과 잔잔한 휴식공간이 시민들에게 더욱 필요한 게 아닐까요?
지자체장들의 업적보다...ㅠㅠㅠ



차상훈

저도 귀국하게되면 직접 보고 판단하려하지만 사진으로는 많이 실망하였습니다. 근데 설계자에 의하면 다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해 하이라인같은 큰 숲은 애초에 안전상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저 고가도로가 낙후되어 안전때문에 기능을 상실한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하고 많이 아쉽습니다.



김명수

전 개장 첫 날 가서 슈즈트리까지 보고 왔습니다. 복잡한 인파에 난해한 작품까지 보고나니 다시 또 갈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



권재원

재능기부라는 단어에서 서울역 고가의 졸속적 풍경의 원인을 찾아 봅니다. 경제학 1원칙.


Sangho Roh

같은 식물이 하나씩만 심어져있다는 말에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너무 한꺼번에 많은 걸 보여주려다 패착이 생긴 건 아닌지...




김기조

먼가 아쉬운 I SEOUL YOU 의 다른 버전 이랄까...



Jin Yeon

숲길만 집착말고 거리예술 조명 등 역발상도 적용할만 한데 아쉽..

 
임형찬
(2017/06/11 10:21)

페이스북의 댓글을 가져와봤습니다. 사실 산책로로 활용하기엔 왕복 2차선이라 폭이 좁았죠...

차를 끌고 다닐 때에도 서울역 고가는 좁은 고가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주변 증언과 정황을 보니 '사업 공모'부터 '디자인 선정'까지 너무 주변 말을 안 들었던 것 같더군요.

 
이준구
(2017/06/11 13:41)

나도 차상훈씨가 말한 것처럼 하중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지금처럼 길을 채우고 있는 시멘트 화단들도 하중이 웬만할 걸로 짐작이 됩니다.

하여튼 서울로에 큰 나무들을 심어 그늘을 만든다는 건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일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키가 너무 크게 자라지 않는 나무들은 어느 정도 심어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심어놓은 나무들도 대체로 키가 많이 크지 않는 나무들입니다.)
영 하중이 문제가 된다면 거의 꽃들로만 화단을 채워도 무방할 테구요.

문제의 핵심은 왜 인공적 느낌이 강한 시멘트 화분들을 사용했느냐에 있습니다.
그냥 흙으로 이어진 꽃길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공간을 연출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에 더해 여러 가지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지게 만들 필요도 있었구요.

영국에 가보신 분들은 자연스런 분위기를 살린 예쁜 정원들을 보셨을 겁니다.
내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이 바로 그겁니다.
즉 좌우로 영국식 정원의 느낌을 주는 꽃길이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 말입니다.

 
ProjectManager
(2017/06/15 10:21)

저도 개발사업하는 입장에서 저돈으로 고작 저거밖에 못뽑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그냥 박 시장의 치적사업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고요, 저걸 설계한 건축가만 그냥 떼돈 벌었습니다.

그리고 건축학에 연결통로와 같은 개념이 있는데 연결통로 개념으로 주변의 상업시설들과 연계한 정원이었으면 도시개발의 가치가 훨씬 올라갈 수 있는 사업이었는데 아주 아쉽습니다. 지금 상업시설의 문제는 1층외엔 2층이상 부분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게 아주 큰 문제거든요. 실제로 2층부턴 공실도 많은데,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주변 건물주들과 협의해서 연결통로 식으로 건물과 연결시켰으면 도시미관과 소통력 그리고 주변상권 활성화까지 연결되는 좋은 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렇게 개발할거면 지금이라도 철거하는게 답인 것 같습니다.

 
애그
(2017/06/15 10:47)

걸어서 출퇴근을 하면서 매일 근처를 지나가는데 저도 정말 많이 실망했습니다. 그냥 고가차도를 고가인도로 만든 수준이더라구요. ㅠ_ㅠ 흙으로 깔아서 정원을 만들면 하중을 못견딘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렇다면 시멘트 하중을 어떻게 견디는지 비전문가라서 의아합니다.

 
이준구
(2017/06/15 19:37)

애그 오랜만이야.
둘째 애는?

 
애그
(2017/06/16 10:09)

네~ 선생님 ^^ 둘째는 잘 크고 있습니다. 첫째도 잘 크고 있습니다. 근래 미세먼지 때문인지 둘다 기침하고 그래서 병원에도 여러번 왔다갔다 했는데 이제 둘다 괜찮습니다. 둘째가 좀 더 크면 학교로 나들이가서 선생님께 인사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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