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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17:59    조회수 : 1973    추천수 : 115
 글쓴이   이준구
 파일   첨부파일없음
 제목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옥시 살균제 사건과 연루되어 현직 서울대 교수가 구속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신문을 보니 그 교수는 자기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취지의 유서까지 썼나 보더군요.
그 교수는 회사측과 로펌이 자신의 용역보고서를 왜곡해 제출함으로써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다고 변명하나 봅니다.

그러나 용역보고서를 의심의 나위 없이 명확하게 작성했다면 그런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았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사람이 수백 명 죽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면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도 한 점 의문의 여지가 없이 명확하게 나왔을 텐데요.
그 실험 결과를 정확하게 반영한 용역보고서를 작성했더라면 왜곡의 여지가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그 교수가 받은 용역비가 그 세계에서 어떤 수준인지는 알기 힘듭니다.
그러나 상당히 거액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봅니다.
왜 그 회사가 그런 거액의 용역비를 선뜻 지불했을까요?
그 동기를 의심하지 않고 선뜻 받은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란 것 없다.”는 말에 한 점 틀림이 없습니다.
거액의 용역비 뒤에는 용역보고서를 적당히 만들어 달라는 말없는 요구가 숨어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그 미끼를 덥석 문 순간 그 교수는 화를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그 교수에 정말로 잘못이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수사가 좀 더 진행되어야 정확한 윤곽을 알 수 있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미 그 사건에 연루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 억대의 용역비가 그런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나도 젊었을 때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해 뼈저린 실수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정부의 조세제도개혁연구단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때마침 모 경제단체에서 일하는 지인이 원고 청탁을 해오더군요.

그는 조세개혁의 이론적 배경에 대한 원론적인 해설을 한 꼭지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자기네들이 조세개혁과 관련한 책자를 만드는데 그 일부로 포함시키겠다구요.
그리고는 다른 조세제도개혁연구단의 위원도 집필진으로 참여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론적 배경이야 경제계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해 무심코 그 요청에 응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경제단체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조세제도 개혁안을 제의하는 책이었습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 경제단체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 나는 정부의 조세제도개혁연구단의 위원으로 조세제도 개혁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경제단체의 이익을 옹호하는 책자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으니 우스운 사람이 되어 버린 셈이지요.
그러나 나는 책이 나올 때까지 전후 사정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웃기는 것은 그 경제단체가 나에게 당시로는 매우 높은 원고료를 지급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원고지 1매에 2, 3천원 지급할 때였는데 무려 1만원이나 되는 원고료를 지급했던 것입니다.
물론 원고료가 얼만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 비싼 원고료가 내 이름을 판 값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엄청난 낭패감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같으면 그 경제단체에서 글을 써달라고 읍소를 해도 안 써줍니다.
어떤 내용의 글이라도요.
그때는 한국에 갓 돌아와서 이런저런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겁니다.

그때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라는 말에 한 점 틀림이 없음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본질적으로 원고청탁을 해온 사람에게 무슨 용도로 쓸 것이냐는 등 여러 가지 점에 대해 철저하게 따지지 못한 내 불찰이 큽니다.
우리 사회는 그때의 나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속아 넘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미숙한 나는 그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 뒤로 나는 그 경제단체와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다시는 원고 요청이라든가 다른 부탁을 해오지 않았고, 설사 그런 요청이 있다 해도 응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을 속여 바보로 만드는 곳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그 사건은 나에게 아주 좋은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는 곳에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분에 넘치는 대우를 약속하는 경우에는 더욱 더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옥시 사건에 연루된 서울대 교수를 보면서 그나마 나는 수업료를 싸게 지불하고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시에스타
(2016/05/11 12:24)

이번 사건을 보면서 정확히 제가 느꼇던 점을 짚어주셧습니다. 가령 이번 사건에 연루된 교수님이 모든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교수님의 표현대로 미끼를 덥썩 문 것부터가 화의 근원이었던 셈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수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학생들께 해 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딘가에 참여했는데 대우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도하게 대접해주거나, 무언가에 기여하고 보수를 받는데 그 액수가 통상적인 수준보다 지나치게 높은 경우 무형적으로 생성되는 심리적인 압력이 있다고요.

아무래도 이번 사건을 보면서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들러봤는데,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중상모략의 달인
(2016/05/11 13:41)

아마 훗날 ㅇㅈㅎ님에게도 저런 일이 충분히 생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 가슴 깊이 새기라고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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